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에서 만나면 늘 한국과 끝장 승부를 펼치며 격전을 치르는 타이완 야구에 대해서 그저 우린 한국보다 약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타이완 야구에 관해서 제대로 된 정보도 없고 막연하게나마 그저 약하지 않나? 라는 느낌만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인 선교사에게서 야구를 전수받았고, 타이완은 일본인으로부터 야구를 배웠습니다. 

 그 차이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현재 타이완의 야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 정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한국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타이완 야구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저 떠도는 풍문이나 낭설, 또는 근거 없는 소리가 난무한 현상이 많기에 10부작 기획 시리즈로 타이완의 야구역사와 그 발전사를 소개합니다. 

 각종 내용의 참조와 관련 사진 및 영상 자료는 타이완의 야후와 구글, 그리고 타이완야구 위키백과, 그리고 타이완 야구 100년사 동영상 등 여러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타이완 프로야구 팀의 중흥기

타이완 프로야구 연고지 주의 당시 구역도/제작 竹板凳


야구의 프로화가 시작되면서 그간 죽어있던 3급야구 또한 같이 부활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타이완의 프로 야구는 1989년 처음 연맹(中華職業棒球大聯盟:CPBL)을 만들었고, 다음 해인 1990년 처음 4개 팀[싼상 타이거즈(三商虎隊)와 웨이취엔 드레곤즈(味全龍), 통이 라이온즈(統一獅), 슝디 엘리펀츠(兄弟象)]으로 먼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1993년 스바오 이글스(報鷹隊)와 쥔구어 베어즈(俊國熊) 등 두 팀이 더 늘었고, 다시 1997년 허신 웨일즈[和信鯨隊:뒤에 중신 웨일즈(中信鯨)로 개명]가 추가되면서 모두 7개 팀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그러면서 프로야구가 타이완에서 부흥기를 맞이하면서 각계각층의 관심과 관중 수(아래 CPBL 관중 수 표 참조)도 꾸준히 늘어나면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최절정의 시기를 맞게 됩니다. 


각 기업체에서는 스폰서를 따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였고, 구장 광고나 각종 프로모션에서 프로야구와 관련된 마케팅을 연계하느라 바쁜 절정의 시기였습니다. 아마추어 팀의 창단도 늘어났고, 학생 야구도 덩달아 다시 많아졌고, 지원도 풍부해 졌으며, 야구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많이 늘어나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도 비교적 좋은 편인지라 이 시기를 거치면서 타이완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히 파고든 진정한 야구의 부흥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TML의 성립과 분열 조짐


타이완 직업야구 대연맹(T.M.L.Taiwan Major League)은 1996년 원래 CPBL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던 성바오 회사(聲寶公司)의 성바오 자이언츠 팀이 참가 권리금 및 여러가지 이유 등으로 참가할 수 없게 되자 당시 니옌다이 방송국(年代電視台)의 회장인 치우푸셩(邱復生)과 성바오 회사의 천청티엔(陳盛沺)의 지원 아래 1996년 1월20일 독자적으로 리그 운영 회사인 나루완(那魯灣) 주식회사를 만들어서 프로야구 운영을 맡기는 형태로 창설된 타이완의 두 번째 야구리그입니다.


사전 리그창설 준비운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 후 T.M.L은 성바오 린코우 야구장(聲寶林口球場)에서 첫 훈련을 가졌고, 1996년 6월 18일에 네 개 팀으로 정식 리그 출범을 알렸습니다. 참여 팀은 타이베이 타이양 팀(台北太陽隊/Taipei Gida), 지아난 용스 팀(嘉南勇士隊/Chianan Luka), 가오빙 레이공 팀(高屏雷公隊/Kaoping Fala)과 타이중 진깡 팀(台中金剛隊/Taichung Agan)입니다. 


1997년 2월 28일 정식으로 타이완 프로야구 연맹(T.M.L)의 첫 경기를 가지면서 타이완에서 2대 리그(TML과 CPBL)가 동시에 운용이 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위기에 봉착하다(승부조작 사건) 

1996년에 첫 번째로 프로야구 선수 등이 불법 도박과 승부 조작을 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수십 명의 선수가 구속되었고, 검찰에 의해 기소 되었으며 그대로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엄청난 사건으로 타이완의 프로 야구계는 이후로 길고 긴 암흑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각종 광고나 마케팅 등의 구단 수익 효과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고, 관중들도 커다란 실망감으로 점차 야구장을 떠나게 되었고, 구단은 줄어드는 수입으로 인하여 선수를 팔거나 방출하거나 급여를 줄이는 긴축 재정을 하면서부터 점점 전체적인 실력도 떨어지게 되었고, 관중들이 느끼는 재미도 없어지면서, 구단의 재정난이 반복되고, 그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승부 조작과 암흑 세력과의 연계로 불법 도박에 다시 빠지는 등의 악순환의 고리에 올라타게 되었던 것입니다.


TML 리그의 총 관중 수와 평균 관중 수

  TML 연도     게임 수   총 관중수(명)   평균 인원(명)
 TML1996년        192      696999       3630
 TML1997년       216       695936         3222
 TML1998년        168       553659         3296
 TML1999년        168       568080         3381
 TML2000년       120       217716         1814
 TML2001년        144     184103       1278


첫 번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약 9년 후인 2005년에 다시금 20여 명이 연루된 승부 조작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연맹의 기록을 압수하고 조사한 후에 약 20여 명의 선수들과 감독, 코치 등의 연루자를 색출하여 기소하는 등 두 번째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그 후에 많은 선수들과 프로야구 관계자 등이 자정작업을 위한 선언을 하고 자체정화에 나서는 등의 잠깐동안 깨끗해지기는 하였지만 프로야구계에 이미 암흑 세력이 깊게 뿌리를 내려 뻗은 상태에서는 그 효과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야구 구단들은 자정작업을 하거나 클린 선서 운동을 하거나 여러 가지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였습니다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그 대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퇴직 경찰들로 구성된 '자정단(維安小組/ Maintenance Safe Group)'의 창설입니다. 하는 일은 폭력배로부터 선수들의 보호와 검은 세력과의 차단과 구장 및 현장에서의 폭력 및 도박에 관한 관련 증거의 수집과 그 예방이 주목적이지만 실제적으로 그 효과가 선수들에게까지 미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선수들는 여전히 비교적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시합에 뛰어야 했고, 노후대책이 전혀 안된 상태에서 부상이나 각종 이유 등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면 생계가 안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시 승부조작의 유혹에 빠져들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늘 상주하고 있었던 셈이었지요.


그래서 몇 명의 퇴직 경찰들로서는 그런 일들을 모두 예방하면서 막아내기에 사실상의 역부족인 셈이었죠. 이것은 구단들도 역부족이라고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폭력 조직이 개인적으로 선수들을 꾀여내던가, 아니면 경기 외적인 시간에 납치를 해서 위협을 한다든가의 사건을 막아내자는 것인데 실상은 비일비재로 계속 납치와 협박과 유혹이 있었으며, 그것들을 몇몇 퇴직 경찰관들이 다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번에도 완벽한 수술로 뿌리깊은 악성 종양을 다 도려내지 못한 채 서둘러 배를 닫아버리는 미봉책에 그치면서 다시 그 뒷맛을 남겨놓은 채 야구판은 상처만 입고 다시 어떻게 흘러갑니다. (그 불씨가 다시 2008년에 미디어 티렉스 팀의 폭력배가 개입된 불법 승부조작 및 도박 사건으로 터져나와 팀이 법원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었고, 중신 웨일즈 팀은 그런 여파로 자진 해산을 하게 됩니다. 중신 웨일즈 팀은 그 후 다시 재창단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CPBL의 총 관중 수와 평균 관중 추이

      연도별    총게임수       누적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1990      180          899,955      5,000
       1991      180        1,050,405      5,836
       1992      180        1,238,063      6,878
       1993      270        1,600,549      5,928
       1994      270        1,607,677      5,954
       1995      300        1,646,361      5,488
       1996      300        1,364,424      4,548
       1997     336        685,832     2,041
       1998      315          690,089      2,191
       1999      278*          496,433      1,786
       2000      180          301,671      1,676
       2001      180          337,707      1,876
       2002      180          532,304      2,957
       2003      300          958,596      3,195
       2004      300        1,051,517      3,505
       2005      301        1,025,695      3,408
       2006     300        679,205     2,264
       2007     300        612,887     2,043
       2008      298**          572,692      1,922
     총계    4,948      17,352,062     3,507
*1999년은 지진으로 인하여 22게임이 취소되었습니다. 
**2008년은 미디어티렉스팀의 강제 해체사건으로 2게임이 취소되었습니다.
굵은 글씨체는 도박사건 이후의 관중 감소 추이를 강조함


프로야구 팀들의 해체 파도와 그 이후.

1996년 쥔구어 베어즈는 구단의 경영권을 싱농기업(興農企業)에 넘기면서 싱농 베어즈(興農熊隊)로 재탄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뒤에 다시 싱농 불스(興農牛)로 개명을 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스바오 이글즈가 정식으로 해체됩니다. 도박 사건에 크게 연루되면서 기업가치가 폭락하고 구단의 재산인 선수들이 대거 구속되면서 더이상 프로야구 팀을 꾸려갈 여력이 없는 것이 원인이 되어 구단을 해체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1999년 원년 팀이었던 싼상 타이거즈와 웨이취엔 드레곤즈 역시 팀을 해산시켰습니다. 처음 4개 팀으로 시작되어 7개 팀까지 발전되었던 타이완의 프로야구 판은 이제 다시 4개 팀(슝디 엘리펀츠, 통이 라이온즈, 싱농 불스, 중신 웨일즈) 체제로 돌아갑니다.


두 연맹의 경쟁구도


타이완 메이져리그인 TML은 CPBL보다 뒤늦게 생겨났지만 바로 경쟁구도를 갖추면서 겉모습은 본격적으로 경쟁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그 효과는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구단이 존속하려면 상업적인 이익을 봐야 하는데, 연이어 터진 불미스러운 사건과 사고들로 인해 일반 대중들의 관심이 떠나버렸고, 그래서 구단 자체의 수익도 현저히 줄어든 상태에서 시스템 상으로만 경쟁 구도였지 상업적으로 도움이 별로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수 수급면에서도 유망주들은 어떻게든 해외로 빠져나갔고 남은 자원을 가지고 TML과 CPBL이 선수 확보 경쟁을 했기에 야구 자체에 대한 발전도 더디고 오히려 지원도 없어지고 심리적인 의욕이 떨어진 선수들로 인해서 전체적인 리그가 하락세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두 연맹의 통합에 대한 내용과 다시 인기를 살리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 등을 소개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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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프로야구 사상 최다관중 베스트 10을 정리했습니다. 

살짝 한 번 눌러주세요.


아래의 표를 보면 타이완 프로야구 원년인 1990년의 관중 점유가 폭발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 베스트 10의 리스트에서 무려 5개의 순위가 프로야구 원년에 기록된 관중 수였습니다. 

1957년에 건립된 타이베이 시립야구장은 원래 11,000명의 관중석이었으나 이후 확장을 하여 14,000명까지 늘렸습니다.

그중에서 최고의 관중은 2004년 2월 28일 프로야구 개막전인 싱농 불스와 슝디 엘리펀츠와의 경기에 무려 18,342명의 관중이 들어와서 타이완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타이베이시립야구장은 초기 프로야구를 주도하는 대표 구장으로 활용되다가 2000년 12월에 철거되었습니다.


타이완 남부 지역의 가오슝에 있는 청칭후(澄清湖) 야구장은 20,000명(내야 14,679석. 외야 5,210석)이 들어가는 타이완에서 첫 번째로 큰 대형구장입니다. 이 구장은 예전 라뉴 베어스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다 타오위엔으로 떠난 후 비어 있다가 올해부터 새로 싱농 불스를 인수한 이따 시니우 팀이 홈 구장으로 사용합니다.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과 타이완전에 모인 수많은 관중 모습/사진 @타이완 WBC홈페이지 제공


여러 번의 승부 조작으로 국내 리그에 환멸을 느낀 타이완의 야구 팬들이 점점 야구장을 찾지 않게 되면서 평균 관중 수는 작년에 겨우 경기당 2,433명이 들어오는 하락세에 있는데, 타이완 프로야구협회는 예년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팀이 리그에 가입하게 되면서 전력을 많이 보강했고, 세계적인 야구스타인 매리 라미레즈까지 뛰게 되면서 부활의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타이완 팀이 사상 처음으로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되면서 타이완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소속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이젠 소속팀의 경기에 나서면서 프로야구의 인기도 같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을 해봅니다.


이제 다시 승부조작이라는 악재만 생기지 않는다면 바닥을 친 프로야구의 인기는 올라갈 것입니다. 향후 2~3년 이내에 다시 5개 구단, 6개 구단으로 만들어서 약간 무미건조한 지금의 리그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CPBL 연맹의 청사진이 실현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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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타이완에 프로야구가 생긴 이래로 작년까지의 관중 총수와 평균 인원을 구해봤습니다.

아래 표를 보면 원년부터 1996년까지 5천 명 대를 유지하다가 97년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관중 수가 급감했습니다. 전년 대비 무려 55.12%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납니다. 2000년까지 계속 하락을 보이면서 평균 1,600명 대라는 처참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도 조금씩 성장을 보이다가도 승부조작이 터지면 급감하는 반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네 팀밖에 없는 구조라 게임의 재미가 반감되고 있어서 흥행의 요소가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빨리 최소한 두 팀이 더 생겨서 프로리그의 재미가 되살아나기를 기원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는 승부조작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립니다. 
 

 한 번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2010년 대비 2011년의 관중 수가 증가 추세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이제 올해에도 계속 증가 추세를 보여서 평균 4천 명 대를 달성한다면 구단 운영의 최소한의 기본 숨통은 좀 트일 것으로 봅니다. 

타이완의 프로야구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 관중 증감이 구단 수익과 직결되는 구조라서 더욱 민감합니다. 지난 자료들을 보면 수익 분기를 가져올 수 있는 평균 관중이 최소한 4천 명 이상이 되어야 어느 정도 물품 판매와 광고 판매, 그리고 텔레비전 중계료도 같이 올라가서 실질적인 구단의 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승부조작의 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구단의 재정 건전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선수에 대한 처우 개선이 되어야 하니까 선수에 대한 처우 개선과 제도의 정비,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를 하루빨리 정비하는 것이 타이완 야구를 살리는 길이라고 봅니다.

일단 작년부터 1군 등록 최저임금제(1군 등록일 기준 이상일 시 최저 7만 위엔의 월급)와 선수 FA 제도를 도입하여 어느 정도의 선수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고, 또 올해부터는 그간 문제가 많았던 2군 리그를 정비해서 부실한 선수 수급 문제를 제대로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정부의 지원도 같이 마련되어서 앞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다행입니다.

이제는 조금 더 노력하면 앞으로 몇 년 안에 새로운 구단 창단까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타이완 사람들의 야구장 찾기가 더 활발해지고 프로야구 시청률도 같이 올라서 좋은 시너지 효과를 보였으면 합니다.

대치동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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