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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야구 이야기/CPBL 28년(2017년)

2017년 대만 프로야구 연맹 사무총장이 새로 임명되었다.

한국 프로야구 연맹의 사무총장에 해당하는 CPBL 비서장에 얼마 전 개인사정으로 사직한 주캉쩐(朱康震: 1970년 생)의 뒤를 이어 前슝디 엘리펀츠 선수 출신의 '펑셩시엔(馮勝賢)' 씨가 임명되었습니다.


이는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 대만 프로야구의 사무총장이 된 사례가 되었습니다. 선수 은퇴 후 前 슝디 엘리펀츠와 EDA 라이노스 팀의 수비 코치와 잠시 감독을 대행했고, 사직한 후 각종 정부 활동과 야구 해설자로도 활약했습니다. 


EDA 라이노스 감독 시절의 펑셩시엔 씨 모습/ 사진 자유시보 제공


오늘 펑셩시엔 신임 비서장(秘書長:미수장)은 연맹에 들러 직원과 인사를 했고, 수일 내로 정식 임명될 것입니다.


펑셩시엔 씨는 1975년 타이베이 시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타이중의 타이핑(太平)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하여 윌리엄스 포트 리틀야구 세계 대회에서 대만 대표로 출전했고, 메이허(美和) 중고를 거쳐, 대만체육원 야구부에 입단 후 군 문제로 루광야구부(陸光棒球隊: 한국으로 말하면 상무 야구부로 나중에 국가대표 상비군 야구팀으로 바뀐다)에서 활동한 후 1999년 슝디 엘리펀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선수 시절 통산 690게임에 출전하여 647안타 13홈런, 213타점, 319득점, 통산타율 0.255를 기록했습니다. 연속 출장 기록도 556게임이나 기록하여 전체 리그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9년 리그에서 처음 뛰었지만, 적은 타석으로 신인왕 후보 자격이 유지되어 결국 2000년에 신인왕도 수상했습니다.


펑셩시엔 씨는 어릴 적 윌리엄스 포트 리틀야구 세계대회 대만 대표를 시작으로 1995년 유니버시아드, 1997년 월드포트(네덜란드)대회, 1998년 세계야구 선수권대회와 방콕 아시안게임에 참가했고, 1999년 대륙간컵,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 대만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슝디를 대표하는 2루수로 활동했고, 펑셩시엔 사건*으로도 유명한 그는 선수 은퇴 후에는 슝디 2군 수비코치와 2군 감독 등을 거쳤고, 다시 EDA 라이노스 팀의 내야수비 코치와 2013년 9월 6일부터 기존 감독이었던 황지옹롱이 주심과 충돌하여 세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을 때 3일간 감독 대행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 후 2015년 야구단을 떠나 핀동현 야구주임회 부위원과 핀동현 전임코치 평가심의위원을 거쳐 교육부 체육서 야구심의위원이 되었고, 그 후에 어느 민영기업의 사장을 맡아 활동해오면서 대만 다트경기협회 준비위원 및 주임과 대만 다트경기협회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그 후에 방송으로 진출하여 웨이라이 스포츠 채널의 프로야구 해설자와 아얼다 스포츠의 프로야구 해설자를 한 후, 이번에 한국 프로야구 연맹의 사무총장 격인 CPBL 비서장이 되었습니다.


펑셩시엔 신임 대만프로야구 비서장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이번 비서장 직위는 내 인생 계획 내에 완전히 없었던 그런 수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17년을 보냈다. 신인왕도 탔었고... 아무튼, 이후 그런 경험들을 선배로서 후배에게 잘 물려주고 싶다. 선수가 은퇴한 뒤에도 코치 등 한정된 일 외에도 여러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펑셩시엔 사건* : 선수 시절 상대 팀의 고의 사구에 맞은 펑셩시엔은 변호사를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상대 팀에게 엄중 항의했습니다. (이른바 펑셩시엔 사건*) 이 사건은 2006년 9월 16일 타이난 구장에서 통이 라이언스와 슝디 엘리펀츠와의 경기에서 6회 말 통이 팀이 12:1로 크게 앞서던 중 통이 주자가 도루를 하자 이에 격분하여 슝디 투수가 상대 타자를 맞췄고, 다시 통이 팀은 보복으로 투수 린위에핑에게 고의 사구를 지시*하여 타자 펑셩시엔의 머리를 겨냥해 던졌으나 빗나갔고, 다시 148km/h의 속구로 펑셩시엔의 팔꿈치를 맞춰 결국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습니다. 


경기 후 린위에핑은 코치진의 지시였다고 털어놨고, 다음 날 펑셩시엔은 기자회견을 하여 만약 통이 팀이 일본인 감독과 투수 코치의 직무를 정지시키지 않으면 정식으로 고소할 것이라고 엄중 항의했습니다. 이에 다음날 통이 팀의 일본인 감독 오하시 유타카(大橋 穣)는 단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펑셩시엔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한 점을 정식으로 사과했고, 펑셩시엔이 받아들이면서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변호사를 대동하여 기자회견을 열었고, 정식으로 법률에 근거하여 고소한다고 하여 이 사건을 법률야구 사건으로도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