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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야구 이야기/대만 야구선수들

[기획시리즈]대만의 야구선수들 (8) 천용지(陳鏞基)

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e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천웨이인(陳偉殷),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대만의 야구선수들 (8) 천용지(陳鏞基) 편

             (제1회 WBC 중국전 만루홈런으로 표지를 장식한 천용지(陳鏞基)/WBC 홈페이지 캡쳐

1983년 7월 13일에 타이완 타이동(台東)현에서 태어난 천용지(陳鏞基)는 현재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산하 마이너리그(트리플 A)에서 뛰고 있으며, 후진롱(胡金龍)과 함께 부동의 타이완 국가대표 주전 내야수로 활약하는 선수입니다. 우투우타에 180cm/85kg으로 내야수로는 빼어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쟝타이산(張泰山)과 같은 원주민 아미족(阿美族) 출신입니다.

타이완 국립체육대학을 나와서 2004년에 시애틀과 계약금 25만 달러(계약금이 아주 헐값입니다. 당시의 타이완 야구선수들은 제도적인 허점에 의하여 미국이나 일본으로 많이 나갔습니다. 한 번에 40여 명씩 미국이나 일본으로 나간 적도 있습니다.)에 자유계약을 맺어 도미한 케이스입니다.

타이동(台東)현의 쟝빈(長濱)국민학교와 타이위엔(泰源)중학, 그리고 가오슝현의 가오위엔공상(高苑工商)을 거쳐서 국립체육대학(타이완맥주팀:台灣啤酒) 야구부에 진학을 하였습니다. 항상 그렇듯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각종 대회에 타이완 대표로 참가하였는데요, 이 선수의 국가대표 경력 사항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국가대표 경력사항 일람

2001년  제4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2002년  제21회 21st HHW 2002 Sponsored by Municipality of Haarlem
           제15회 대륙간컵 대회
           1회 세계대학생야구선수권대회
2003년  제23회 The Grand Forks International Baseball Tournament(캐나다)
           제10회 네덜란드포트배 대회
           제35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제2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2004년  제28회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야구대표(병역면제혜택)
2005년  제36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2006년  제0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
           제16회 대륙간컵야구대회 대표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

                                (2004년 시애틀과 계약 직후의 사진/출처는 사진에 표기)

어릴적 쟝빈 국민학교 재학 당시 야구부에서 일본의 어느 학교와 교류전을 펼쳤는데, 당시의 대회에서 매우 인상적이고 특출한 활약을 하게 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중, 고등학교[타이위엔(泰源)중학, 가오위엔공상(高苑工商)]야구부에서 청소년 대표팀으로 발탁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야구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만 대표팀에서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도망을 가서 한동안 야구를 방치하면서 인생의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네 목사님과 부모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간의 내용(문제를 일으키고 도망을 가서 방황하던[개인적인 사정이라서 자세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대표 팀 친구와의 갈등과 대표 팀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을 일절 묻지않고 넘어가겠다라는 회유책으로 다시 야구를 시작합니다.

그 후에 여러 대회에서 다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면서 탄탄대로를 달리게 됩니다. 싱농불스배 전국 청소년 야구대회와 왕정치배 전국 야구선수권대회 등의 국내 대회에서 우수한 활약을 하여 국립 타이완체대 야구부(國立體院棒球隊)로 진학을 하게 되지요. 그 후에 거의 모든 국제 대회(위의 경력사항을 참조하세요.)에서 후진롱(胡金龍)과 함께 타이완을 대표하는 (진용:金鏞)라인(호룡-진기)으로 대표되면서 멀티 내야수(2루와 3루, 유격수까지를 다 볼 수 있는)로서 활약하게 되었고,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를 필요로 하는 시애틀의 관심을 받아서 2004년 1월 마이너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2006년 퓨처스게임 대표로 출전한 모습/후진롱(좌)과 함께 출전한 모습)

그 후에 2004년 싱글 A에서는 도루 25개로 도루왕을, 2005년 36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와 2006년 대륙간컵 대회에서 대회 최고 2루수로 뽑히면서 능력을 뽐내었고, 제 1회 WBC에서는 중국 팀을 상대로 대회 첫 만루 홈런을 뽑아내는 등 쏠쏠한 활약을 보이면서 트리플 A까지 순조롭게 올라갔습니다.
게다가 2006년 퓨처스게임(2타수 무안타)에 2루수로 출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활약 등으로 2007년도 하반기 로스터 확장에 아마도 가장 승격이 될 확률이 높았습니다. 


                      (제1회 WBC에서 중국팀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치는 모습/유튜브)

그러나 겨우 다섯 게임만 출장하고 예전에 다쳤던 어깨 부위를 또 다치면서 결국 수술을 받고, 그 후 재활 치료로 거의 한 해를 보내고 그 해 10월 아리조나 가을리그에 참가하면서 재활을 마치고, 가을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2007년 11월 21일에 보호선수 40명 로스터에 들게 되면서 2008년을 기약하게 됩니다. [그것이 타이완 내야수로는 두 번째(처음은 LA 다저스의 후진롱)로 보호 선수 40인 로스터(메이져리거로 된 것은 아닙니다. 40인 보호선수 명단에 들게 된 것일 뿐.)에 들게 된 것이지요.]

2008년 트리플 A에서 두 번째 해를 보내는데 어깨 수술 후유증이 생기면서 다시 로스터 탈락의 아픔을 맛보았고, 그 후유증을 치료하고 난 후에 6월 말에는 다시 무릎 부상을 입으면서 결국 승격은 안되고 팀 보호 명단에서도 빠지게 되면서 웨이버 공시의 아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한 후에 다시 마이너의 도전을 시작하여 결국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팀과 다시 마이너 계약을 맺어 새로이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http://www.wretch.cc/album/cg0713
 
      http://www.wretch.cc/album/cg0713
  (2009년 더블A팀 Midland RockHounds에서의 모습입니다.)

그 후에 메이저리그로의 도전을 위하여 제 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타이완 대표 팀을 자진 고사하면서까지 의지를 보였습니다만 결국 오클랜드 팀에서도 전력 재조정의 일환으로 여러 선수들을 방출하는 와중에 다시 보호 선수 40인 명단에서 빠지게 되었지만, 다른 팀으로 이적을 하지 않고 더블 A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2009년에는 아리조나 어슬레틱스(AZL Athletics)/아리조나 리그(Arizona League)에서 뛰었고, 6월에 다시 트리플A 로 승격이 되었지만 몇 게임 후에 다시 부상자명단에 들면서 부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거의 모든 타이완 국가대표에서 부동의 내야수로 활약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딱 계약금 25만 불짜리의 선수라고 봤습니다. 기록으로 보나, 그간의 경기 모습으로 보나 이 선수는 미국에서 내야 백업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든 공격력과 뛰어나지 않는 수비력으로 크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낮은 선수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1~2년 안에 다시 타이완 리그로 유턴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입니다. 그렇게 되면 타이완의 리그가 내야 수비들이 대부분 안좋기 때문에 천용지를 서로 영입하기 위해서 네 팀의 경쟁이 치열하리라 생각됩니다. 고만고만한 도미(渡美)선수들과는 다른 스타급의 선수이기에 국내리그의 부활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판단하겠지요.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