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樂天巨人隊总教练 Jerry Royster / LA Times BASEBALL

For Jerry Royster,success in Korea needs no translation Lotte Giants

How popular is Lotte Giants Manager Jerry Royster in South Korea -- 20,000 fans once showed up to watch him tape a commercial in which he spoke Korean.

              (제리 로이스터감독과 조지훈 응원단장이 부산갈매기를 부르는 모습/또 다른 1인은 욕작권을 위해 가려드림)

영어로 된 전문 다음에 한국어 번역본이 있습니다. 입맛에 맞게 보시면 됩니다.

The former Dodger is treated like a rock star in Busan, South Korea, after taking the popular Lotte Giants to the playoffs in his first season as manager. But arguing with umps can be just plain weird.
By John M. Glionna
5:25 PM PST, March 2, 2009
Reporting from Busan, South Korea -- Jerry Royster isn't sure whether to laugh or cry: the umps just don't speak his language. Every time he races out of the dugout to argue a play, he has to bring along a translator. Last year, the former Dodgers infielder took the helm of this city's wildly popular Lotte Giants, becoming Korea's first foreign manager.
From opening day, he was a stranger in a strange baseball land. While the South Koreans pitched, hit and threw just like back home, most everything else was lost in translation.In this league, umpires apologize for unpopular calls. Some change their minds as a gesture of politeness. And the fans -- they'd never think of booing or heckling. Instead, they spend their energy belting out special songs for their hometown heroes. Many don orange garbage bags as Korean-style rally caps.

At the Giants' 2008 home opener, fans packed the stadium four hours before game time to revel in every warmup throw. They quickly elevated Royster to rock-star status -- about 20,000 once showed up, not for a game, but to watch him tape a commercial in which he spoke Korean. And forget hot dogs and popcorn. These fans crave a different variety of snacks to go with their ballpark beers: dried squid or live octopus, anyone?

Royster, 56, loves every minute. After playing for five major league teams over 17 seasons, nine of them with the Atlanta Braves, and after managing the Milwaukee Brewers, he is sure of this: Koreans are more baseball-crazy than Americans. "Lotte Giants fans are Yankees, Red Sox the Cubs fans all in one," he said. "They're more passionate than any major league team could ever dream of."

As the 2009 World Baseball Classic opens this week with games in Tokyo, Mexico City, Toronto and San Juan, Puerto Rico -- the finals will be at Dodger Stadium -- the Korean national team plans to continue its winning ways. And that, Royster said, requires no translation.
In his first year, he took the cellar-dwelling Giants to the playoffs for the first time in nine years. Even with a shorter 126-game schedule, the Giants attracted more fans than many major league teams and doubled attendance from the year before.

Long-suffering loyalists dubbed their new manager "Hurricane Royster" and composed a rally song in his honor. But Royster, now in his second season, said it's not just fans that excite him: Koreans play good baseball. Korean players' ability is well known -- except in the U.S., where only a few, such as former Dodgers pitcher Chan Ho Park, are household names.

But that is changing. Korea captured the gold medal in the 2008 Beijing Olympics without losing a game, and in the 2006 WBC lost only once -- to archrival Japan in the final. Only Cuba was ranked ahead of Korea in the International Baseball Federation's world rankings.
"We're not a secret to most countries," Royster said. "It's only the Americans who are now starting to realize there's good baseball being played here."Royster didn't know what to expect in late 2007 when old friend Bobby Valentine, manager of Japan's Chiba Lotte Marines, called him.

Shin Dong-bin, owner of the Lotte teams in Japan and Korea, wanted to shake things up by placing a foreign manager in the southern city of Busan. Valentine recommended Royster, who had just been fired as manager of the Las Vegas 51s, then the Dodgers' triple-A team.
"I told him he was going to take over the Cubs of Asia," said Valentine, a former Dodger who once managed the New York Mets. "They were a blue-collar team that never won but everybody loved anyway. The fans were dying for a competitive team and a leader."

Royster's adjustment was swift. Arriving in Seoul baggy-eyed from the 12-hour flight, he was swamped by reporters. Only after an impromptu news conference was he able to catch his connecting flight.
엠팍의 롯데팬이신 고요한 바다 님이 번역하신 것을 업어왔습데이~...쌩유베리감사~

제리 로이스터에 관한 한, 한국에서 그가 성공하는 데엔 어떤 번역도 필요없다.

전 다저스 선수인 제리 로이스터가 감독으로 첫 시즌에 인기 많은 롯데 자이언츠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후, 한국 부산에서 록스타처럼 대우 받고 있다.   한국 부산에서 기사 작성--제리 로이스터는 이것에 대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은 심판들이 단지 그의 말(영어)을 못한다는 것이다. 작년, 전 다저스 내야수인 제리 로이스터는 이 도시에서 대단히 인기있는 롯데 자이언츠의 지휘를 맡아서 한국에서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되었다.

개막일부터, 그는 낯선 야구 국가에서 이방인이었다. 한국인들은 여기 미국과 똑같이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타격하고, 야수가 수비했지만, 대부분의 그밖의 것은 통역 과정에서 사라졌다. 이 리그에서, 심판은 환영받지 못하는 판정에 대해 사과한다. 일부 심판은 정중하게 그들의 마음을 바꾼다.
그리고 팬들--그들은 야유하는 것에 대해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 팀의 스타선수들 응원가를 힘차게 부르는 데 그들의 열정을 쏟는다. 자이언츠의 2008 홈 개막전에서, 팬들은 경기 시간 4시간 전에 운동장을 채우고서 몸푸는 동작 하나하나에 소리치며 좋아했다. 그들은 로이스터를 록스타의 지위로 금세 올려 놓았다.---약 2만 명이 한번 모였는데, 경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국어로 말하는 광고를 촬영하는 걸 보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핫도그와 팝콘은 잊으라. 이 팬들은 그들의 야구장 음료와 함께 마른 오징어나 산 낙지 같은 다른 다양한 먹을 거리를 원한다. 56세인 로이스터는 매 순간을 사랑한다. 17 시즌 동안 5 메이저리그 팀에서, 특히 9 시즌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을 역임한 그는 이 사실에 대해서 확신한다. 그건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더욱 야구에 열정적이다는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팬은 양키스, 레드삭스, 컵스 팬을 모두 합친 것이다." "그들은 어떤 메이저리그 팀이 꿈꿀 수 있는 것보다 더 열정적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2009 WBC가 동경, 멕시코시티, 토론토, 푸에르토리코 산주앙에서의 경기로 이번주에 개막하므로 (결승전은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계속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로이스터는 그 사실은 어떤 통역도 필요없다고 말했다.

그는 첫 시즌에, 암흑 속에 있던 자이언츠를 9 년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126 게임이라는 더 적은 경기수에도, 자이언츠는 많은 메이저리그팀보다 더 많은 팬을 모았고 전년도에 비해 관중이 2배나 증가했다. 오래동안 고통을 겪어온 충성스러운 팬들은 그들의 신임 감독을 "로이스터 태풍"이라 불렀고, 그를 위해 대중적인 응원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2번째 시즌을 맞는 로이스터는 그를 흥분시킨 건 단지 팬 뿐만은 아니며, 한국 선수들이 매우 훌륭한 야구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들 능력은 전 다저스 투수 박찬호 같은 단지 몇 명만 친숙한 미국을 제외한다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이 변하고 있다. 한국은 2008북경올림픽에서 한 경기도 패하지 않고 금메달을 획득했고, 2006 WBC에선 단지 한 경기만 준결숭전에서 최대의 맞수 일본에 졌다. 쿠바만이 세계야구연맹 세계순위에서 한국에 앞서 있다. "우린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밀이 아니다.(널리 인정받고 있다)" "여기 한국에서 훌륭한 야구가 펼쳐지고 있다고 지금 알기 시작한 사람들은 바로 미국인 뿐이다."라고 로이스터는 말했다. 로이스터는 2007년 말 오랜 친구 바비 발렌타인 일본 지바롯데마린스 감독이 전화했을 때 무엇을 기대할지 몰랐다.

한국과 일본 롯데의 소유주인 신동빈이 남쪽 도시 부산에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서 큰 변화를 주기를 원했다. 발렌타인이 라스베가스 51, 당시 다저스 트리플A 팀의 감독직에서 막 해임된 로이스터를 추천했다. "나는 그에게 그가 아시아의 컵스를 맡을 거라고 말했다."고 한때 뉴욕 메츠 감독을 역임한 전 다저스 출신인 발렌타인이 말했다. "그들은 결코 승리하지 못한 하위의 팀이지만 모두가 어쨌든 사랑했다. 팬들은 경쟁력있는 팀과 감독을 갈망하고 있었다." 로이스터의 개혁은 신속했다. 12시간 동안 탄 비행기에서 내려 부석부석한 눈으로 서울에 도착했을 때, 그는 신문기자들에 에워싸였다. 즉석 기자회견 후에야 그는 연결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한국 대통령인 이명박대통령도 그를 만나기 원했고, 그외의 모두가 그런 것 같았다. 그는 비등록된 전화번호로 바꾸고, 군중을 헤치고 (아파트 로비에서 조차) 나가기 위해 그를 보호할 경호원을 고용해야 했다. 로이스터가 마침내 그의 새로운 팀을 보았을 때,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경기를 잘하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기업 소유주는 '이기는 걸 기대하지 말고, 단지 최선을 다하면 아마도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이스터가 선수들에게 전한 말은 간단했다. 즉, 긴장을 풀고, 즐기면서 경기를 하라는 것이다. 감독이 흔히 권위적인 리그에서, 그는 응원단장 같았다.

"우리 선수들은 하위권에 있는 데 매우 익숙하고, 많은 선수는 포기했다."라고 팀 대변인인 김건태는 말했다. "그는 그들에게 '너희들은 프로야구선수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수와 팬의 마음을 얻었다." 선수가 홈런을 쳤거나 이닝을 끝내는 수비를 했을 때, 로이스터는 자주 덕아웃 계단에서 하이파이브로 그 선수를 맞는 첫번째 사람이었다. "그것은 이곳에선 못 보던 광경이었다. 선수들 중의 한명이 바로 감독이다."라고 아론 신사노 시카고컵스의 스카우터이자 아시아 야구 전문 사이트인 East Windup Chronicle의 공동 설립자가 말했다. "한국에서 감독은 일반적으로 신이다. 이곳에서 선수를 인간으로 대해준 사람이 바로 외국인이었다."

그런데 훨씬 더 이상한 것이 일어났다. 바로 자이언츠가 이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 시즌 때, 8팀으로 구성된 리그에서 뒤에서 2번째로 마친 자이언츠가 홈 개막전을 11-1로 승리하고 계속 승수를 늘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하기까지 70게임 이상 승리했다. 그런 와중에 로이스터는 팬들의 호감을 얻었고, 한번은 기쁜 관중 앞에서 팀의 응원가를 불렀다. 개막일 첫번째 투구 4시간 전에, 로이스터는 입을 벌리고 만원이 된 3만 관중석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어떤 지정석도 사전 표 판매도 거의 없었지만, 팬들은 일찍부터 몰려 들었다.

"경기장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경기장으로 마치 개미가 개미구멍에서 나오는 것처럼 몰려 들어온다."라고 로이스터 통역인인 LA출신 한국계 미국인 커티스 정이 말했다. 7이닝에, 경기장 관리인이 오렌지색 비닐 봉투를 나누어 줘 팬들이 그들의 쓰레기를 담도록 한다. 그때가 경기장 관중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때다. 팬들은 그 봉투를 머리에 묶고, 각 선수들 응원가를 부른다. "말이 안 나와--그 열정" 로이스터가 말했다. 이기든 지든, 자이언츠 팬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쉴때까지 응원한다. 경기가 끝난 후--도로 상에서도--팬들은 라커룸에서 구단버스까지 긴 줄을 이룬다. 모두가 로이스터의 일부를 원한다.

"그건 콘서트의 열광적인 앞쪽 관객석과 같다."라고 정이 말했다. "군중 속을 지나가는 록스타의 사진을 찍어라. 그것과 같다. 사람들은 그를 잡으려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등을 친다. 때론 그는 지나갈 수 없어 뒷문으로 몰래 나가야 한다."

로이스터는 팬들 덕분에 진정된다. 그를 당황하게 하는 건 바로 심판이다. 감독들이 판정에 항의하러 거의 덕아웃을 벗어나지 않는다. 항의하는 감독은 그 사소한 언쟁을 짧게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로이스터는 좋은 옛 미국식의 흙을 차는 식의 주심에 대한 항의를 보여줬다. "제리는 경쟁자이며 그가 판정에 이의가 있을 때, 주목해라."라고 정이 말했다. "그는 그곳으로 꽤 빨리 뛰어 나간다. 그가 이미 베이스라인을 지나서야 나는 그를 따라 뛰어나가야 한다." 때로는 그 항의가 재밌다. "제리는 내가 그가 하는 말을 통역하는 걸 기다리지 않는다." 라고 정이 말했다. "그는 심판을 수세에 몬다. 그들은 '한 외국인이 영어로 나에게 고함치는데 난 그가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그 중간에 있다."

먼저, 심판들은 경의를 표했다. "내가 항의하러 나가면, 많은 심판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라고 로이스터는 말했다. "그들은 사과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나는 나가서 내 주장을 하기 전에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심판은 로이스터의 고함치는 항의에 익숙해졌지만 정은 그렇지 않았다. "때로는 심판이 제리를 진정시키려 한고, 때로는 그들이 되받아 고함친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제리는 뒤돌아서 덕아웃으로 재빨리 돌아갈 것이다. 나는 그를 단지 따라갈 뿐이다. 내가 어떻게 하겠어요?" 덕아웃 내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제리는 커티스가 충분히 빨리 통역하지 못하면 조급해진다."라고 타이거스, 트윈스, 애틀레틱스의 전 투수인 투수코치 페르난도 아로요는 말했다.

"그는 '내가 너에게 이것을 말하라고 말하고 있었다.'라고 말할 것이고 커티스는 '나는 하려고 했는데, 내가 통역을 마치기도 전에 또다른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Jackie Gleason와 Art Carney같다." 로이스터는 그가 덕아웃에 왔을 때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를 매우 환호하는 팬들. "승자를 좋아하는 건 쉽다." 로이스터는 자이언츠 팬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들이 만약 우리가 다시 지더라도 우리를 계속 사랑하기를 다만 바란다."


제런 케니스 로이스터(Jeron Kennis Royster, 1952년 10월 18일~ )는 전 미국 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2008년 현재 한국 프로 야구인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 출신으로 선수 시절의 주 포지션은 3루수로 활약을 했다. 1970년 17세의 나이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고 활동하였고, 1973년 8월 14일 정규 경기에 첫 출전, 197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이적을 했다. 이후 1985년~1986년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87년에는 자유 계약 선수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활동을 했다.

시즌 도중인 1987년 8월 26일, 당시 35세의 나이였던 그가 시카고 화이트 삭스에서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1988년에 친정팀이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이적하면서 1988년 시즌 종료 후 선수 생활을 은퇴를 했다.

1999년 몬트리올 엑스포스(마이너리그) 에서 수비·주루 코치, 2000년~2001년에는 밀워키 브루어스의 타격 코치, 이듬해 2002년에는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1년간 감독을 지냈으며, 2003년~2004년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마이너리그 수비 코디네이터를 지냈다.

2007년 시즌 말미에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전격 부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되었다. 8년만의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기여하여 2008년 9월 28일 사직 야구장의 마지막 2008시즌 페넌트레이스 홈 경기에 앞서 허남식 부산시장으로부터 명예 부산시민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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