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햄 출신으로 꽤 쏠쏠한 활약은 했던 양다이강 선수는 올해 FA선언을 했습니다. 


대만 출신 외야수 양다이강(陽岱鋼) 선수를 두고 그동안 오릭스 팀과 라쿠텐, 요미우리 팀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양다이강 선수는 오릭스와 라쿠텐의 제의를 거절하고 요미우리에 입단하기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계약은 총 5년에 15억 엔(대만 돈으로 4.2억 위안 / 한국 돈으로 약 150억 원)의 규모로 계약을 체결했고, 발표는 19일 기자회견을 가지고 입단식을 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대만 미디어에 떴습니다. 


니혼햄에서 요미우리로 간 양다이강 선수 / 사진 자유시보 제공


이번 시즌 요미우리는 스토브리그에서 적지않은 돈을 썼습니다. FA 시장에서 야마구치 슌(山口俊), 모리후쿠 마사히코(森福允彥) 두 명의 투수와 계약을 했으며 외야수로는 양다이강을 보강하여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세 명의 FA와 계약한 첫 번째 팀이 되었습니다.


원래 요미우리는 3년 10억 엔을 준비했다는 말이 전해졌습니다. 그 후에 일본의 니칸스포츠 보도에 따르면 4년 10억 엔의 규모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요미우리 그룹 계열의 스포츠호치 지가 보도한 5년 15억 엔이라는 특종이 뜨며 대만 매체에도 알려졌습니다.  


요미우리는 근래 들어 우타가 부족했기에 공수주를 겸비한 타자인 양다이강을 데려오기 원했습니다. 다른 팀도 비슷한 조건을 내걸었지만 요리우리라는 상징성과 본인 말로는 거주 환경(일전에 대만을 왔다갔다하기 편한 곳)때문에 아마도 자이언츠를 선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두 타자로 나설 수도 있고, 중심 타선에 들수도 있는 공격형 타자인 양다이강의 요미우리 가입으로 대만은 떠들석합니다. 일본에 진출한 선수 중에서 가장 큰 금액으로 계약 체결했고, 또 교진으로 대변되는 팀의 상징성때문에 더 열광적입니다.


양다이강 선수가 니혼햄 소속으로 통산 NPB에서 올린 성적입니다.


그렇기에 요미우리는 대만의 선수를 데려와서 중계권과 상품 판매, 그리고 투어 방문 등의 부수적인 경제적 효과도 같이 기대할 수 있기에 거액을 주고 양다이강 선수를 데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 한국의 이승엽 선수와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겠죠.


아무튼, 양다이강 선수는 이제 WBC에서 만약 부상이 제대로 잘 회복된다면 소속팀이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으로 대회에 출전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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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MLB 퓨처스 올스타전 월드 팀(미국 외의 선수로 꾸리는 팀)에 대만인으로서는 13번 째로 투수 후즈웨이(胡智為)가 선정되었습니다. 


올 시즌 더블 A에서 출발해서 트리플A로 오른 후 한 게임을 던진 기록이 있는 후즈웨이는 올해 14게임에 나와 77.2이닝을 던져 75피안타를 맞았습니다. 탈삼진 72개 기록. 전체 전적은 2승 6패 ERA 2,67입니다.


사진출처 대만 자유시보(自由新聞)


그동안 퓨처스 올스타에 출전한 대만 선수로는, 

천진펑(陳金鋒), 차오진후이(曹錦輝), 왕지엔민(王建民), 후진롱(胡金龍), 천용지(陳鏞基), 린져슈엔(林哲瑄), 뤄지아런(羅嘉仁), 천쥔시우(陳俊秀), 쟝즈시엔(蔣智賢), 판즈팡(潘志芳), 리쩐창(李振昌), 황웨이지에(黃暐傑) 등 12명이었고, 그 중에서 7명이 메이저리거가 되었습니다.


사진출처 대만 자유시보(自由新聞)


후즈웨이(胡智為)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대만 대표팀 투수로 출전했던 우완 정통파 투수입니다. 한국과의 예선에서는 등판(사실 이때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후문입니다.)하지 않았고, 일본과의 준결승 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썩 좋지 못한 모습(2.1이닝동안 3실점-2자책을 하였고 5개의 사사구를 내주면서 흔들렸기에 강판당했고, CPBL 슝디 팀 투수인  쩡카이원이 뒤를 잘 받쳐주면서 결승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작은 판웨이룬으로 불리는 후즈웨이는 1993년 생으로 185cm, 104kg으로 당당한 체격 조건을 가지고 있고 150km/를 넘나드는 속구와 팜볼 등 다양한 변화구를 장착한 우완 정통파 투수입니다. 2013년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하여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2015년 초에 템파베이로 트레이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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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스 25인 명단을 보신 분이라면 대만에서 대만의 빛이라고 불리는 투수 왕지엔민(王建民)의 이름이 올라온 것을 보셨을겁니다.



마지막 시범경기 등판에서 상대 타자의 강한 타구를 오른쪽 가슴 부분에 맞으면서 큰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지금 소식으로는 큰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 타구에 맞은 이후 혹시나 부상을 입어 다 잡은 메이저행 티켓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모든 대만 사람들이 했었죠.



로열스 유니폼을 입은 대만의 빛 왕지엔민 / 사진 로이터(Reuters)통신


로열스로 온 후 선발 재진입을 위해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선발로테이션에는 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당히 불펜진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CBS Sports 인터넷 뉴스에 36세의 왕지엔민이 2013년 이래 계속 마이너에만 머물며 재기를 꿈꾸었는데 드디어 그 기회를 잡았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양키스 출신으로만 38승을 거둔 왕은 다리와 어깨 부상 등으로 계속 어려움을 겪어 왔었고, 다시 한 번 영광을 되찾기 위하여 절치부심하며 마이너에서 계속 도전을 이어왔습니다.


*참고로 왕지엔민의 연봉은 100만 달러에 옵션 조항 150만 달러까지 최고로 받는다면 250만 달러가 됩니다. 마이너시절에는 16,000달러를 받았었죠. 옵션 조항은 선발 횟수, 투구 이닝, 불펜 혹은 마무리 출장 게임 수 등으로 최고 150만 달러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중간에 WBC에서의 쇼케이스로 일본에서 강력한 콜이 왔었지만 고사하고 계속 메이저로의 도전을 선언했었죠. 

Kansas City Star 기자 Rustin Dodd 는 트위터로 로열스 25인 명단 확정, 왕지엔민은 불펜 한 자리를 차지했다고 적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뉴욕의 Sportsradio 66 WFAN 라디오 트윗은 @YankeesWFAN 왕지엔민의 로열스 입성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축하한다고 맞장구를 쳤네요.



작년 말 구속 회복 후 좋아하는 왕지엔민과 트레이너의 모습



예전에 누가 저에게 묻기를 천웨이인이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 대만에서 왕지엔민보다 더 인기가 있냐고. 뭐 좀 과장되게 말하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씀입니다.



한국의 박찬호와 일본의 노모 히데오, 그리고 대만의 왕지엔민은 그 세계에서의 선구자 격입니다. 인기의 범위가 완전히 다릅니다. 슬쩍 바람을 피고도 소리소문없이 다들 쉬쉬하고 넘어갈 정도니까요. ㅋ



대입해서 왕지엔민이 박찬호라면, 천웨이인은 류현진 정도라고 하면 비슷하겠네요. 아무튼, 이번 로스터 진입 발표에 대만의 거의 모든 매체에서 특집 기사를 써서 그의 복귀를 매우 환영하고 있습니다.




작년 말 각고의 훈련 끝에 구속 회복을 한 왕지엔민의 앞날이 계속 반짝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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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인디언스 3A 소속의 타이완 투수인 리쩐창(李振昌)이 메이저 콜업을 받았다는 소식입니다. 아직 공식적으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에 타이완 언론으로부터 흘러나온 소식입니다. 

만약 리쩐창이 공식적으로 승격이 발표된다면 타이완 국적으론 아홉 번째 메이저리거가 됩니다. 

더블A Akron Aeros에서 뛰던 모습/사진 http://www.mlbtw.net

리쩐창 선수는 올 시즌 부상으로 고생을 하면서 마이너리그에서 16게임에 나와서 16.1이닝을 던졌고 7피안타, 25탈삼진, 8사사구를 기록 중입니다. 리쩐창은 시즌 초 타이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컨트롤이 약간 불안함은 있다.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즌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구단에서 계획한대로 착착 훈련 일정을 따라주면서 컨트롤 등에서 점차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비록 어제 열린 마이너 등판에서 동점 홈런을 맞는 등 결과는 조금 안 좋았지만 평균 91~92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최고 94마일)과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던지는 사이드암(쓰리쿼터로도 던지는) 강속구 투수로 조만간 메이저 콜업이 될것이라는 예상을 했는데, 어제 경기 후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해졌습니다.


 

Chen-Chang Lee 2011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서의 투구 모습/동영상 유튜브


 리쩐창은 마이너리그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 선발되었는데 메이저로 콜업이 되면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타이완 선수로는 아홉번째 메이저리거가 탄생하였다. 

리쩐창 선수는 2009년  제2회 WBC 지역예선 한국전에 선발등판하여 1회 사사구 네 개 포함 2:0 만루의 상황에서 한국 타자 이진영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등 부진한 성적을 보이면서 바로 교체되었던 투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는 제구도 안 되었고, 구속도 위력적이지 않았지만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한 노력을 통해 많은 성장을 한 투수입니다. 타이완이 참가한 국제대회에서 쿠바를 상대로 잘 던진 기록때문에 '쿠바킬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 투수입니다.


이로써 타이완 국적의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는 천진펑(陳金鋒/LA 다저스), 차오진후이(曹錦輝/콜로라도록키스), 왕지엔민(王建民/뉴욕 양키스), 궈홍즈(郭泓志/LA 다저스), 후진롱(胡金龍/LA 다저스), 니푸더(倪福德/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천웨이인(陳偉殷/볼티모어 오리올스), 린저슈엔(林哲瑄/휴스턴 애스트로스)과 이번에 승격된 리쩐창(李振昌/클리블랜드 인디언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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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의 청소년대표인 18세 소년 린즈웨이(林子偉)가 11일 미국으로 건너가서 신체검사를 받았고 무사히 통과하여 정식으로 보스톤 레드삭스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미국 베이스볼 아메리카지에 의해 소개되었습니다. 계약금은 205만 달러로 타이완 출신으로는 초대형 계약입니다.

작년 11월에 쓴 타이완 유망주 소개 글에서 나온 린즈웨이의 소식은 80만 달러 선에서 미국 진출할 것이라고 예측을 하였지만 1년 후에 몸값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원래는 양키즈 팀과 계약 후 진출하기로 되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지만 1년 후에 결국 보스톤 레드삭스로 진출하였습니다.


[타이완의 유망주 소개] 린즈웨이(林子偉) 몸값은 80만 달러 선.

예전 글 보기는 위의 링크를 눌러주세요.



린즈웨이는 좌타자로 컨트롤이 뛰어나고 컨택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잘 성장해준다면 분명히 3할 이상의 타격 실력을 보일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왜소한 신체조건으로 인한 장타력의 부재는 보완해야 할 약점입니다.

어느 국제 스카우트의 말은 "유격수로도 충분히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고 합니다. 또한, 베이스볼 아메리카지에 따르면 현재 보스톤의 마이너 팀에는 잠재력이 좋은 유격수가 별로 없기에 장차 린즈웨이가 잘 성장을 해 준다면 미래에 주전 유격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린즈웨이가 받은 205만 달러의 계약금은 1999년 차오진후이(曹錦輝)가 받았던 220만 달러에 이은 타이완 역사상 두 번째(3위는 왕지엔민의 201만 달러)로 큰 계약입니다. 2011년 보스톤과 미네소타, 오클랜드, 클리블랜드, 템파베이, 시애틀, 뉴욕 양키스, 아틀란타 브레이브스 등의 관심을 받으면서 경쟁 체제가 갖춰졌고 80만 달러로 평가받던 작년에 비해서 여러 구단의 경쟁 등으로 205만 달러로 몸값이 오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타이완의 유명 야구명문인 가오위엔공상(高苑工商)을 졸업하는 린즈웨이는 1994년 생으로 175cm/73kg의 약간 왜소한 체격의 좌투좌타의 선수로 투수와 유격수로 활약하면서 각종 국내대회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작년부터 해외 스카우트들의 표적이 된 선수입니다. 

IBAF가 선정한 2010년 가장 뛰어난 청소년야구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5월에 미국 MLB 공식 사이트가 발표한 올 시즌 잠재력이 큰 20명의 선수 가운데 18위를 차지한 선수입니다. 2010년 아시아청소년 야구대회에서 5게임에 나와 10안타 2홈런 0.476의 고타율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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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인디안스의 트리플 A 'Columbus Clippers' 팀 소속인 타이완 출신의 리쩐창(李振昌)선수가 지난 28일 피츠버그 트리플 A 팀과의 경기에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동안 무실점으로 잘 막으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3:3 동점이던 9회 초에 등판하여 세 타자를 상대로 삼진 2개와 무안타 무사사구 무실점(평균자책 2.20)을 기록하며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고, 이어 9회 말에 터진
'Beau Mills'선수의 희생플라이로 결승점을 뽑으면서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이로서 리쩐창은 트리플 A에서 4승(무패) 째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리쩐창/사진 http://www.mlbtw.net

리쩐창은 올 시즌 중반에 트리플 A로 등업된 후에 모두 19게임에 나와서 28.2 이닝동안 41개의 탈삼진을 잡는 뛰어난 구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더블 A에서는 39.2 이닝에서 5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여 올 시즌 모두 97개의 탈삼진을 기록 중입니다.

현재 리쩐창은 트리플 A에서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고 구속도 지난 경기에서 155km/h를 기록하면서 90마일 초, 중반대를 꾸준히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약점으로 지적되는 변화구의 예리함과 컨트롤이 문제라고 합니다.


아무튼, 꾸준히 이 정도의 활약이 계속 된다면 새로운 타이완 메이져리거의 등극이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리쩐창 선수는 지난 제 2회 WBC 지역예선 한국 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1회 사사구 네 개 포함 2:0 만루의 상황에서 한국 타자 이진영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등 부진한 성적을 보이면서 바로 교체되었던 투수입니다. 당시는 제구도 안 되었고, 구속도 위력적이지 않았지만 이후 미국에서 꾸준한 노력을 통해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투수입니다.

올 시즌 3월에는 미국의 'Baseball America'에 의해 아시아 10대 잠재력 선수에 한국의 '이학주'와 일본의
'니시오카 쓰요시(西岡剛)'에 이어 3위를 차지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국제전에서 쿠바를 상대로 잘 던진 기록때문에 쿠바킬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 선수의 미래가 어떨지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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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중앙사 샤오바오샹 기자의 소식에 따르면 일본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팀이 아시안게임 타이완 대표 좌완 선수로 뛰었던 천관위(陳冠宇) 선수를 영입, 확정하였습니다. 이에 천관위 선수는 8일 성명을 발표하고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결실을 얻어 빠른 시일 내에 1군에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천관위 투수의 역투 모습 / 사진제공 LiLi)

요코하마 웹사이트에도 천관위의 가입 소식을 전하면서 20세의 좌완 투수로 신베이(新北市) 출신의 현재 국립체육대학 학생인 천관위 선수를 소개하였습니다. 천관위 선수는 140km/h 초, 중반대 직구와 변화구의 수준도 어느정도 있어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유망주라고 소개하였습니다. 2

010년 하롄배와 대륙간컵 대회와 아시안게임에서 타이완 대표로 활약하였고, 국내 리그에서는 7게임에 나와서 30이닝 무실점의 기록을 세우면서 5승 무패를 거둔 투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미디어 발표에 따르면 천관위 선수의 계약 정도는 2000만 엔의 계약금에 대략 600만 엔의 연봉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2월 중순에 팀에 합류하여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요코하마 팀은 지난 번에도 타이완 출신 좌완들을 영입한 바 있습니다. 핀동현 출신의 좌완 왕이쩡이 작년에 영입을 하였고, 올해는 또 천관위가 영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가 되는 선수입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이대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은
No.47 천관위 투수)

한국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선수인데,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때 중간계투로 나와서 이대호 선수에게 초초대형 홈런을 맞은 투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선발이던 판웨이룬 투수 뒤를 이어서 올라왔지만 타이완 현지 국민들로부터 왜 신인 선수를 올렸냐라는 원성을 들을 정도로 중요한 타임에서의 깜짝 놀란 등판이었고, 그런 연유로 긴장을 많이해서 제대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지요. 결국 1.2 이닝동안 5피안타 2피홈런 4실점, 방어율 21.69를 기록하고 내려갔습니다.

아직은 어리기에 충분히 일본에서 좋은 변화구 한, 두개를 익히고 직구 구속만 좀 더 가다듬으면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망주이기에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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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제목처럼 저에게 질문하신 분들이 꽤 많습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저는 충분히 올 수 있다라고 봅니다. 그리고 분명히 한국에서 뛰고 싶어 하는 선수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와서 잘못할 경우에 벌어질 자국에서의 반응때문에 드는 심적인 부담이 선수들 사이에서 매우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에 확실히 타이완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해서 조금 못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라는 반응인데 비해서, 한국은 대부분의 타이완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실력적으로 타이완과 비등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만약 관심을 받고 한국에 진출했다가 만의 하나라도 부진하거나 못하면 타이완 망신과 함께 겨우 그거하려고 일본이나 미국에 안가고 한국에 갔느냐! 라는 비난이 엄청나게 쏟아질 것을 두려워하는 선수들이 많더군요.(돈 차이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나 미국 놔두고 굳이 왜 한국으로 가는가에 대한...뭐 그런 것이죠.)

제가 타이완에서 아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몇명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그들에게 가감없이 물어봤습니다. 솔직하게 한국 진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실제로 한국에서 트라이 아웃을 받을 뻔한 선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저를 통해서 국내 모 구단과 연락을 취했었고, 현실적으로 조건들이 안 맞아서 결국 시도 자체도 취소 되었지만요...)

그러니까 그들의 속내는 '야구 선수로서의 환경(인프라가 아닌)도 타이완보다 좋고, 여기보다 대우(대략 타이완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의 몇 배정도 된다고 보면 됩니다.)도 잘 받을 수 있어서 흥미가 간다. 하지만 누가 가든 타이완 출신 제1호 선수는 정말 힘들 것이다. 1호 진출자가 되려면 분명 실력도 뛰어난 타이완 스타급 선수가 될텐데, 만약 한국에서 잘못하기라도 하여 문제가 된다면 엄청난 후폭풍(자국민들의 맹렬한 비난과 냉대가 매우 큰 부담이지요.)이 불어올 것이다.' (그래서 1호 진출자가 누가 되든지 나라면 그 다음을 기다릴 것이다라면서 말하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주저 주저하고 있지만 또 전혀 생소한 언어적인 장애(영어나 일어보다 훨씬 어려운 한국어의 적응이 쉽지는 않겠죠.)와 함께 음식이나 기타 환경에 관한 적응 장애가 분명 있기 때문에 타이완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받지 않고서는 한국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지만 타이완보다 한국이 엄청나게 많이 챙겨줄 수 있는 형편도 솔직히 아니고, 타이완보다 앞서기야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보다는 금액 차이도 적기에 큰 동기부여가 더 어려운 형편이지요.

실제로 한국의 몇몇 구단에서 타이완의 투수 유망주인 황즈롱 선수와 컨택을 해서 데려오려고 한 적도 있습니다. 다만 일본 구단과의 싸움에서 지면서 무산되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들이 겹쳐지면서 타이완 선수들의 한국 진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상태입니다.


그러나 분명 누군가는 한국으로 진출을 할 것입니다. 그 때 전 그의 옆에 서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투수라면 저도 같이 마운드에 올라 가겠죠? ㅎㅎㅎ 그때 등판 마킹을 대치동갈매기라고 하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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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엔민(王建民)과 필라델피아가 만나다. 필리즈 왕지엔민과의 접촉을 인정.

필라델피아 구단의 사장 아마로는 몇 일전에 언론사와의 접촉을 가지고 구단에서 왕지엔민의 에이전트와 만남을 가졌다고 밝혔습니다. 필리즈에서 왕지엔민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였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왕지엔민은 부상에서 회복하여 70% 정도의 몸상태라고 그의 주치의가 밝혔습니다.

왕지엔민의 현재 상태로는 메이져 계약은 곤란하고 마이너 계약으로 하는것이 최선이라고 본다고 합니다. 필리즈 구단은 현재 5선발 요원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스토브리그에서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로이 할러데이(Roy Halladay)와 계약을 하여 선발진을 강화한 상태이고, 또 제 5 선발요원인 노장 제이미 모이어(Jamie Moyer)는 아직 수술 후의 상태가 어떤지 명확하지 않기에 선발 요원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왕지엔민과 접촉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왕지엔민이 어느 팀으로 가는가에 대해서 전 타이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온 나라 전체가 일관되게 양키즈 팬이 되었었지만 이제 소속 팀이 바뀌면 그 팀이 바로 타이완의 국민 팀으로 되는 것이고, 그에 따른 구단의 유, 무형의 수익도 엄청날 것입니다.

현재 적극적으로 영입의사를 보이는 팀은 메츠와 필리즈 등입니다. 왕지엔민이 가까운 친구에게 심경을 밝힌 내용(아마도 양키즈로는 돌아가지 않을 듯 하다.)이 언론에 유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팀들이 더 적극적으로 접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타이완 언론에 따르면 왕지엔민이 예전에 같은 싱커 볼을 주무기로 쓰는 로이를 우상으로 생각 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 연유로 같은 팀에서 인연의 끈을 이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어느 팀이 왕지엔민을 데려가는 지는 몰라도 그 순간부터 2300만 명의 타이완 사람들은 그 팀에게 충성을 다 할 것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중계료와 함께 각종 유, 무형의 수익도 같이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왕지엔민과의 몇 백만 달러의 계약이 아깝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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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그동안 천웨이인(陳偉殷) 대해서 메이저 진출을 강하게 거부했던 77세의 쥬니치의 니시카와 사장(西川 順之介)이 태도가 유연하게 변했다는 뉴스가 타이완 발로 떴습니다.

처음 "천웨이인은 여전히 나의 지배 하에 있는 선수다. 메이져리그 구단들이 그를 빼가기 위한 어떠한 기도의 공식적인, 혹은 개인적 접촉도 불허한다. 이것은 설사 그가 임의탈퇴 선수가 되더라도 이런 방법밖에는 없다." 라고 강경하게 거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니시카와 사장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리그가 끝난 후에 다시 나의 의사를 묻는다면, 이것이 구단의 이익(
受益)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고려할 수도 있다." "천웨이인이 메이저로 가려면 나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로 바뀌었습니다. 예전의 강경하던 태도에서 뭔가 유연한 방식으로 변화했다고나 할까요?

여기서의 수익(受益)은 예전 세이부나 한신이 했던 방식인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 방식으로 제많은 금액을 써 낸 구단에게 우선 입찰의 권리를 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작년 NPB에서 방어율 왕을 차지한 좌완 천웨이인 선수가 올 시즌(2010년)에도 작년에 이어 준수한 성적을 다시 올린다면 쥬니치 구단의 수익을 위하여 미국에 팔 수도 있다는 뜻의 발언인 것입니다. 

작년 9월에 스포츠호치에 따르면 천웨이인을 원하는 메이져리그 구단이 15개에 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연말 스포츠닛칸에 따르면 5개 구단이 더 늘어나서 총 20개 구단에서 천웨이인을 영입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천웨이인의 투구 영상 / 2009년 9월 한신전 완봉승 장면/유튜브)

마쓰자카와 이가와가 미국으로 건너갈 때 세이부 구단과 한신은 각각 5000만 달러와 2600만 달러의 금액을 포스팅 시스템으로 벌었습니다. 만약 천웨이인이 내년에 준수한 성적을 보인다면 쥬니치로서는 몇 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겠습니다. 스포츠 호치는 천웨이인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15승을 올릴 수 있는 투수라고 극찬한 바가 있습니다.

아무튼 천웨인은 미국으로의 진출 꿈을 늘 꾸고 있었지요. 이 선수에게 올 2010년 시즌은 정말 중요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한 해 농사로 평생을 좌우하게 되겠네요. 그래서 더욱 주시할 선수입니다.

주니치가 천웨이인 선수 영입 시 들인 금액은 계약금은 85만 달러(1200만엔연봉)였습니다.

천웨이인 선수에 대해서 궁금하시면
[기획시리즈]대만의 야구선수들 (9) 천웨이인(陳偉殷)

관련 사이트 : http://tw.news.yahoo.com/article/url/d/a/100104/13/1y6k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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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난 리더(立德)대학 야구부 선수인 리지아롱(李嘉榮)이 필라델피아와 계약을 맺을 것 같다고 에이전트가 발표했습니다. 이 선수는 올 시즌 협회배 야구대회에서 홈런왕을 차지한 선수로서 미국의 5~6개 팀에서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올시즌 초 3월 즈음에 미국으로 출국하여 계약을 마무리 짓는다고 합니다. 리더 대학야구부로서는 첫 번째로 미국으로 진출하는 선수가 되어서 학교 측에서도 자랑이 대단합니다.

"어릴 때의 꿈이었던 미국 진출이 이루어져서 정말 영광이다. 열심히 하겠다. 미국에 도착한 후 평상심을 가지고 왕지엔민과 같은 야구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는 포부를 취재나온 기자에게 밝혔습니다.

리지아롱 선수는 1988년 서울 올림픽둥이(^^;;. 타이완과는 상관없지만 1988년생을 표현했습니다.)로 태어났습니다. 180cm, 78kg으로 야구선수로 치면 결코 큰 체격은 아닙니다. 우투우타에 외야수(주로 중견수)를 맡고 있습니다. 2008년과 2009년에 통이 라이온즈 2군 팀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입니다.

당시 총 72타석에 나와서 24안타로 타율 0.333을 올렸고, 13타점을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수비에 재능이 있고 순간적인 반응이 빠르며 어깨가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베팅은 컨택 능력과 중급 이상의 파워를 겸비했다는 에이전트의 말입니다.(에이전트의 말이니 뭐 걸러 들으세요.)

계약금은 10~15만 달러 선일 것 같다고 합니다. 계약금 규모로 봐서 구단으로서는 저렴한 비용을 들여 터지면 장땡이요, 안터져도 그만인 선수급이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학비 포함해서 연봉 10만 달러정도 될 것 같네요.

(우측 리지아롱 사진:음~매우 야물딱지게 생긴 선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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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궈푸린 선수/사진 Vic

왕지엔민의 뒤를 이을 대형 선수가 양키즈에 진출한다. 현재 18세(1991년 1월생)의 타이완 체육원의 우투우타 3루수 궈푸린(郭阜林)이 그 주인공입니다.

내년에 양키즈와 계약을 체결하여 왕지엔민의 후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이완 역사상 두 번째로 MLB 양키즈의 멤버가 되는 것입니다.

키 183cm, 78kg으로 타이완의 야구명문인 난잉상공(南英商工)시절 스타성을 감출 수 없었던 궈푸린을 양키즈 스카우터가 2년 동안 주욱 관찰을 해왔다고 합니다. 

타격이 정확하고 유연한 수비와 좋은 어깨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에 동년배들 중에 가장 뛰어난 잠재력을 인정받아 30만 달러 정도의 계약금(학비와 잡비 등을 지원받는 조건 포함)으로 미국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올 시즌 위산(玉山盃)배 전국 청소년 야구선수권 대회에서 타격왕(0.485)과 타점왕(16점)을 차지하였던 선수이고 올해 열린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한국 목동구장에서 열린)에서 주전 3루수와 4번타자로 활약한 선수입니다.(동영상보기)

양키즈의 선수 수급 전략은 오직 최고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대부분 중남미의 선수들이 미국으로 많이 진출을 하였지만 점차 그 시장이 확대되면서 최근 4~5년 부터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구단들이 많아졌습니다. 한 두명에 그치던 지난 아시아 선수들의 미국 진출은 확실히 4~5년 전부터 그 수가 십 여명을 넘어섰고 한국이나 타이완, 일본 등의 아시아 시장 유망주들이 대거 미국으로 진출하는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궈푸린 선수/사진 嘟嘟

타이완에서는 유망주들이 대거 미국으로 진출하면서 연간 20~40명의 고등학교 선수들이 꿈을 찾아 미국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이번 케이스도 다들 그렇듯 위법이 아닌 편법을 써서 미국으로 진출하는 케이스입니다. 유학생 신분 자격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야구를 병행하는 방법이지요.

추정 계약금은 30만 달러로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일단 학비와 각종 잡비 등을 제공하는 조건인데 연간 십 몇 만 달러 정도 계산되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계약금 20만 달러에 연봉으로 십 만불 정도라고 보면 되겠네요.

아무튼 미국으로의 진출은 타이완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꿈이기에 어떤 방법으로든 나간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게다가 궈푸린 선수는 타이완의 동급 선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 진출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요.

이제 이 선수는 루키리그에서 유망주로서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 양키즈에는 두 명의 중국 국적 선수가 있었습니다. 리유카이(劉凱)와 쟝쩐왕(張振旺)선수인데요 이 선수들은 장차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하여 양키즈가 전략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키우던 선수들이었지요.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실력이 기대만큼 미치지 못하여 중국으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그래서 양키즈로서는 왕지엔민도 넌텐더로 내보냈기에 이제 이 궈푸린 선수가 유일한 아시아권 선수(X)로 있게 되겠습니다. (댓글로 지적해주신 클레멘테님 감사합니다. 하도 미미한 활약을 보인탓에 마치 없는 선수인 듯 했습니다. 이가와!!! 그러길래 좀 잘하지 그랬냐...앞으로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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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e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천웨이인(陳偉殷),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대만의 야구선수들 (8) 천용지(陳鏞基) 편

             (제1회 WBC 중국전 만루홈런으로 표지를 장식한 천용지(陳鏞基)/WBC 홈페이지 캡쳐

1983년 7월 13일에 타이완 타이동(台東)현에서 태어난 천용지(陳鏞基)는 현재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산하 마이너리그(트리플 A)에서 뛰고 있으며, 후진롱(胡金龍)과 함께 부동의 타이완 국가대표 주전 내야수로 활약하는 선수입니다. 우투우타에 180cm/85kg으로 내야수로는 빼어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쟝타이산(張泰山)과 같은 원주민 아미족(阿美族) 출신입니다.

타이완 국립체육대학을 나와서 2004년에 시애틀과 계약금 25만 달러(계약금이 아주 헐값입니다. 당시의 타이완 야구선수들은 제도적인 허점에 의하여 미국이나 일본으로 많이 나갔습니다. 한 번에 40여 명씩 미국이나 일본으로 나간 적도 있습니다.)에 자유계약을 맺어 도미한 케이스입니다.

타이동(台東)현의 쟝빈(長濱)국민학교와 타이위엔(泰源)중학, 그리고 가오슝현의 가오위엔공상(高苑工商)을 거쳐서 국립체육대학(타이완맥주팀:台灣啤酒) 야구부에 진학을 하였습니다. 항상 그렇듯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각종 대회에 타이완 대표로 참가하였는데요, 이 선수의 국가대표 경력 사항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국가대표 경력사항 일람

2001년  제4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2002년  제21회 21st HHW 2002 Sponsored by Municipality of Haarlem
           제15회 대륙간컵 대회
           1회 세계대학생야구선수권대회
2003년  제23회 The Grand Forks International Baseball Tournament(캐나다)
           제10회 네덜란드포트배 대회
           제35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제2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2004년  제28회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야구대표(병역면제혜택)
2005년  제36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2006년  제0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
           제16회 대륙간컵야구대회 대표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

                                (2004년 시애틀과 계약 직후의 사진/출처는 사진에 표기)

어릴적 쟝빈 국민학교 재학 당시 야구부에서 일본의 어느 학교와 교류전을 펼쳤는데, 당시의 대회에서 매우 인상적이고 특출한 활약을 하게 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중, 고등학교[타이위엔(泰源)중학, 가오위엔공상(高苑工商)]야구부에서 청소년 대표팀으로 발탁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야구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만 대표팀에서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도망을 가서 한동안 야구를 방치하면서 인생의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네 목사님과 부모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간의 내용(문제를 일으키고 도망을 가서 방황하던[개인적인 사정이라서 자세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대표 팀 친구와의 갈등과 대표 팀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을 일절 묻지않고 넘어가겠다라는 회유책으로 다시 야구를 시작합니다.

그 후에 여러 대회에서 다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면서 탄탄대로를 달리게 됩니다. 싱농불스배 전국 청소년 야구대회와 왕정치배 전국 야구선수권대회 등의 국내 대회에서 우수한 활약을 하여 국립 타이완체대 야구부(國立體院棒球隊)로 진학을 하게 되지요. 그 후에 거의 모든 국제 대회(위의 경력사항을 참조하세요.)에서 후진롱(胡金龍)과 함께 타이완을 대표하는 (진용:金鏞)라인(호룡-진기)으로 대표되면서 멀티 내야수(2루와 3루, 유격수까지를 다 볼 수 있는)로서 활약하게 되었고,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를 필요로 하는 시애틀의 관심을 받아서 2004년 1월 마이너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2006년 퓨처스게임 대표로 출전한 모습/후진롱(좌)과 함께 출전한 모습)

그 후에 2004년 싱글 A에서는 도루 25개로 도루왕을, 2005년 36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와 2006년 대륙간컵 대회에서 대회 최고 2루수로 뽑히면서 능력을 뽐내었고, 제 1회 WBC에서는 중국 팀을 상대로 대회 첫 만루 홈런을 뽑아내는 등 쏠쏠한 활약을 보이면서 트리플 A까지 순조롭게 올라갔습니다.
게다가 2006년 퓨처스게임(2타수 무안타)에 2루수로 출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활약 등으로 2007년도 하반기 로스터 확장에 아마도 가장 승격이 될 확률이 높았습니다. 


                      (제1회 WBC에서 중국팀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치는 모습/유튜브)

그러나 겨우 다섯 게임만 출장하고 예전에 다쳤던 어깨 부위를 또 다치면서 결국 수술을 받고, 그 후 재활 치료로 거의 한 해를 보내고 그 해 10월 아리조나 가을리그에 참가하면서 재활을 마치고, 가을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2007년 11월 21일에 보호선수 40명 로스터에 들게 되면서 2008년을 기약하게 됩니다. [그것이 타이완 내야수로는 두 번째(처음은 LA 다저스의 후진롱)로 보호 선수 40인 로스터(메이져리거로 된 것은 아닙니다. 40인 보호선수 명단에 들게 된 것일 뿐.)에 들게 된 것이지요.]

2008년 트리플 A에서 두 번째 해를 보내는데 어깨 수술 후유증이 생기면서 다시 로스터 탈락의 아픔을 맛보았고, 그 후유증을 치료하고 난 후에 6월 말에는 다시 무릎 부상을 입으면서 결국 승격은 안되고 팀 보호 명단에서도 빠지게 되면서 웨이버 공시의 아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한 후에 다시 마이너의 도전을 시작하여 결국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팀과 다시 마이너 계약을 맺어 새로이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http://www.wretch.cc/album/cg0713
 
      http://www.wretch.cc/album/cg0713
  (2009년 더블A팀 Midland RockHounds에서의 모습입니다.)

그 후에 메이저리그로의 도전을 위하여 제 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타이완 대표 팀을 자진 고사하면서까지 의지를 보였습니다만 결국 오클랜드 팀에서도 전력 재조정의 일환으로 여러 선수들을 방출하는 와중에 다시 보호 선수 40인 명단에서 빠지게 되었지만, 다른 팀으로 이적을 하지 않고 더블 A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2009년에는 아리조나 어슬레틱스(AZL Athletics)/아리조나 리그(Arizona League)에서 뛰었고, 6월에 다시 트리플A 로 승격이 되었지만 몇 게임 후에 다시 부상자명단에 들면서 부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거의 모든 타이완 국가대표에서 부동의 내야수로 활약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딱 계약금 25만 불짜리의 선수라고 봤습니다. 기록으로 보나, 그간의 경기 모습으로 보나 이 선수는 미국에서 내야 백업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든 공격력과 뛰어나지 않는 수비력으로 크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낮은 선수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1~2년 안에 다시 타이완 리그로 유턴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입니다. 그렇게 되면 타이완의 리그가 내야 수비들이 대부분 안좋기 때문에 천용지를 서로 영입하기 위해서 네 팀의 경쟁이 치열하리라 생각됩니다. 고만고만한 도미(渡美)선수들과는 다른 스타급의 선수이기에 국내리그의 부활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판단하겠지요.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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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기획시리즈 타이완의 야구선수들 이번 호는 대만 출신 메이저리그 제 2호 선수인 차오진후이(曹錦輝) 선수에 대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 출신의 메이져리거로는 제 2호입니다. 1년 정도의 차이로 두 번째가 되었지만 투수 출신으로는 첫 번째 선수입니다. 메이져리그 콜로라도 록키즈와 LA 다져스, 그리고 캔사스시티 로얄즈에서 뛰었습니다.

                               콜로라도 록키즈 시절의 차오진후이 / 이미지 ⓒbaseballtaiwan.net

차오진후이(曹錦輝)선수는 1981년생으로 185cm/95kg이라는 아주 훌륭한 신체조건을 갖춘 대형투수 중의 한 명입니다. 정통 오버스로우 투수이고 구종은 4심과 2심패스트볼, 커브,슬라이더, 스플리터와 싱커, 체인지업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공식 기록으로는 최고 159km/h를 던졌다는 기록(아테네올림픽 당시에 화면상 159km/h, 방송에서는 161km/h라고 말함)은 있습니다만 평속은 145km/h정도였고요, 패스트볼로 150km/h 정도는 가볍게 찍어주는 구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선수도 화롄지방 출신의 선수입니다. 여러가지 군대 문제나 미국 진출 등의 이유로 고교 졸업 후에 타이완 리그에 가지않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케이스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덴버대학에 적(籍)을 두고 콜로라도 록키즈 팀의 마이너리거로 생활하기 시작하였죠. 역시 타이완 대표팀 출신의 뤄구어후이(羅國輝)와는 친인척 관계입니다. 차오진후이가 외삼촌이지요.


이 선수가 처음 대표 팀에 선발 된 것은 1996년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부터 였습니다. 하지만 주목을 끌게 된 것은 가오위엔 고등학교(高雄縣 高苑工商 青棒隊)시절 에이스로 각광을 받았을 때, 전국 고교야구 리그대회에서 당시 궈홍즈가 다니던 난잉공상(南英工商)과의 경기에서 궈홍즈와 구속 대결이 펼쳐졌는데, 궈홍즈가 149km/h를 찍었고, 차오진후이는 152km/h를 찍어서 타이완의 고교야구 사상 최고구속 기록을 세우며 이겼던 경기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 1999년에 처음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어 네덜란드에 다녀오고서 많은 입질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강속구로 많은 스카우터들이 주목하기 시작하였는데요. 이후에 각종 청소년대표 등에 뽑혀서 많은 활약을 펼친 끝에 결국 같은 해 메이저리그 팀인 콜로라도 록키즈와 타이완 야구 역사상 가장 큰 금액(22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게 됩니다.

                      콜로라도 록키즈 시절의 차오진후이 / 이미지 ⓒbaseballtaiwan.net

마이너리거로 4년이 되었을 때, 어깨에 부상을 입어 결국 수술을 받았지만 잘 견뎌내고 결국 2003년 7월 26일에 콜로라도 록키즈의 메이져 로스터에 들어 쿠어스필드 홈 경기 때에 선발로 첫 등판하게 됩니다. 밀워키 브루어스팀을 상대로 6과 3/1이닝을 던져 본인의 메이져리거로서 감격의 첫 승(타이완 인으로서도 첫 승이고 타석에서도 첫 안타도 만들어 내었습니다.)을 따냅니다. 결국 그 해에 3승3패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04년에 다시 부상의 여파로 인해 출장기회가 점점 줄어들더니 다시 마이너로 떨어졌고, 2005년에는 로테이션의 위치로 격하되어 새 출발을 하게되었습니다.

 
2003년 마이너 퓨처스게임에서 차오진후이 투구모습. ⓒhttp://www.wretch.cc

       차오진후이 국가 대표팀 이력                      타이완 선수의 메이져리그 등록 기록

1996년 제07회 IBA 세계 리틀야구 선수권대회
1997년 제17회 IBA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1999년 제18회 IBA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1999년 제08회 네덜란드 포트배(World Port 
                    Tournament) 성인대표팀 
1999년 제20회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
2004년 제 28회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2007년 제24회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1.천진펑(陳金鋒): LA다저스  2002년 09월14일

2.차오진후이(曹錦輝): 콜로라도  2003년 07월25일

3.왕지엔민(王建民): NY양키즈  2005년 04월30일

4.궈홍즈(郭泓志): LA다저스  2005년 09월 02일

5.후진롱(胡金龍): LA다저스  2007년 09월 01일 


미국에서의 성적은 그저 그런 투수중의 하나였지만 타이완 대표팀으로서의 차오진후이는 빼어난 활약을 펼쳐왔습니다. 2003년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의 은메달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예선전 대표로 출전권 획득에 활약을 했었고,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큰 활약을 보였습니다. 

2006년에 점점 구속이 줄어들고 구위가 떨어지는 평가로 결국 콜로라도와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고 노쇠해져 결국 논텐더로 자유*(논텐더:non-tender; 연봉조정 신청자격을 얻는 선수 중 구단이 연봉조정 신청을 거부하고 재계약을 포기하는 선수. 즉, 자유계약선수가 될 조건을 채우지 않았지만 구단이 재계약을 포기해 FA 자격을 얻는 것으로 사실상 구단에서 방출당함을 의미.) 계약 신분이 되면서 무적이 되었고, 에이전트의 노력으로 다시 2007년 LA다저스와 1년 간의 각각 메이저와 마이너의 계약을 하게 됩니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메이저 로스터에 들게되면 최소 42만5천 달러의 계약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만 마이너로 떨어지게 되면 15만 불의 마이너 계약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제일 안좋은 경우 방출이 되더라도 최소 10만 불을 받을 수 있는 계약 조건으로 LA 다져스와 계약을 완료했습니다.

                        차오진후이의 미국에서의 스탯입니다. ⓒ캔사스시티 로열즈 홈페이지

하지만 결국 최종 로스터에는 들지 못하고 트리플 A에서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다시 4월 11일 다시 메이져로 올라왔습니다. 불펜진으로서 합류하게 되었는데요, 3일만에 다시 마이너로 돌아갔고, 4월 18일에 다시 메이져 불펜진으로 합류하였고, 꽤 괜찮은 활약을 보였지만 5월 24일 부상자 명단에 들어 다시 마이너로 떨어지고, 6월30일에 다시 메이저로 올라왔지만 잦은 부상자 명단에 들면서 결국 마이너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고 리그가 끝난 10월 31일에 40인 로스터에서 빠지게 되면서 웨이버 공시가 되었고, 마이너로 다시 떨어지기 싫은 차오진후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팀을 떠나게 되면서 다시 무적(無籍)선수가 됩니다.

그 후에 다시 캔사스시티 로얄즈와 마이너계약을 맺어 팀을 정하였습니다. 역시 마이너 계약인데 얼마 못가서 6월 3일에 부상의 여파로 인해 더이상 활동하지 못하고 방출되었습니다. 이 때 3명의 아시아선수가 같이 방출되어서 화제가 되었더랬죠.(노모 히데오와 차오진후이, 야스히코 야부타 선수) 그 후로 계속 무적 선수로 지내오다가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에서 타이완 대표팀에 합류하였고, 계속 미국 쪽으로 팀을 알아보았으나 더이상 불러주는 팀이 없자 타이완 리그로 돌아옵니다. 


2008년 말에 2009년도 특별지명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결국 슝디 엘리펀츠 팀에 지명되었고, 팀과 계약금 및 연봉 문제로 에이전트와 구단 간에 힘겨루기 등의 불협 화음을 보이면서 결국 두 번째 협상까지 결렬되었습니다. 에이전트의 무리한 요구에 따른 협상 결렬인데요, 물론 지속적으로 협상의 의지를 보이고는 있습니다. 


차오진후이의 강속구 모습(화면상 159km/h이지만 방송 해설자가 현장 속도 161km/h라고 해설)

에이전트 리웨이촨(李瑋川)의 무리한 욕심이 부른 화(禍)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중국 진출설(3년간 100만 불의 금액설 : 애초에 규모 면에서도 가당치도 않은 헛소문!)까지 흘려가면서 더 많은 돈을 얻어내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이 분명하다는 타이완 여론의 중론입니다. 


많은 팬들은 통이 라이온즈와의 3월 28일 타이난에서의 CPBL20년 개막전에서 판웨이룬과의 맞대결을 보고 싶어한다는 여론이 많은데요, 아무튼 시즌 시작 전까지는 계약이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무적 선수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감독인 왕광후이가 '차오진후이가 없는 상황도 준비하고 있다'라는 발언을 함으러서 더욱 그러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타이완 출신으로 제 2호 메이저리거이자 투수로는 첫 번째의 영예를 가지고 있는 차오진후이 투수. 건장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속구를 CPBL에서 다시 보기를 원하는 많은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추가 소식 : 제 홈페이지에서 이름으로 검색하세요.

블랙엘리펀츠 사건에 연루되어 영구제명되었습니다. http://chinesebaseball.tistory.com/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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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장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첫 번째로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대만 출신의 야구 선수이자 현 메이져리거인 왕지엔민(王建民) 현 뉴욕 양키즈 1군 선발 투수부터 소개하려 합니다.

왕지엔민 투구모습/사진제공 anrules


왕지엔민(王建民). '왕쳉밍', 왕젠밍', '왕첸밍' 등 중구난방으로 아무렇게나 읽혀졌던 선수입니다. 대만어의 여권에 알파벳처럼 쓴 표기법을 그대로 읽은 것인데요, 그 표기법은 영어가 아니기에 그대로 읽으면 발음이 달라지고 그렇게 되면 전혀 다른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지엔민(이하 한자병기없이 이름만 나열)'이라고 읽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발음입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수많은 선수들이 소개될 때도 똑같이 표기하겠습니다.

이 선수는 1980년 3월 31일생이고 신체조건은 193cm, 102kg입니다. 우투우타에 최고 구속은 155km(2004년 마이너리거 일때;항간에 99마일까지 나왔다고 전해졌는데 팬심의 발로인듯...)까지 찍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대만의 타이난시(臺南市)에서 태어난 왕지엔민은 타이베이 체대를 거쳐 2000년 6월 5일 뉴욕 양키즈팀과 자유 계약 신분으로 계약을 하여 진출합니다. 당시 계약금은 201만 달러(계약금 190만 달러+특별장학금 10만 달러+본가 지원금 1만달러)로 계약을 하여 미국으로 진출하였고, 현재 연봉 500만 달러로 작년 말에 연봉조정협상에서 올 시즌 연봉을 1년 계약 했습니다.

결혼식 당시의 사진

왕지엔민의 첫사랑이라고 알려진 우지아링(吳嘉姈)과 4년의 연애 후에 2003년 12월 7일에 결혼하였습니다.

올해(2009년) 6월에 아빠가 됩니다. 여권에는 'Chien-Ming Wang'이라고 적혀 있어서 한국의 신문 기자들이 '왕치엔밍'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발음은 '왕지엔민'입니다.







이 선수의 대만 대표경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1991년 제 9회 IBA 소년 연식야구 월드컵 대표

1997년 제17회 아시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대표
1999년 제 8회 네덜란드항배 야구대회 대만 대표
2000년 대양배 4개국 5강전 대만 대표
2002년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대만 대표
2003년 제23회 아시아 야구월드컵 대만 대표
2004년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대만 대표
2005년이후 메이저에 올라 구단불허로 대표참가못함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대만 대 일본: 왕지엔민의 투구>

약 6년 간의 마이너 생활을 거쳐 2005년 처음으로 메이져리그로 올라간 왕지엔민은 많은 기록을 세우고 대만의 야구 영웅이자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그가 19승을 올리며 활약한 해에 세운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시안 투수로는 최다승인 19승(박찬호가 18승이죠.)을 올렸고, 땅볼 유도의 수가 407개로 메이져리그 1위에 올랐고, 병살 유도는 메이져리그 2위인 33개. 피홈런갯수는 12개로 150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가운데 가장 낮은 비율입니다. 76%의 승률로 당시 메이져리그 3위를 기록하였고, MOM은 15회에 선정되었으며, MVP투표에서 33명 중 6명의 투수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혔는데, 실제 투표에서는 겨우 2점 만 얻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TYIB(This Year in Baseball Award)에서 당당 최고의 선발투수로 꼽히면서 수상을 했었지요.

 
<뉴욕 양키즈에서의 영상들:유튜브>

아무튼 왕지엔민선수는 대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선수로서 그 유명을 떨쳤는데요, 어린 시절에 야구보다는 농구를 좋아했고 그래서 학교(총슈에 초등학교.崇學國小)농구부에 들었는데 당시 야구부와 농구부를 겸임하던 선생님에 의하여 야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자질을 알아본 선생님은 바로 투수 훈련을 시켜서 투수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엔싱중학교(建興國中)에서 쟝시지에(張錫杰)코치를 만나 대성 을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여러가지 기초를 닦고 기술을 연마한 시기였는데 당시 같은 연배로 활동하던 선배들은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뤄진롱(羅錦龍) 등이 있는데 후에 모두 미국으로 진출하여 같은 길을 가게되죠.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통의 '롱공 야구단(榮工棒球)'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미 신체적으로 키는 190cm으로 커졌고, 몸무게도 90kg으로 장성하여 건장한 체격으로 자라났죠. 청소년야구 시절 150km 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건장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해외 스카우터 등의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1997년
롱공 야구팀 소속으로 전국 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당시 상대 팀과의 경기 중에 심판의 존에 불만을 품고 양 팀의 응원단들이 폭력적으로 난동이 있었지만 왕지엔민은 태연하게 마운드에서 흔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함으로서 캐나다에서 열렸던 IBA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만 대표로 나가게 됩니다. 그 때에 여러가지 수속 등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호적지를 타이난(台南)에서 타이베이(台北)로 옮기던 와중에 왕지엔민은 지금의 부모가 낳은 친자가 아니고 자신이 양자로 입적된 사실이 밝혀진 일이 있습니다. 원래는 세째 삼촌의 아들이었는데 지금의 아버지가 아들이 없어서 대가 끊길 것을 걱정하여 왕지엔민을 양자로 입적하게 된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죠.

왕지엔민을 포함한 다양한 버블헤드인형


이 일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방황을 하여 잠시 야구를 그만 두었던 적이 있는데, 결국 이 일은 나중에 대만의 집요한 언론들에 의하여 밝혀지면서 왕지엔민과 대만의 언론들과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 졌습니다. 아무튼 코치의 설득으로 방황을 끝내고 다시 야구를 시작한 왕지엔민은 타이베이 체육대학(台北體院)에 진학을 하여 80년대 초반 일본 난카이 호크스에서 야구생활을 하였던 코치 가오잉지에(高英傑)의 지도를 받습니다.

그의 1년 선배이자 당시 포크볼의 왕자로 불렸던 차이중난(蔡仲南:싱농 불즈에서 활약)으로부터 포크볼과 코치로부터 싱커를 배웠고, 싱커를 잘 갈고 닦아 잘 연마하여 저신의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왕지엔민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계기가 된 것은 2000년의 대양배 4개국 5강(대만 두 팀) 초청대회(大揚盃四國五強成棒邀請賽)에서였습니다.


호주와 일본, 한국, 그리고 대만의 두 팀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왕지엔민은 151km의 강속구와 적절한 변화구를 잘 섞어 던지면서 많은 활약을 하여 국제 스카우터들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 대회를 계기로 대만의 프로팀 싱농불즈 뿐만 아니라 일본의 쥬니치와 미국의 시애틀 매리너스, 보스톤 레드삭스, 아틀란타 브레이브스, LA 다저스, 뉴욕 양키즈, CA 에인절스, 콜로라도 록키즈, 아리조나 디벡스 구단 등에서 경쟁적이고 매우 적극적으로 계약을 추진하게 됩니다. 일단 신체적인 조건이 아주 좋았고, 강견에 컨트롤도 안정적이면서 어깨를 잘 보존하였던 것이 좋은 점수를 받아 많은 구단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메이져리그 구단들이 경쟁적으로 스카우트전에 뛰어들게 되면서 계약금도 올라갔지요.

아무튼 원래 아틀란타 브레이브스에서 양키즈보다 많은 돈(230만 달러)을 불렀지만 왕지엔민의 어릴적 우상(Roger Clemens)있는 뉴욕 양키즈 팀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에이전트와 당시 협회국 사람들도 양키즈와의 계약을 최우선으로 하고 나머지 팀들을 생각하는 원칙을 세웠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런 덕분에 2000년 5월 6일에 뉴욕 양키즈 구단과 201만 달러의 정식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왕지엔민 선수가 박찬호 선수보다 많은 계약금을 받게 된 것은 그만큼 관찰하던 스카우터 들이 많았기도 하였고 많은 구단이 경쟁이 되어서 그렇습니다.(당시의 대만 시장에서 많은 수의 메이져리그 스카우터들이 유망주를 발견하기위해 활동을 하였던 영향도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군대를 미필한 왕지엔민은 일반적 방법으로는 외국을 진출할 수 없었지만 우수한 학생신분으로 국위선양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결국 미국 유학생 신분이 되어 진출하게 되지요.

그 후 마이너에서 각고의 노력을 하였기도 했지만 부상 등의 여파로 결국 6년 만에 메이져리그에 올라가게 됩니다. 2005년 4월 30일에 양키즈 홈경기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팀을 상대로 첫 등판을 합니다. 대만 야구인 사상 뉴욕 양키즈 소속으로는 처음 등판하게 되는 것이지요.

대만 선수 출신으로는 제 3호 메이져리거가 된 것입니다.[(제 1호는 천진펑(陳金鋒), 2호는 차오진후이(曹錦輝)선수입니다.] 그러나 그 해에 양키즈가 플레이 오프 시리즈에 나가면서 결국 디비전 시리즈에 나가게 되었고, 대만 출신으로는 첫 번째로 디비전 시리즈 등판의 영광을 차지 하였습니다. 

아무튼 인상 깊은 활약을 보였던 왕지엔민은 2006년 싱킹 패스트볼(Sinking Fastball)과 싱커, 포크볼 등을 주무기로 양키즈 선발진의 한축을 담당하여 땅볼 유도의 제왕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 해의 성적은 19승 6패로 미네소타 트윈즈의 요한 산타나와 함께 최다승 투수로 등극을 하였습니다.(박찬호의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인 18승을 깬 것으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그 후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상대로 첫 승으로 거두기도 했었습니다.

왕지엔민의 MLB 통산기록 / NY홈페이지

 
2007년에도 19승 7패로 에이스급으로 컸지만 2008년에 부상 등으로 개막전 선발에서 빠졌고, 회복 후에는 2연패에 빠지기도 하는 등의 부진을 겪었으나 그 해 5월 타임지의 2007년 전세계 100인의 영향 인물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2007년 연봉조정 협상에서 400만 달러로 조정을 받았고 작년에는 다시 500만 달러의 연봉 조정 협상을 가졌습니다. 올해야말로 고액 장기계약을 위해 어느 해보다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길고 긴 부상의 터널에서 회복되어 다시 얼마만큼 활약을 보여줄 지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자료는 타이완 위키, 타이완 야후, 타이완 구글, 왕지엔민 팬페이지(www.chien-ming.com), 그리고 뉴욕 양키즈 홈페이지 등에서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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