어릴 적에 화롄 출신의 네 형제가 다 야구 선수를 꿈꾸면서 자라났다. 


객가(客家) 출신인 아버지와 원주민 아메이족(阿美族)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네 형제가 태어났다. 어릴 적 원주민 지원 정책에 따라 어머니의 성을 따르면 학비가 감면되는 것을 이유로 2002~2003년에 네 형제가 모두 어머니의 성인 뤄(羅) 씨로 바꿨다. 


십 여년 후에 큰 형과 막내가 다시 아버지의 성인 가오(高)로 바꿨고, 두 동생은 여전히 그대로 어머니의 성씨를 따르고 있다.


네 형제 중 큰 형 /사진 華視新聞網 제공


큰 형은 미국 시애틀과 계약할 정도로 유망주였으나 마이너에서만 머물다 메이저리거의 꿈을 접고, 대만으로 돌아온 후 3년 만에 일약 대만프로야구리그 단일시즌 역사상 최다 홈런 기록(39개)을 세우면서 홈런왕에 올라 스타가 되면서 대단한 화제가 되었고, 당연히 이번 WBC에도 선발되었다. 


둘째 동생도 역시 프로 선수가 되어 현재 중신슝디에서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네 형제 중 둘째 /사진 중신슝디 홈페이지 제공


셋째 동생은 작년에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중복 포지션에 대만을 대표하는 스타 출신인 양다이강(陽岱鋼) 선수가 있어서 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가 이번에 양다이강 선수가 FA가 되어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한 후 대회 출전을 포기하는 바람에 그의 대체 선수로 대표팀에 뽑혀서 친형인 가오궈후이와 함께 처음으로 큰 대회의 국가 대표가 되었다. 그동안 작은 규모의 대회에서는 성인 대표로 뽑힌 적이 있지만 WBC와 같은 A급 대회는 처음이다.


막내도 역시 첫째 형과 함께 푸방 가디언스에서 야수로 뛰고 있다. 그는 2015년에 입단하여 내야수를 거쳐 외야수를 하고 있다. 야구 실력으로만 보면 첫째와 셋째가 가장 두각을 보이고 있고 둘째와 막내는 아직 분발이 필요하다.


네 형제 중 셋째의 모습/ 사진 CPBL 홈페이지 제공


큰형과 막내와 한 팀에서 찍은 모습 /사진 TSNA 제공


이 네 형제를 모두 프로 선수로 길러 낸 아버지 가오상런(高尚仁) 씨 역시 1971년부터 초등학교 야구부와 중학교 야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한 야구인 출신이다. 아무튼, 한두 명도 아니고 아들 넷을 모두 프로야구 선수로 키웠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점이다. 


이 집안의 야구 선수 출신은 또 많다. 


역시 화롄 출신 아메이족 원주민으로 1999년 미국 콜로라도 록키스와 계약하여 미국에 진출한 후 대만 사상 첫 번째로 LA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거가 된 천진펑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메이저리거가 된 후 2008년 대만으로 돌아와 슝디 엘리펀츠 소속으로 승부 조작에 연루되어 대만에서 영구제명되었다. 그 후 식당을 하다 2014년 미국으로 건너가 LA 다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했고, 2016년 잠시지만 다시 메이저리거가 된 차오진후이(曹錦輝)가 바로 네 형제의 외사촌이다. 가오궈후이의 어머니와 차오진후이의 어머니는 자매이다.


이 네 형제의 이름은 '가오궈후이(高國輝)', '뤄궈화(羅國華)', '뤄궈롱(羅國龍)', '가오궈린(高國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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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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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241&aid=0002636574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국가대표팀은 구성에 난항을 겪었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소속 선수의 출전을 반대했고, 결국 현역 메이저리거는 오승환(세인트루이스) 단 한 명이다. 일본도 외야수 아오키 노리치카(휴스턴)를 제외하면 전원 자국 리그 선수로 구성됐다. 동아시아의 또 다른 야구 강국 대만도 마찬가지다. 큰 산통을 겪은 뒤 최종엔트리가 확정됐고, 대만 언론의 평가는 '반쪽짜리 대표팀'이다.


자국 내 주도권 싸움도 겹쳤다. 서울에서 열리는 1라운드 A조 경기는 원래 대만야구협회(CTBA)가 먼저 WBC 사무국에 개최 신청을 했다. 하지만 WBC 사무국은 시장이 더 큰 한국을 선호했고, 이 때문에 개최지 결정이 늦어졌다. 분위기를 파악한 CTBA는 개최 포기 선언을 미리 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한국으로 개최지가 결정된 뒤엔 아마추어인 CTBA와 프로야구인 중화직업봉구연맹(CPBL)이 힘겨루기를 했다. 두 단체가 각각 원하는 감독을 추천한 것이다. 대만의 프로·아마추어 간 갈등은 오래 묵은 문제다. WBC의 성격에 대해서도 두 단체는 입장을 달리했다. CPBL은 메이저리그 사무국 주도로 프로 선수가 참가하는 대회인 만큼 주도권을 주장했다. 반면 CTBA는 "무슨 소리냐"며 그동안 대표팀 구성과 운영은 아마추어 협회에서 해 왔다고 반발했다.




갈등은 봉합되는가 싶었다. 한국의 문체부에 해당하는 교육부 체육서가 지난해 9월 초 CTBA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그러자 CPBL은 보이코트를 선언했다. 연맹 차원에선 대회에 협조하지 않을 테니 대회 참가 여부는 소속 4개 프로 구단이 결정하라고 손을 놓아 버렸다. CPBL과 의견을 같이한 라미고 구단은 결국 불참을 선언했다. 나머지 세 개 구단은 선수 차출을 허락했다. 세 팀 감독이 모두 대표팀 코칭스태프다.


이러니 대표팀 구성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WBC 사무국에 제출할 50인 명단도 당초 10월 초 발표 예정이었지만, 실제 구성은 12월 초에야 이뤄졌다. 최종 28인 명단은 해를 넘긴 1월 24일 발표됐다. 한국은 11월 10일 28인 명단을 발표했고, 이후 변동이 생긴 정도였다.


여러 스타플레이어가 제외됐다. 라미고의 우익수 겸 좌익수 왕보롱은 지난해 CPBL 타격왕, 최다안타왕, 골든글러브상, 베스트나인상, 신인왕, MVP를 석권했다. 하지만 WBC에는 출전하지 않는다. 주전 1루수 감인 첸진시우, 포수 린홍위, 핵심 불펜 자원인 천위쉰과 린보요우도 불참한다.


마운드에서는 해외 리그에서 뛰고 있는 대만 선수들을 믿었다. 하지만 소속팀의 반대, 메이저리그 도전을 위한 스프링캠프 참가, 혹은 부상과 재활 등의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이너리거 단 한 명(클리블랜드 소속 쟝샤오칭·인천 아시안게임 대표)만이 소집에 응했다. 현직 메이저리거인 천웨이인과 마지막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왕지엔민, 더블 A와 트리플 A에서 메이저 도전을 원하는 왕웨이중과 후즈웨이, 쩡런허, 황웨이지에, 천핀슈에, 뤄궈화 등 마이너리그 투수들이 모두 불참했다.


야수진에서는 주전 포수 감으로 꼽히던 피츠버그의 쟝진더와 클리블랜드의 주리런이 불참했다. 지난해 니혼햄에서 뛰었던 양다이강은 대표팀 중심타자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그는 요미우리와 5년 15억 엔에 FA 계약을 하면서 불참을 선언했다. 요미우리의 반대가 강했다. 요미우리에 양다이강은 귀중한 선수다. 과거 이승엽이 그랬듯 중계권 판매 등 대만 시장 공략에서 핵심 카드로 삼고 있는 선수가 양다이강이다.


세이부의 궈쥔린, 지바 롯데의 천관위, 라쿠텐 육성군 출신 쏭쟈하오 등으로 대표팀 핵심 전력을 꾸려야 한다. 현역 시절 한국의 선동열과 라이벌이었던 대투수 출신 궈타이위안 감독은 "투수진 구성이 가장 골칫거리"라는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1월 대표팀 훈련 캠프에 상비군 출신 유망주인 아마추어 투수 세 명을 불러 테스트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였고, 지금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는 37세 노장 양젠푸도 캠프에 초청했다. 궈 감독의 다급한 심정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나마도 양젠푸가 8주 부상을 입어 무산됐다. 그 뒤 궈 감독은 이미 대회 불참을 선언했던 중신슝디 투수 천홍원을 설득해 대표팀으로 불렀다.


대만의 WBC 최종명단에서 핵심 전력은 일본 프로 출신 투수 세 명, 과거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니푸더, 그리고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내야수 린즈셩과 린이취안, 외야수 가오궈후이와 린져슈엔 등으로 파악된다. CPBL에선 중신슝디와 푸방 가디언스 소속이 각각 8명이다. 대체로 투수력보다는 타격을 믿어야 하는 선수 구성이다.


자국 국가대표를 바라보는 대만의 여론도 그리 좋지는 않다. 대만 야구팬들은 벌써부터 "1라운드 탈락은 기정사실"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어느 대회보다 기대감이 낮다.


그러나 대만은 역대로 한국과는 치열한 경쟁을 했던 팀이다. 한국이 일본에 그렇듯, 대만에 한국은 투지를 불태우게 하는 팀이다. 방심은 금물. 대만전에선 최강의 전력과 플레이로 초반부터 승기를 잡아야 한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홈팀 한국은 대만에 7회까지 2-3으로 뒤지다 8회 4득점으로 힘겨운 역전승을 거뒀다. 이 경기처럼 초반 리드를 당한 뒤 대만의 기백에 힘든 경기를 한 경우가 과거에도 많았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대만 대표팀은 과거에 비해 약체다. 그러나 한국이 '객관적인 전력'이 앞서 국제 대회에서 일본을 꺾은 적이 있었나.


김윤석(KBO 전력분석원·대만야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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