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야구 이야기/대만 야구선수들'에 해당되는 글 55건

2012년 핑쩐가오중(平鎮高中:핑쩐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무려 150km/h 가까이 던지면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던 쏭원화(宋文華:영문 Wen-Hua Sung)지만 사실 더 전에 2009년 미국 LLB(윌리엄스 포트) 국제대회에서 투타에 걸쳐 뛰어난 활약으로 일찌감치 유명했던 선수다. 




1996년 생인 쏭원화는 187cm/96kg까지 성장했다. 대만 투수치고는 상당히 체격이 좋은 편으로 피지컬 면에서 보면 예전 해외 진출했던 선배 대만 투수들도 대부분 좋은 체격을 가진 선수들이다. 아무튼, 쏭원화도 피지컬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우투우타의 쏭원화는 원래 약간 쓰리쿼터 형으로 던졌는데 조금씩 교정하고 있다. 작년 흑표기 전국대회에서 최고 95마일(153km/h)까지 기록했다. 구종은 슬라이더와 커브로 단촐한 편이나 현재 스플리터를 익히고 있다고 한다. 


 이 친구도 대만에서 운동 능력으로는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는 아메이족(阿美族) 출신<아메이족 출신으로 곽원치로 알려진 궈위엔즈(郭源治), 쟝타이산(張泰山), 린즈셩(林智勝), 차오진후이(曹錦輝), 왕웨이중(王維中), 천용지(陳鏞基), 양지엔푸(陽建福), 양다이강(陽岱鋼)-양야오쉰(陽耀勳) 형제, 씨에지아셴(謝佳賢) 등 매우 유명한 스타플레이어 등이 무수히 많다.>선수로 몇 년 사이에서 대만 영건 중에서 탁월한 두각을 나타낸 선수다. 


2015년 대만 국가대표 상비군 60명의 명단에 선출되었다. 쏭원화는 송씨 가문의 운동 선수 명맥을 잇고 있다. 현재 일본 라쿠텐 2군에서 뛰고 있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 출신인 투수인 쏭지아하오(宋家豪)가 가까운 친척이다. 




원래 고교 졸업 시 MLB 스카우트와 접촉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 팔 부상을 당해 꿈을 잠시 접고 타오위안에 있는 국립체육대학(國立體育大學)에 진학했고, U-23 대표 팀에 선발되어 지난 번에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퓨처스 팀과의 친선 경기 중에 좋은 모습(4이닝동안 8개의 탈삼진을 기록)을 보이기도 했다. 


4이닝이 채 되기 전에 8개의 탈삼진을 잡는 기염을 토했으나 상대 타자가 친 타구에 맞아 보호 차원에서 일찍 내렸다.




샌디에고 GM인 A.J. Preller는 인터뷰에서 그와 사인했다고 밝히면서 간단한 코멘트를 했다. (계약 관련 보도는 MLB 홈페이지 기사 링크 참조 : http://m.mlb.com/news/article/187710750) 


"He's a great pitcher, probably a little more advanced than some of the guys we signed yesterday."




이어서 그는 또 쏭원화는 예전 파드레스와 계약했던 인터내셔널 유망주들 보다 뛰어난 투수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면서 아마도 올해 9월부터 팀에 들어와 차근차근 지도를 받을 것이라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2009년부터 리틀야구 대만대표, 2011년 IBA 세계청소년야구 선수권, 2013년 U-18 베이스볼월드컵 대만 대표로 선발되었고, U-23 대만 국가대표 상비군에도 선발되면서 야구 엘리트의 길을 걸어오곤 있는 젊은 유망주 투수인 쏭원화는 앞으로 본인의 꿈이었던 메이저리거가 되는 길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퓨처스 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한 쏭원화 투수/웨이라이 스포츠 제공


꾸이샨 초등학교 야구부(龜山少棒) 시절을 기억하는 당시 감독은 쏭원화가 야구부에 입단한 후 자기 소개 시간에 "난 장차 메이저리거가 될거야!"라고 동료들에게 희망을 말했다고 한다. 이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잘 성장했고, 2014년에는 현재 마이애미에서 뛰고 있는 메이저리거 천웨이인이 만든 천웨이인 장학금 수상자로 뽑혀 1만5천 TWD의 장학금도 받았던 경험이 있다. 


쏭원화의 이번 샌디에고 행으로 샌디에고 역사상 첫 아시안 아마추어 선수와 계약 케이스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 신체검사가 남았지만, 그걸 통과해야 정식 계약으로 효력이 발생할테고, 장차 마이너리그에 가서도 운도 따라주고 실력도 성장해야 혹독한 마이너 시절을 이겨내야 본인의 꿈인 메이저리거로 승격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샌디에고는 한국의 윤성빈 선수를 얻기 위해서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하며 노력을 했지만 결국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으로 계약에 실패하였고, 후에 같은 아시안 출신으로 유망주로 꼽히던 대만 투수인 쏭원화와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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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퓨처스 올스타전 월드 팀(미국 외의 선수로 꾸리는 팀)에 대만인으로서는 13번 째로 투수 후즈웨이(胡智為)가 선정되었습니다. 


올 시즌 더블 A에서 출발해서 트리플A로 오른 후 한 게임을 던진 기록이 있는 후즈웨이는 올해 14게임에 나와 77.2이닝을 던져 75피안타를 맞았습니다. 탈삼진 72개 기록. 전체 전적은 2승 6패 ERA 2,67입니다.


사진출처 대만 자유시보(自由新聞)


그동안 퓨처스 올스타에 출전한 대만 선수로는, 

천진펑(陳金鋒), 차오진후이(曹錦輝), 왕지엔민(王建民), 후진롱(胡金龍), 천용지(陳鏞基), 린져슈엔(林哲瑄), 뤄지아런(羅嘉仁), 천쥔시우(陳俊秀), 쟝즈시엔(蔣智賢), 판즈팡(潘志芳), 리쩐창(李振昌), 황웨이지에(黃暐傑) 등 12명이었고, 그 중에서 7명이 메이저리거가 되었습니다.


사진출처 대만 자유시보(自由新聞)


후즈웨이(胡智為)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대만 대표팀 투수로 출전했던 우완 정통파 투수입니다. 한국과의 예선에서는 등판(사실 이때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후문입니다.)하지 않았고, 일본과의 준결승 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썩 좋지 못한 모습(2.1이닝동안 3실점-2자책을 하였고 5개의 사사구를 내주면서 흔들렸기에 강판당했고, CPBL 슝디 팀 투수인  쩡카이원이 뒤를 잘 받쳐주면서 결승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작은 판웨이룬으로 불리는 후즈웨이는 1993년 생으로 185cm, 104kg으로 당당한 체격 조건을 가지고 있고 150km/를 넘나드는 속구와 팜볼 등 다양한 변화구를 장착한 우완 정통파 투수입니다. 2013년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하여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2015년 초에 템파베이로 트레이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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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스 25인 명단을 보신 분이라면 대만에서 대만의 빛이라고 불리는 투수 왕지엔민(王建民)의 이름이 올라온 것을 보셨을겁니다.



마지막 시범경기 등판에서 상대 타자의 강한 타구를 오른쪽 가슴 부분에 맞으면서 큰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지금 소식으로는 큰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 타구에 맞은 이후 혹시나 부상을 입어 다 잡은 메이저행 티켓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모든 대만 사람들이 했었죠.



로열스 유니폼을 입은 대만의 빛 왕지엔민 / 사진 로이터(Reuters)통신


로열스로 온 후 선발 재진입을 위해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선발로테이션에는 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당히 불펜진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CBS Sports 인터넷 뉴스에 36세의 왕지엔민이 2013년 이래 계속 마이너에만 머물며 재기를 꿈꾸었는데 드디어 그 기회를 잡았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양키스 출신으로만 38승을 거둔 왕은 다리와 어깨 부상 등으로 계속 어려움을 겪어 왔었고, 다시 한 번 영광을 되찾기 위하여 절치부심하며 마이너에서 계속 도전을 이어왔습니다.


*참고로 왕지엔민의 연봉은 100만 달러에 옵션 조항 150만 달러까지 최고로 받는다면 250만 달러가 됩니다. 마이너시절에는 16,000달러를 받았었죠. 옵션 조항은 선발 횟수, 투구 이닝, 불펜 혹은 마무리 출장 게임 수 등으로 최고 150만 달러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중간에 WBC에서의 쇼케이스로 일본에서 강력한 콜이 왔었지만 고사하고 계속 메이저로의 도전을 선언했었죠. 

Kansas City Star 기자 Rustin Dodd 는 트위터로 로열스 25인 명단 확정, 왕지엔민은 불펜 한 자리를 차지했다고 적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뉴욕의 Sportsradio 66 WFAN 라디오 트윗은 @YankeesWFAN 왕지엔민의 로열스 입성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축하한다고 맞장구를 쳤네요.



작년 말 구속 회복 후 좋아하는 왕지엔민과 트레이너의 모습



예전에 누가 저에게 묻기를 천웨이인이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 대만에서 왕지엔민보다 더 인기가 있냐고. 뭐 좀 과장되게 말하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씀입니다.



한국의 박찬호와 일본의 노모 히데오, 그리고 대만의 왕지엔민은 그 세계에서의 선구자 격입니다. 인기의 범위가 완전히 다릅니다. 슬쩍 바람을 피고도 소리소문없이 다들 쉬쉬하고 넘어갈 정도니까요. ㅋ



대입해서 왕지엔민이 박찬호라면, 천웨이인은 류현진 정도라고 하면 비슷하겠네요. 아무튼, 이번 로스터 진입 발표에 대만의 거의 모든 매체에서 특집 기사를 써서 그의 복귀를 매우 환영하고 있습니다.




작년 말 각고의 훈련 끝에 구속 회복을 한 왕지엔민의 앞날이 계속 반짝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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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프로야구계에 맹렬하게 떠오르는 신성 왕보롱(王柏融) 선수. 단숨에 '보롱대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선수를 주목한 것은 작년(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 야구팀 전력분석 대만 담당 업무를 하던 때부터였다. 이 선수를 주목했던 이유는 균형 잡히고 탄탄한 피지컬 조건(181cm/90kg)과 대만의 여러 야구계 친구를 통해 수집한 개인적인 캐릭터, 그리고 그의 타격 영상과 함께 실제로 대회에서 지켜본 그의 타격 자세와 빠른 공에도 잘 대처하는 빠른 배트 스피드 등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왕보롱 1993년 9월 9일생으로 우투좌타 외야수이다. 대만 핀동현 출신으로 원화대학을 나온 후에 2015년 6월 29일 CPBL 2015드래프트에서 라미고 몽키스 팀에 의해 1차 지명되었다. 그 후 대만 야수 출신으로는 가장 높은 금액(린이취안:林益全과 천즈위엔:陳致遠과 함께 동률)인 500만 위안의 계약금(100만 위안의 격려금 포함)과 10만 위안의 월급여로 계약을 한 후에 모두 18게임에 나서 8개의 홈런과 4할에 육박하는 높은 타율을 기록하며 대만프로야구계에 새롭고 맹렬하게 따오르고 있다./ 사진 라미고 몽키스 구단


아시안게임 대 한국 전에서 우익수를 맡아 수비도 곧잘 하면서 타격에서도 매우 뛰어남을 보이던 모습에 자세히 영상으로 따서 분석하니 타격 기술에서도 이 친구는 앞으로 크게 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하였고, 그러던 중 올해 6월 말 CPBL 드래프트 라이브 중계를 보던 중에 라미고 몽키스가 그를 지명하자 깜짝 놀라 탄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면서 라미고가 진짜 잘 지명했고 앞으로 3년 이내에 대만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타자가 될 것이라고 개인 SNS를 통해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내가 예측하길 라미고의 왕보롱은 앞으로 3년 이내에 대만 리그 중에서 가장 맹렬함을 자랑하는 타자가 될 듯하다. 앞으로 계속 외국인 투수를 상대하는 법을 지켜보면서 3년 후에 한국에 와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올해는 적응한 후에 본격적으로 내년부터는 왕보롱이 리그에 잘 적응하여 좋은 성적을 올릴 것으로 예측하면서 그렇게 흘렀는데 이것이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다. 리그에 적응하고 커 나가는 시기를 대략 다음 시즌이라고 잡았던 것이 바로 오판이었다. 9월 2일에 첫 리그 출전을 한 이후 지금까지 단 18게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벌써 8개의 홈런(3게임 연속 홈런 포함)을 치면서 프로야구계를 강타하고 있다.



9월 2일 첫 게임에서 2안타를 몰아치며 예열을 한 후에 2타점 이상 7경기, 멀티 안타 이상 9경기, 8개의 홈런을 치며 0.394라는 높은 타율을 기록 중이다. 최근에는 3경기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며 팀 승리에 많은 공헌을 세우고 있다.



또한, 그 기세를 통해 프리미어 12 국제대회의 명단 중 상대 투수의 투구에 맞아 발가락 골절상을 당해 엔트리에서 빠지게 된 해외파 귀환 선수인 린저슈엔(林哲瑄)의 대체 선수로 다시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9월 17일 대만 vlsport 뉴스에 나온 왕보롱의 기사. 11게임에서 5개의 홈런은 현재까지 대만프로야구 사상 가장 빠른 기록으로 신인왕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기세라면 왕보롱은 신인왕 타이틀에도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고 가장 강력한 후보로 단숨에 등극하게 된다. 

위 그림 설명대로 대만 프로야구 신인왕의 후보 자격은 리그 93타석 이하인 자는 다음 해에도 신인왕에 도전할 자격이 생기는데 왕보롱은 남은 경기에 출전하면 모두 126.48 타석까지 들어설 수 있어서 신인왕의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이미지 vlsports 화면 캡쳐 



만약 이 선수가 지금의 기세대로 무럭무럭 자라나서 3년 후(대만 프로야구 규약에 따르면 3년이 지난 선수는 구단의 동의 하에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 이 규약은 원래 없었는데, 고교 졸업 전과 후에 헐값에 미국 등 해외로 진출하는 자국 유망주가 너무 많아지자 이를 방지하려고 군 문제 해결 전에는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없었던 규약을 고치고 고교 졸업자도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게 만든 후 3년 후에는 구단의 동의 하에 해외 포스팅도 가능하게 하면서 유망주 유출 방지에 노력한 결과물로 만들어진 규약이다.)에 포스팅을 통해 정말로 해외에 진출할 생각이 있다면, 그중에서 한국 프로야구에 진출할 의사가 있다면 내가 꼭 한국의 에이전트를 맡아서 최선을 다해 한국 프로야구 구단에 소개할 것이라며 다짐하는 중이다. 



왕보롱의 현재까지의 리그 기록은 아래와 같다.


내년에도 이런 기세일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실력대로라면 안정적으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단숨에 대만을 대표하는 타자까지 성장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대만 프로야구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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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4일 추가 업데이트가 되었습니다. 업데이트 분은 기사 말미에 실었습니다.


해외파 왕지엔민(王建民)은 대만 출신이 모든 인재로는 최고의 아웃풋(output)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입니다. 지난 2000년 미국 뉴욕 양키스와 자유계약으로 미국에 진출한 후 5년간 마이너 생활을 거친 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왕지엔민은 메이저리그 첫해에 8승 5패라는 좋은 모습으로 주전 자리를 확보하더니, 2006년과 2007년 2년 연속으로 19승을 거두면서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급 투수로 대우받으면서 대만 특급 투수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너 팀에서 투구하는 왕지엔민의 모습/사진 Taiwan Appledaily News


그러나 세 번째 되던 2008년 당시 8승 2패로 순항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이던 중인 6월 16일 휴스턴 애스트로전에서 타자로 나와 주루하다 접질리면서 복사뼈 부상을 당했습니다. (Lisfranc ligament, peroneal longus tendon). 그 후 긴 재활 시간을 가지면서 점점 퇴보하였습니다. 2009년 1승 6패로 저조한 결과를 보이면서 뉴욕과 결별한 왕지엔민은 2년간 마이너를 전전하다 2011년 워싱턴 내셔널스와 계약을 하면서 다시 메이저리거가 되었지만 2년간 6승 6패 평균 5점대의 ERA를 기록하며 방출당했고, 다시 2013년 계약한 토론토에서 메이저리그 여섯 경기에 출장했습니다만 1승 2패 7.67의 ERA로 다시 방출당하면서 더는 메이저리그에는 올라오지 못했고 어제 6월 1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너 팀으로부터 방출을 당했습니다.  



메이저리그 통산 여덟 시즌을 뛰면서 총 62승 34패 4.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왕지엔민은 메이저리그에서 두 시즌만 더 뛰었다면 선수 연금 최고 금액을 받을 수 있었는데 두 시즌이 모자라서 대략 10년 최고 연금 금액의 80%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만의 어느 야구 팬들은 왕지엔민이 계속 대만으로 돌아오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집착하는 이유가 이 10년간 등록되어야 하는 선수 연금 최고 금액 때문이라는 혹평을 하기도 합니다만 그런 것은 아니고 재기를 위해, 본인 명예 회복을 위하여 끈질기게 도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메이저리그 퇴직금 규정에서 은퇴 연금의 액수는 메이저리그 등록 기간과 연봉, 그리고 납부한 선수 부담금에 따라 달라지는데 현재 15억 달러의 운용 기금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43일만 뛰게 되면 62세부터 연간 3.4만 달러(대만 돈 102만 위안)의 연금을 평생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뛰었던 C.J 니코스키가 쓴 칼럼 일부를 잠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메이저리그 선수 연금 제도는 아주 강력한 제도로, 15억 달러의 운용 자산을 가지고 있다. 연금 제도는 해당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있었는지를 기반으로 배당된다. 만일 당신이 메이저리그에 43일을 머물렀다면, 연금 제도 대상자가 된다. (43일은) 풀 시즌의 대략 1/4 정도 기간이다. 

연금 제도내에서의 최대 혜택은 메이저리그 서비스 타임의 10년을 상한으로 한다. 즉, 만일 당신이 10년을 뛰었든 15년을 뛰었든 연금 액수는 여전히 동일한 것이다. 10년 미만에 대해서는 서비스타임별로 계산을 달리 한다. 나는 메이저리그에서 10년의 메이저리그 시즌을 치렀지만, 서비스타임으로 계산하면 6.5년이 된다. 말인즉, 나는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연금의 65%를 받는다는 뜻이다. 

한 선수가 얼만큼의 연금을 받는지는 그가 언제부터 수령을 시작하는지에 달려있다. 야구의 경우, 선수는 자신의 연금을 이르게는 45세부터 수령을 시작할 수 있고, 62세가 넘어가기 전부터는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금액은 54세쯤 때부터 수령을 한다면, 혜택을 최대한 누릴 수 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참고 기다릴 수 있다면 말이다. 

10년의 서비스타임을 채운 메이저리그 선수이면서, 1992년 이후 커리어를 시작한 선수에 대한 연금 혜택은 꽤 관대하다. 만일 선수가 45세부터 연금 수령을 시작한다면, 그는 매년 약 6만 5천 달러(한화 7,341만 7천 5백원)를 받게 된다. 만일 그가 62세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 금액은 연간 20만 달러(한화 2억 2천 5백 90만원)로 뛴다. 이 숫자들은 몇 년 된 이야기로, 2015년 일자로는 조금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연금 제도들은 선수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 지급된다. 만일 선수의 배우자가 생존해있다면, 동일한 연금 혜택은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 이어서 받게 된다. 


이 규정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생존하면 그 금액은 더 커지게 되는데 만약 10시즌(10시즌 이상도 10시즌 규정으로 동일)을 꽉 채워서 뛰게 된다면 퇴직금은 무려 19.5만 달러(대만 돈으로 600만 위안)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한국 선수로는 박찬호 선수가 10년을 넘겨 최고 액수의 선수 연급을 지급 받습니다.



MLB 퇴직금은 선수노조 기금, 올스타전 수익금, 초상권, TV 중계료 일부와 사치세 일부 등을 모아서 운용하여 지급하게 되는데 그 혜택이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MLB 측의 계산은 등록일수 172일을 1년으로 계산합니다. 만약 왕지엔민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 모두 8년 16일을 뛰었으니 그가 62세가 되었을 때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으로 1년에 16만 달러(대만 돈으로 대략 500만 위안)를 받을 수 있습니다. 



대만의 다른 메이저리그인 궈홍즈(郭泓志)는 5년 114일을 뛰었는데 지금 현역으로 뛰고 있는 10년 최고 금액의 대략 51%의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최고 기준인 10년 지급 금액 기준에서 본인이 등록된 날을 계산하여 비례하게 받는다고 보면 됩니다. 천웨이인은 아직 현역이라서 앞으로 등록일수는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기타 대만의 다른 메이저리그 출신인 천진펑(陳金鋒)은 총 4년간 19게임에 출전했지만 총 등록일수는 43일이 되지 않아 역시 보스턴에서 9게임만 출전한 린저슈엔(林哲瑄)과 함께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외 디트로이트의 니푸더(倪福德)나  LA 다저스의 후진롱(胡金龍), 콜로라도의 차오진후이(曹錦輝), 클리블랜드 리쩐창(李振昌), 휴스턴의 뤄지아런(羅嘉仁)과 작년 룰 5 드래프트 조항으로 일정 기간 메이저리그에 등록되어야 했던 조항의 혜택으로 메이저리그 경험을 한 왕웨이중(王維中)은 밀워키에서 1년의 등록일수를 기록해서 앞으로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은메달을 획득한 대만 국가대표 야구팀/ 왕지엔민의 방출 소식으로 이번에는 과연 프리미어12 

국가대표 소집에 응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 사진 ckjamesix.pixnet.net



아무튼, 왕지엔민은 현재 대만 프로야구 네 개 팀의 모든 러브 콜을 받고 있습니다. 대만 프로야구 연맹은 왕지엔민 같은 대스타가 CPBL로 온다고만 하면 특별 드래프트를 열어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 대만 프로야구 연맹의 생각입니다. 2013년에 이미 왕지엔민 특별 조항(王建民條款)을 만들었고, 먼저 궈홍즈가 그 혜택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계속 모든 팀은 왕지엔민 에이전트에게 접촉하여 꼭 자기 팀으로 와달라는 로비를 하고 있었죠.



이번 방출 소식 후 올해 말에 대만에서 열리는 새로운 국제대회인 프리미어 12 대회의 대만 팀 감독을 맡은 궈타이위안 감독은 역시 왕지엔민을 대만 대표팀으로 소집할 뜻을 밝혔습니다. 물론 본인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는 단서를 내세웠습니다만 그래도 대표팀 투수진 강화를 위해 꼭 그를 소집할 것이라는 의사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나온 보도에서 왕지엔민은 일단 계속 미국에서 도전할 기회를 찾는다고 했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 현재 그의 상태로는 더이상 메이저리그 도전은 어려워 보이기에 왕지엔민의 대표팀 합류 확률과 대만으로의 리턴도 예전처럼 아주 불가능하지많은 않다고 봅니다. 9월 말, 혹은 10월 초 최종 28인의 대표팀 명단을 보면 여기에 대한 답이 나오겠네요.


Southern Maryland Blue Crabs 팀의 홈페이지 메인화면


추가 업데이트

현재 왕지엔민은 미국 독립리그(Independent league baseball) 대서양연맹(Atlantic League) 팀인 'Southern Maryland Blue Crabs'(중국어로 南馬里蘭州藍蟹)에 가입했습니다. 올해 드래프트에 신청한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뛰었던 前 메이저리거 니푸더(倪福德)가 뛰었던 팀입니다. 


그의 에이전트는 시즌 중일 경우는 다른 나라의 프로리그에 가입이 쉽지 않다면서 먼저 독립리그에서 컨디션을 조정하여 밸런스를 되찾은 후에 다른 나라의 프로리그에서 요청이 온다면 고려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앞으로 NPB, KBO나 고국인 CPBL 등의 진출도 열어 놓겠다는 뜻입니다. 


先讓王建民前往美國獨立聯盟,主要是希望維持穩定出賽,由於目前仍在球季中,想要直接加入其他國家職棒不是這麼簡單,經紀公司與王建民本人討論過,先瞭解目前有什麼機會,雙方再來討論,採取開放式態度,不管是日職,韓職,中職,也都需要經過評估,再來決定下一步.

:그의 에이전트 쟝지아밍(張家銘)은 "생각한다고 바로 다른 나라의 프로리그에 가입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기에, 먼저 독립연맹에서 왕지엔민의 상태를 회복하고 좋은 상태로 유지한 후에야 비로소 현재 어떤 기회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일본리그든, 한국리그든, 대만리그든 마음을 열고 그게 어느 나라가 되든 어느 정도 재볼 수 있는 시간이 지나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이는 과거의 왕지엔민의 태도에서 변화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전에는 NPB나 KBO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발언을 했었는데, 이제는 어느 리그라도 마음의 문을 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만약 왕지엔민이 한국 프로리그로 온다면 분명한 것은 그의 화제성으로 볼 때 분명히 KBO리그가 대만에도 라이브로 중계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왕지엔민의 영입은 화제성이나 수익성에서도 충분히 고려할만한 행보라고 생각합니다. 대만 출신 제1호 한국리그 진출자가 되는 상징성도 있으니 내년 외국인 투수를 보강하려는 팀에서 충분히 연구하고 고려하여 접촉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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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타이완 리그에 진출했던 한국 국적의 야구 선수들(총 16명)

*예전에 올렸던 기사인데 내용이 수정되었거나, 새로운 소식과 이미지가 올라와서 갱신합니다.

한국 선수로 타이완 리그에 진출했던 선수는 총 16명입니다. 윤경희(尹景熙), 김동호(金東鎬), 한희민(韓禧敏), 김형균(金炯均), 감병훈(甘炳勳), 박인구(朴仁球), 김종국(金鐘國), 유병선(劉炳宣), 이준(李俊), 최동진(崔東進), 김경태(金京泰), 김제빈(金齊斌), 김덕칠(金德七), 김대우(현 롯데자이언츠 외야수)가 선수로, 그리고 전 MBC 청룡과 롯데 자이언츠에서 원년부터 활약했던  김용운(金容雲) 씨와 *(update) 오비 베어스 스카우트 출신의 안계장(安啟漳) 전 휘문고 감독은 특이하게 코칭스태프로도 활약했습니다. 
 

삼성 시절의 한희민/ⓒ삼성라이온즈 홈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은 한국에서나 타이완에서도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만 유일하게 한희민 선수와 김덕칠 선수, 

그리고 김용운 선수(전 싱농불스 코치/감독 출신)는 유일하게 감독까지 한 사람이라서 주목했습니다.



한희민(韓禧敏) : 1962년생으로 빙그레 이글스 소속(1986년~1992년)의 스타 투수였지요. 그 후에 삼성 라이온즈(1993년)를 거쳐서 타이완의 쥔구어 베어즈(俊國熊隊 : 1994년~1995년)에서 활약했습니다. 한국에서 통산 80승을 거둔 스타선수였지만 노쇠화되어 더이상 한국에서는 선수로 뛰기 힘들기에 그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 위하여 타이완으로 진출한 케이스입니다. 

타이완에 진출한 제 1호 한국 국적의 선수입니다. 통산 31게임에 나와 6승 16패 5.31의 방어율만을 기록하였습니다. 그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기아타이거즈의 투수 코치로도 활약했습니다.  이 한희민 선수는 당시 쥔구어 베어스가 20만 위안이라는 높은 급여를 주고 데려왔는데, 당시 쥔구어 베어스의 투수진이 약해 한희민 선수의 뒤를 받쳐줄 선수가 마땅치 않기에 자주 혼자서 경기를 책임져야 하는 등의 어려운 상황을 많이 겪으면서 고생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작과 동시에 4연속 패(네 경기 평균자책점 10,23)를 하며 마음 고생을 많이 했었지요. 당시 나이가 이미 30대 중반으로 접어 들었고, 구속과 체력 등이 전성기만 못한 상황에서 뒤를 받쳐 줄 투수가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겪은 달갑지 않은 고통이었습니다.

진출 첫해 22게임에 출전(20게임 선발)하여 122.1이닝을 던져 134피안타(22피홈런)을 맞았고, 성적은 5승 10패 5.6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두 번째 해에 결국 연봉 삭감이 되었고, 리그 초반에 슝디 엘리펀츠와 경기에서 타자가 친 타구가 발에 맞는 부상을 당하여 계속 부진하면서 다시 5연패를 하는 등의 결과로 결국 그해 상반기 리그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부상 치료를 하던 중에 쥔구어 베어스가 팀을 싱농 불스에 매각하는 바람에 그대로 대만에서의 생활이 끝났던 것입니다.



김형균(金炯均) : 1969년생으로 한국의 OB베어즈에서 3년(1989년~1991년)간 뛰다가 타이완으로 와서 쥔구어 베어스(俊國熊隊)에서 2년동안 뛰었습니다. 쥔구어 베어스에서 주로 중계나 구원 투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승패와는 크게 연관이 없는 듯하다가 첫 해 6월 4일에 처음으로 통이 라이온스(당시 선발 맞대결은 통이의 궈진싱郭進興 투수)를 상대로 선발 출장을 하여 2:1로 무사사구 완투승을 하면서 첫 승리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첫 해 총 21게임에 나와 58이닝 동안 1승 3패 2세이브를 기록하였고, 다음 해에는 겨우 한 게임만 나왔습니다.

김형균 선수의 모습/웨이라이 중계화면 캡쳐


감병훈(甘炳勳) : 1971년생으로 1994년 경북고-단국대 출신 좌투수로 삼성 라이온즈와 1차지명으로 계약한 후 삼성이 1년간 실전 훈련 차 대만으로 파견했다고 합니다. 타이완의 쥔구어 베어스(俊國熊隊)로 와서 1년간 경험하다 다시 삼성으로 건너간 케이스입니다. 쥔구어 베어스에서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중계로 첫 등판에서 2이닝동안 4실점을 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습니다. 네 경기에 출장하여 세 경기를 선발로 나왔는데 18.1이닝을 던져 승리없이 2패, 평균자책점 6.87만 기록하며 물러났습니다. 이후 삼성에서도 큰 활약없이 총 6년간(1994년~1999년) 30경기만 출장하여 승리없이 2패만 기록했습니다. 

감병훈 선수 파견 내용이 실린 매일신문 기사


당시 1차지명의 동기로는 유지현, 유택현, 최상덕 선수였지요. 현재는 감병훈 연탄구이 전문점으로 범어동에서 고깃집을 하고 있으면서 사회인야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쥔구어 베어스 시절 감병훈 투수의 모습/웨이라이 중계화면 캡쳐


박인구(朴仁球)  : 1970년생 좌타 외야수로 경주고 출신의 야구 선수로서 한국의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을 3년간(1990년~1993년) 하였습니다. 그 후에 삼성의 자매결연 팀인 쥔구어 베어스(俊國熊隊)에 1994년에 와서 1년간 뛰었습니다. 외야수 요원으로 주로 좌익수로 활약했는데 타이완에서의 성적은 겨우 타율 1할 2푼 대의 빈타였습니다.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간 박인구 선수/웨이라이 중계화면 캡쳐


김종국(金鐘國) : 1972년생 투수로 1994년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 되었지만 바로 퇴출당하고 타이완의 쥔구어 베어스(俊國熊隊)로 온 케이스입니다만 여기서도 성적부진으로 7게임에서 20.2이닝동안 방어율 6점대에 단 4패 만을 기록하며 집으로 가는 짐을 싸게 되었습니다. 

첫 경기는 슝디 엘리펀츠를 상대로 선발 출장하여 5이닝까지 4:2로 앞서며 승리의 기회를 가졌는데 6회에 동점이 되면서 승리가 날아갔고 총 8.1이닝을 던졌으나 결국 패전투수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선발 기회에서도 스바오 이글스를 상대로 5회까지 5:2로 앞서며 첫 승리를 기대했지만 6회 들어 홈런을 맞으며 교체되었고, 그 이닝에서 스바오 이글스가 무려 10점을 뽑으면서 또 패전 투수가 되는 등 모두 4패 만을 기록했습니다.

김종국 선수 투구 모습/웨이라이 중계화면 캡쳐


유병선(劉炳宣) : 1963년생으로 타이완에서 뛴 최초의 한국인 포수 자원이었습니다. 포항제철 야구팀 소속으로 삼성라이온즈에서 1986년 지명권 포기를 함으로서 선수생활을 계속하려고 1995년 타이완의 쥔구어 베어스(俊國熊隊)에서 잠시 뛰었지만 성적부진(5게임 18타수에서 1할1푼)으로 퇴출된 케이스입니다. 그러나 유병선 선수는 대만프로리그에서 산상 타이거즈 팀과의 경기에서 홈런을 치며 한국 선수로 유일하게 홈런을 친 기록의 타자가 되었습니다.

유병선 선수의 홈런치기 전 모습/웨이라이 중계화면 캡쳐



김덕칠(金德七) : 1970년생으로 한국전력 야구팀 선수로 있다가 타이완으로 건너 온 케이스입니다. 타이완에서는 웨이취엔 드레곤즈(1999년)에서 16게임 46이닝을 던져 4승 1패 2세이브 3.13의 방어율을 기록하였습니다. 그 후에 T.M.L의 니엔다이띠엔공(年代雷公) 팀(2000년)에서 30게임동안 138이닝을 던져 9승 6패 4.17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활약했습니다. 

또한 타이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 국적의 선수가 타이완 챔피언 시리즈에 등판하였던 제1호 선수입니다. 챔피언시리즈 첫 경기에서 2이닝을 중계로 나와 던졌습니다. 그리고 3차전에서는 선발로 나와 6.1이닝을 던지면서 천롄홍에게 투런 홈런을 맞은 것외에는 좋은 투구 모습을보이며 승리를 따냈습니다. 이것으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챔피언시리즈 승리투수가 된 기록과 첫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故쉬셩밍 감독의 한국 인맥으로 대만에 진출한 케이스라고 합니다. 리그 도중에 웨이취엔으로 진출하였고, 선발과 중계, 마무리까지 고루 돌아가면서 맡았습니다. 

현재는 김덕칠에서 '김도윤? 김도현? '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타이완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 중에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선수이기도 합니다. 

김덕칠 선수의 투구 화면/웨이라이 중계화면 캡쳐



김동호(金東鎬) : 1973년생으로 1995년 해태 1차 지명된 뒤 97년에 입단한 선수이다. 목포 영흥고와 계명대를 졸업하고, 현대전자 실업팀을 거쳐 해태에 입단한 투수로 해태타이거즈(1997년) - LG트윈스(1998~2002년)에 있다가 후에 타이완의 T.M.L 띠이진깡(第一金剛)팀(2003년)으로 왔습니다. 성적은 6게임에 나와 25와 3/1이닝을 던져 4.90의 방어율로 3패만을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상대팀 선발로 나온 현 타이완의 대표 투수인 판웨이룬이 띠이진깡 첫 타자에게 헬멧에 맞는 볼을 던져 당시 규정으로 퇴장을 당한 후에 띠이진깡 팀이 다섯 점을 뽑으면서 김동호 선수가 5이닝동안 잘만 막으면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만 본인도 상대 타자의 헬멧을 맞추면서 퇴장을 당하는 헤프닝이 있었습니다. 그 경기는 팀이 대승을 거뒀지만 김동호 선수는 5회가 되기 전에 내려갔기에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무튼, 김동호 선수는 팀의 수비가 엉망인지라 그 후에도 계속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안타깝게 대만을 떠나야 했습니다.

상대 타자의 헬멧을 맞추고 멋쩍게 웃는 김동호 투수/웨이라이 중계화면 캡쳐



윤경희(尹景熙) : 1980년생으로 前 통이라이온즈 소속의 겅지엔후이(耿健輝)씨의 소개로 타이완의 띠이진깡(第一金剛)팀으로 왔습니다. 성적은 모두 7게임 24와 3/1이닝동안 4.07의 방어율에 1패만을 기록하였습니다.(새로운 정보는 현재 개명을 하여 '윤경영'이라는 이름으로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2010년에 방출되었다고 합니다.) 

대전 중도일보에 실린 윤경희 선수 기사내요입니다.



김제빈(金齊斌) : 1982년생으로 한국 롯데 자이언츠의 2차 5순위에 지명된 선수로 2002년 한 해동안 롯데(2군)에서 뛰었고, 그 후 2007년 4월에 테스트를 받고 타이완의 청타이 코브라스로 왔습니다. 타이완에서는 7게임 27.2이닝에 나와서 2승3패 5.20의 방어율을 기록한 후에 성적부진으로 그 해 5월28일 계약해지되었습니다.


이준(李俊) : 1977년생 좌완 투수로 2003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1년간 적을 두고있다 2004년에 중신 웨일즈(中信鯨隊)로 건너온 케이스입니다. 역시나 당시 중신팀의 감독이던 쉬셩밍 감독의 인맥으로 타이완으로 건너왔습니다만 성적 부진으로 계약해지된 후 타이완을 떠나서 2005년 중국의 지앙쑤 호프스타즈(江蘇希望之星) 팀에 들어간 케이스입니다. 타이완에서 첫 게임 등판 시 130km가 안 되는 구속과 계속된 폭투에 가까운 공을 던져 바로 강판된 후에 단 두 게임 1.1이닝 외에는 다시는 출장하지 못했습니다. 2004년 이준 선수를 끝으로 더 이상 타이완 프로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없었습니다. 



최동진(崔東進) : 1976년생으로 부천고-한양대 출신의 청소년 대표 출신 강속구 투수였습니다. 그 후에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로 잠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2003년에 T.M.L 청타이 타이양(誠泰太陽隊) 팀에서 단 한 게임에 선발로 나와서 방어율 9.0을 기록하며 부진하자 팀은 바로 성적부진을 이유로 계약해지를 하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최동진 투수



김경태(金京泰) : 1975년생으로 먼저 LG 트윈스(1998년~2001년)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후에 두산베어즈(2002년~2003년)로 옮겼다가 다시 타이완의 청타이 타이양(誠泰太陽隊) 팀(2003년)으로 와서 1년간 활약하다가 다시 SK 와이번스(2004년~2008년)로 와서 후에 다시 LG 트윈즈(2009년~)로 옮겼던 파란만장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김경태 투수



김대우 1984년 7월 26일생으로, 190cm/95kg의 당당한 체격 조건으로 우투우타의 투수입니다. 

     (청타이 코브라스 연습생 시절의 김대우)
광주일고 재학 시절 4번타자 겸 에이스로 이른바 ‘초고교급’ 선수로 명성을 날렸습니다만 계약금의 금액 차이로 연고 팀인 KIA의 1차 지명(기아 김진우 급의 대우를 받기 원했지만 기아 측에서는 김진우선수 급은 아니다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합니다.)을 받지 못하고 결국 롯데 자이언츠의 2차 지명 1순위로 지명 받았습니다. 그러나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데다 4억 5천만원을 제시한 롯데의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려대로 진학. 조건은 해외 진출 시 조건없이 자퇴할 수 있는 조항을 넣어 해외 진출에의 미련을 가졌었지요. 

군 문제 해결을 위해 고려대 2학년 시절 상무에 입대하였고, 상무시절 선동렬놀이를 할만큼 뛰어난 성적(상무에서 스탯은 다승과 방어율  삼진, 그리고 승률까지 1위(방어울은 1점대 초반 ))이 뛰어났고, 그 후 병역을 마친 후 다시 메이저리그와 접촉을 하였으나 좋은 조건을 받으며 가고 싶었던 그의 바램과는 달리 만족스럽지 못한 조건에 실망하여 타이완 진출을 꾀하게 됩니다. 2007년 7월 타이완의 청타이 코브라스에 자비를 틀여서 테스트를 받아 합격 되었으나 원 지명권을 가진 롯데 구단의 반대로 KBO가 타이완으로 협조 공문을 보내오면서 CPBL에서 뛰는 꿈도 접고 귀국을 하였습니다. 당시 청타이 코브라스 팀은 김대우 선수를 정식 1군으로 등록 시키려 하였지만, CPBL에서 한국의 KBO와 마찰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타이완 리그에서 등판 불가의 선택을 내렸습니다.

(당시 계약상, 서류상의 문제로 결국 타이완 팀의 군 미필자 복무 팀과 같은 따이쉰 팀([각주:1])에서 3게임만 등판 하였습니다.)
연도 소속 G Inn W L H S 완투 완봉 BB K E 승률 ERA 
2007 따이쉰팀 3 10.1 0 1 0 0 0 0 0 9 2 0 1.742
통산 3 10.1 0 1 0 0 0 0 0 9 2 0 1.742

국내에 돌아온 후에서 계속 메이져리그와 접촉을 하였으나 이미 유망주의 신분은 잃어버리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그의 상태가 각종 트라이아웃을 통해 밝혀지게되고 결국 계약에 실패한 그는 국내 복귀를 결심하고 결국 제작년 10월 롯데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1군 선발경기에서 5연속 볼넷을 주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지요. 2010시즌에는 꼭 부활하여서 롯데 선발의 한 축을 담당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타이완에서 코치와 감독으로도 활약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용운(金容雲) 코치/감독입니다. 한국전력 팀을 거쳐 프로 원년인 1982년부터 M.B.C 청룡-롯데 자이언츠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OB 베어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고 그 후에 쥔구어 베어스(俊國熊隊)로 와서 체력 담당 피지컬 코치로 있다가 팀 매각 후에 다시 싱농 불스의 감독까지 맡았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타이완 프로야구 팀의 감독을 맡았지요. 성적은 1996년 후반기리그에서 71게임에서 22승 46패 3무로 승률 0.324를 기록하였고, 1997년 상반기리그에서는 25게임 10승 14패 1무로 승률 0.417을 기록하며 결국 성적부진으로 물러났습니다.

위 자료의 내용은 쥔구어 베어스가 한국 코치 안계장 씨를 수비코치로 임명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대만 프로야구 역사상 첫 번째로 한국인 코치가 진출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저명한 청소년팀 감독 출신으로 여러 차례 청소년대표팀의 코치를 담당했고 현재(당시) 휘문고 감독으로 재직 중이었다는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여러 제자가 있는데 선동렬 등이 대표적이다.쥔구어 베어스가 그를 수비 코치로 임명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의 야구 품격은 엄격한 훈련 집행 태도라서 선수들을 엄격하게 잘 지도하여 수비 및 피지컬 훈련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한국을 잘 아는 그의 능력으로 다른 좋은 한국 선수들을 우리 팀으로 데려올 수 있는 면에서 그를 기용했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대만 연합뉴스에 실렸던 안계장 씨의 쥔구어 베어스 수비코치 계약 신문 내용으로 옛 자료의 DB를 캡쳐했습니다.


2015.2.7 업데이트
안계장(安啟漳) 코치는 1947년 생으로 야구계 원로십니다. 전남고, 배재고, 선린상고, 휘문고 前감독으로도 활약했고, 오비 베이스의 스카우트로 활동하였던 분인데, 이 분은 대만 쥔구어 베어스의 수비 코치로 활약하면서 나중에 한희민 선수를 데려오기까지 큰 역할을 했던 분이라고 합니다. 1993년 11월 5일 쥔구어 베어스와 계약(이것이 대만 프로야구 역사상 첫 번째 한국인 코치가 된 사례입니다.)을 했고, 1994년 12월에 오비 베어스와  스카우트 계약(이때 스카우트를 하던 前 롯데 감독 출신인 양승호 씨가 안계장 씨가 스카우트로 오면서 대신 2군 코치로 발령받았습니다.)을 하면서 귀국했습니다. 나중에 안계장 씨는 8개 구단 스카우트 협의회 회장까지 역임했습니다.


당시 타이완 야구계에 한국 야구선수들이 빈번하게 노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전에 1984년 실업팀 한국 화장품에서 투수생활을 하면서 최우수 투수상까지 받아쏙, 싱농 불스의 감독과 EDA 라이노스 감독으로 지내다 돌아가신 쉬셩밍(徐生明) 씨와 위에서 쓴 김용운 전 싱농불스 팀의 코치/ 감독 및 안계장 쥔구어 베어스 수비코치 때문이었습니다. 쉬셩밍씨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한 덕분에 많은 선수들을 알게 되었고, 안계장 쥔구어 베어스 수비코치가 한국 출신 제 1호 선수였던 한희민 선수를 쥔구어 베어스(뒤에 1995년 당시 5억 2,700만 위엔(182억 원 정도)에 싱농 불스팀으로 매각하였습니다.)에 권유하여 대만에서 뛸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그들이 있었던 덕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프로 1군 진입에 실패하거나 2군에서 퇴출 된 선수들 위주로 많이 타이완으로 건너가서 테스트를 받고 시작하였지만 그 결과는 크게 좋지 못했지요. 아무튼 지금은 그런 서로간의 교류조차도 없어진 현실입니다. 한국 야구가 타이완 야구보다 실력이나 시스템적으로 조금 더 발전을 한 이유도 있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여러가지 적응의 어려움도 있는 이유 등으로 양국간의 교류는 점차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1. 타이완 프로야구 2군 따이쉰란뚜이(代訓藍隊)를 아시나요? http://chinesebaseballstory.tistory.com/124 타이완 야구선수의 병역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설명. http://chinesebaseballstory.tistory.com/12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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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11번 째의 메이저리거가 탄생하겠네요. 


2011년 피츠버그와 자유계약으로 미국 진출을 한 좌완투수인데, 이번 스캠때 쏠솔한 활약을 보이면서 오프닝 로스터에 들었네요. 


뭐 룰5 드래프트로 온 선수라서 로스터에 넣어야 하지만, 어쨌든 90일 간은 메이저 물을 먹게 되겠네요. 나름 큰 키의 좌완에 구속도 좀 나오고(최고 95마일) 원포인트로 마춤인 선수네요. 

왕웨이중 투수/사진 www.tsna.com.tw 


쓸만하다고 판단하니 웨이버로 다시 원 소속팀으로 되돌려보내지 않겠다는 소리기도 하니까... 밀워키 불펜진 왕웨이중(王維中:Wei-Chung Wang)나이가 겨우 21세 10개월로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룰5 드래프트 케이스로 루키리그(작년 Gulf Coast Pirates)에서 메이저로 바로 승격한 첫 케이스 기록도 세웠다고 합니다.



대만 출신 메이저리거는 그간 10명이었습니다. 

천진펑(陳金鋒), 차오진후이(曹錦輝), 왕지엔민(王建民),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니푸더(倪福德), 천웨이인(陳偉殷), 린저슈엔(林哲瑄), 리쩐창(李振昌), 뤄지아런(羅嘉仁)이 있었는데, 이제 왕웨이중 선수가 포함되겠네요. 

원래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 강력한 주전으로 뽑힐 예정이였던 왕웨이중이 메이저에 올라가서 대표팀 선발 예측은 90일 뒤에 판단해봐야겠네요. 계속 잘해서 남아 있으면 뭐 못 나오는 것이 될테니까요. 



현재 대만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선수는 

투수 19명 
P: 李振昌 羅嘉仁 陳偉殷 王維中 王建民 林哲瑄 倪福德 羅華韋 王躍霖 潘志芳 陳敏賜 羅國華 林逸翔 江少慶 曾仁和 胡智為 陳品學 陽耀勳 廖仁磊 

야수 6명 
OF: 蔣智賢 陳品捷 
1B: 陳俊秀 郭阜林 
SS: 林子偉 
C : 張進德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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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대만 해외파 투수의 구속자료 

2013년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만 해외파 투수들의 구속 자료를 정리하여 올린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출처는 글 맨 아래 대만 출신의 해외파 선수들에 대한 소식을 정리하여 모아 놓은 사이트입니다. 



천웨이인 陳偉殷 / 볼티모어 오리올스 MLB

최고 구속 95마일/ 평균 91.5마일 

올해 구속은 작년에 비해 소폭 증가했습니다. 패스트볼에 대한 제구력이 좀 더 좋아졌다는 평가인데요, 9월에는 상황이 좀 좋지 않았습니다만 9월에 본인 최고 구속을 찍었습니다. 




왕지엔민 王建民 / 토론토 블루제이스 AAA

최고 구속 93마일 / 평균 90마일 

WBC 일본전에서 본인 최고인 93마일의 싱커볼을 던졌습니다. 다시 양키스와 계약한 후에 부상으로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방출된 후 토론토로 가서 나름대로 안정적인 구속과 제구를 보였습니다만 구위가 실종되서 난타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시 마이너로 강등되었습니다. 




리쩐창 李振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MLB

최고 구속 95마일 / 평균 92마일 

수술 회복 후 맞는 첫 시즌에서 다행히도 구속과 제구가 안정되어 밸런스도 좋아지고 상태 회복이 순조롭게 되면서 9월 빅리그로 승격되었습니다. 패스트볼은 꾸준히 90마일에서 94마일을 던지고 있고 최고 구속은 95마일을 기록하였습니다. 


 


 


 




뤄지아런 羅嘉仁 / 휴스턴 애스트로스 MLB

최고 구속 97마일 / 평균 94마일 

스프링캠프에서 입은 어깨부상으로 재활에 일정 시간을 쏟은 후에 싱글A부터 차근차근 승격되면서 마이너에서 96마일을 뿌리면서 재활에 성공하였고 9월 빅리그에 승격된 후에 본인 최고 구속인 97마일을 찍었습니다. 약점으로는 볼의 비율이 높아서 투구 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왕야오린 王躍霖 / 시카고 커브스 Advanced A 

최고 구속 93마일 / 평균 90마일

올해 대부분의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어깨에 통증을 얻어 마이너리그에서 한달 이상 휴식을 취했고, 구속도 일정 부분 감소하였다. 작년에는 96마일까지 던졌지만 올해는 최고가 93마일 밖에 나오지 않았다. 



천민츠 陳敏賜 / 시애틀 마리너스 Short A 

최고 95마일 / 평균 92마일

올해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면서 제구 향상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구속은 약간 줄어든 상태로 90마일에서 94마일 정도 뿌리고 있다. 내년에는 95마일 이상 던질 수 있도록 구속 증가에 힘을 기울인다는 생각이다. 



 


 


 




뤄궈화 羅國華 / 미네소타 트윈스 Rookie

최고 구속 96마일 평균 91.5마일

스프링캠프에서 코치진의 요구로 전력 투구를 했을 때 96마일을 찍었다. 평균 91마일 정도를 일정하게 던지고 있다. 단 제구에 아직 문제가 있다는 판단으로 현재 밸런스를 조정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리그에서 계속 마무리투수의 보직을 받았다가 리그 끝나기 전에 겨우 선발 보직을 받고 테스트를 했다. 리그에서는 94마일이 최고 구속이었다. 



린이샹 林逸翔 / 볼티모어 오리올스 Rookie

최고 구속 92마일 / 평균 89.5마일 

스프링캠프에서 천웨이인으로부터 몇 가지 배움(투구 동작과 손목 움직임)을 얻어 연습한 후에 약간의 구속 증가(1마일 이상)를 이뤘다. 투구 동작이 부드러운 것이 장점이다. 



왕웨이중 王維中 /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Rookie 

최고 구속 95마일 / 평균 91.5마일 

어깨 부상 재활기간 첫 시즌으로 팀에서는 투구 수와 이닝 제한을 두고 있다. 재활 기간 중 최고 93마일 정도 던졌고 평균 90마일을 기록했으나 회복이 된 후에 Arizona League에서 구속 증가를 이루면서 95마일까지 던졌다. 



 


 


 





쟝샤오칭 江少慶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Rookie 

최고 구속 93마일 / 평균 90.5마일 

부상 재활 기간 중에 있으며 가을리그에서의 테스트성 등판에서 잠깐 93마일까지 던졌다. 아직 재활 기간 중으로 구단으로부터 충분한 휴식 기간을 받아 회복 중에 있다. 



천핀슈에 陳品學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Rookie 

최고 구속 92마일 / 평균 90.5마일

어깨 부상 재활 후 스프링캠프에서 등판하여 테스트 투구를 했으나 다시 부상이 도져 훈련 중단 후 재활에 힘쓰고 있다. 



후즈웨이 胡智為 / 미네소타 트윈스 Rookie 

최고 구속 93마일 / 평균 90.5마일

첫 루키리그에서 구속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제구는 어느 정도 진보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현재 구속 증가를 위한 밸런스 조정과 체력 증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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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도 블루제이스의 마이너 소속 타이완 투수 왕지엔민(王建民) 다시 메이저 콜업되어 8월 25일 오전 8시10분(한국시간) 선발로 출전합니다. 

상대는 휴스턴의 Brad Paec/ock(2승4패, 5.59평자)입니다. 

토론토 유니폼을 입은 왕지엔민/사진 타이완 야후스포츠 채널


존 깁슨 감독 말로는 9일동안 10게임을 해야 하는데 신인 투수보다 왕지엔민이 실적이 있어서 콜업했다고 하네요. 

"그동안 왕지엔민은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풍부한 경험을 자산으로 가진 투수고 올해 몇 게임에서 좋은 모습도 보여줬고, 또 마이너로 가서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지난 콜업시 부진한 모습으로 방출되었으나 마이너 재계약으로 팀에 남았고 그동안 마이너에서 계속 머무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드디어 다시 콜업이 되었습니다.

끈질긴 잡초처럼 기회의 끈을 부여잡은 왕지엔민.

내일 잘 던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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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출신의 해외파 선수인 '뤄지아런(휴스 애스트로스 2A 소속)' 선수가 제10호 메이저리거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일부 신문이나 기사에 '로우치아전'이라고 나와 있는데 그건 잘못 표기된 것으로 '뤄지아런'이 정확한 이름의 발음입니다.


http://www.milb.com/milb/stats/stats.jsp?n=Chia-Jen%2520Lo&pos=P&sid=milb&t=p_pbp&pid=547568


휴스 애스트로스의 더블 A팀 소속인 뤄지아런 투수가 마무리 '호세 베라스(Jose Veras)'를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하면서 생긴 여유 엔트리에 불펜진을 보강하려고 트리플A의 'Josh Zeid' 선수와 대만 출신의 더블 A 소속 '뤄지아런'을 올리면서 제10호 대만 출신 메이저리거가 되었습니다. 


뤄지아런(羅嘉仁)의 투구모습(사진/達志影像/美聯社)


이로써 내일 휴스턴과 볼티모어의 경기에서 잘하면 대만 출신 선수들의 맞대결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볼티모어 선발 투수 천웨이인(陳偉殷)이 내일 경기에 내정되어 있어서 경기 후반부에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뤄지아런 선수는 올 시즌 스프링캠프에서 9게임에 나와 8.2이닝을 던져 7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면서 좋은 출발을 했습니다. 이후 더블 A에서 출발하였지만, 중간에 어깨 통증으로 잠시 싱글 A로 내려가 컨디션 조절을 했고 6월 말에 다시 더블 A로 올라왔었습니다. 그 후 7월 30일 팀 내 결원 선수에 대한 불펜진이 보강 차원에서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었습니다. 


뤄지아런 선수는 1986년생으로 180cm/80kg의 야구선수로는 평범한 신체조건에서 본인 최고기록은 156km/h이고 평속은 144km/h의 강속구를 뿌리는 정통파 투수입니다. 2008년에 기대만큼의 계약금(20만 달러)은 받지 못했지만, 본인의 강력한 요구로 미국에 진출하였습니다.


뤄지아런 선수의 모습/사진제공 民視體育新聞

커브와 슬라이더, 체인지업은 기본으로 장착하고 SF 볼 연마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대만에선 '차오진후이'와 비교되곤 합니다. 그러나 대만야구인들은 '차오진후이'보다는 속도는 약간 떨어지지만 컨트롤 능력에서는 '뤄지아런'이 조금 더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잘 잡아서 롱런을 할지 아니면 잠깐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인 바람은 좋은 활약으로 오랫동안 메이저리거로 활약했으면 합니다.


대만출신 메이저리거는

천진펑(陳金鋒/LA 다저스), 

차오진후이(曹錦輝/콜로라도록키스), 

왕지엔민(王建民/뉴욕 양키스), 

궈홍즈(郭泓志/LA 다저스), 

후진롱(胡金龍/LA 다저스), 

니푸더(倪福德/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천웨이인(陳偉殷/볼티모어 오리올스), 

린저슈엔(林哲瑄/휴스턴 애스트로스),

리쩐창(李振昌/클리블랜드 인디언스)과 오늘 올라온 뤄지아런 선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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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기자 Jesse Sanchez가 트윗으로 시카고 커브스와 타이완 투수 유망주인 쩡런허(曾仁和) 선수(쩡전호는 잘못 발음된 이름으로 오기입니다.)와 총액 162.5만 달러(타이완 달러로 4,863만 위안)에 계약했다고 밝힌 사실이 타이완에 전해졌습니다. 

http://chicago.cubs.mlb.com/news/article.jsp?ymd=20130709&content_id=53267666&vkey=news_chc&c_id=chc

다음은 타이완 자유시보의 니완쥔(倪婉君) 기자의 보도입니다.


쩡런허 선수의 162.5만 달러의 계약은 타이완 출신 선수 사상 네 번째의 고액 계약금으로 첫 번째는 차오진후이(曹錦輝)의 220만 달러, 린즈웨이(林子偉)의 209만 달러, 왕지엔민(王建民)의 201만 달러에 이은 네 번째 고액 계약금을 받은 선수가 되었습니다. 


타이완 싼민고교 에이스 쩡런허의 투구 모습/사진 자유시보 廖耀東기자 촬영


시카고 커브스는 2012년 서울 목동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부터 계속 쩡런허를 주시해왔다고 합니다. 산체스 기자가 말한 바로는 지난 7월 10일 150만 달러의 금액으로 시카고 커브스와 계약을 맺으려고 했지만, 미네소타 트윈스가 쩡런허의 영입 경쟁에 뛰어들면서 최종 162.5만 달러에 계약을 완성했다고 전했습니다. 


작년 후반기에 쩡런허가 국제대회에서 한참 주목받을 시기에는 더 많은 팀들이 관심을 가져 한때 200만 달러의 계약금을 넘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최종적으로 162.5만 달러에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련보도(http://chinesebaseballstory.tistory.com/893)


다만 정식으로 발표하기 전까지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에이전트 보라스 측의 요구에 따라 공표하지 않고 있는데, 산체스 기자가 트윗으로 처음 보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젯밤 가오슝이 본가에 머물고 있던 쩡런허는 외부로부터 축전이 쇄도하고 있지만, 정식 공표가 나지 않았기에 아직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고 있고 정식 발표가 나면 다시 입장 표명을 한다고 합니다. 이번 일은 슈퍼 에이전트 보라스가 직접 나서서 챙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식 발표는 MLB 사무국의 정식 허가가 떨어지고 난 후에 기자회견을 하고 발표를 할 예정입니다.


시카고 커브스는 쩡런허와 계약하면서 국제 신인 계약금으로 이미 510만 달러를 지급하면서 총액 552만 300달러의 국제 신인 계약금 상한선에 거의 근접하게 되었는데, 다음 주에 유망주 엘로이 히메네즈와 28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추진하기로 되어 있어서 상한선을 초과하여 사치세를 물 수가 있기에 트레이드를 통해 한도를 회피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그나저나 시카고 커브스의 아시안 사랑은 정말 대단합니다.)


쩡런허 투수는 2012년 서울 목동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을 상대로 잘 던졌고, 다시 성인팀 무대(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에 처음 등판하여 역시 한국 팀을 상대로 뛰어난 피칭(6이닝 3피안타 4탈삼진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승리투수)을 선보이면서 자국민들에게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인기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제3회 WBC 대표팀에도 전격 선발되면서 조만간 큰 금액을 받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수순을 밟아 가고 있는 유망주 투수였는데, 이번 시카고 커브스와 계약을 맺고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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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인디언스 3A 소속의 타이완 투수인 리쩐창(李振昌)이 메이저 콜업을 받았다는 소식입니다. 아직 공식적으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에 타이완 언론으로부터 흘러나온 소식입니다. 

만약 리쩐창이 공식적으로 승격이 발표된다면 타이완 국적으론 아홉 번째 메이저리거가 됩니다. 

더블A Akron Aeros에서 뛰던 모습/사진 http://www.mlbtw.net

리쩐창 선수는 올 시즌 부상으로 고생을 하면서 마이너리그에서 16게임에 나와서 16.1이닝을 던졌고 7피안타, 25탈삼진, 8사사구를 기록 중입니다. 리쩐창은 시즌 초 타이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컨트롤이 약간 불안함은 있다.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즌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구단에서 계획한대로 착착 훈련 일정을 따라주면서 컨트롤 등에서 점차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비록 어제 열린 마이너 등판에서 동점 홈런을 맞는 등 결과는 조금 안 좋았지만 평균 91~92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최고 94마일)과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던지는 사이드암(쓰리쿼터로도 던지는) 강속구 투수로 조만간 메이저 콜업이 될것이라는 예상을 했는데, 어제 경기 후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해졌습니다.


 

Chen-Chang Lee 2011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서의 투구 모습/동영상 유튜브


 리쩐창은 마이너리그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 선발되었는데 메이저로 콜업이 되면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타이완 선수로는 아홉번째 메이저리거가 탄생하였다. 

리쩐창 선수는 2009년  제2회 WBC 지역예선 한국전에 선발등판하여 1회 사사구 네 개 포함 2:0 만루의 상황에서 한국 타자 이진영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등 부진한 성적을 보이면서 바로 교체되었던 투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는 제구도 안 되었고, 구속도 위력적이지 않았지만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한 노력을 통해 많은 성장을 한 투수입니다. 타이완이 참가한 국제대회에서 쿠바를 상대로 잘 던진 기록때문에 '쿠바킬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 투수입니다.


이로써 타이완 국적의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는 천진펑(陳金鋒/LA 다저스), 차오진후이(曹錦輝/콜로라도록키스), 왕지엔민(王建民/뉴욕 양키스), 궈홍즈(郭泓志/LA 다저스), 후진롱(胡金龍/LA 다저스), 니푸더(倪福德/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천웨이인(陳偉殷/볼티모어 오리올스), 린저슈엔(林哲瑄/휴스턴 애스트로스)과 이번에 승격된 리쩐창(李振昌/클리블랜드 인디언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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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3일 오후12시 업데이트 소식!)

양야오쉰(陽耀勳) 계약 타결. 일본발 뉴스에 따르면 소프트뱅크와 1년 3,500만 엔의 조건으로 계약이 타결되면서 양야오쉰 선수는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여 무사히 이번 시즌을 치르게 되었고, 2013년 시즌이 끝난 후에 미국 MLB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계약 신분은 아니고 만약 MLB 도전에 실패하여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면 다른 팀으론 못가고 소프트뱅크로만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이하 최신 업데이트 소식. 아래는 이전 기사입니다.



타이완 출신의 좌완 투수 양야오쉰
(陽耀勳)의 행동이 일본과 타이완 야구계에 점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현재 양야오쉰은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고 있는데, 소프트뱅크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의 클릭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 때문에 타이완 출신의 전설적인 야구인이자 소프트뱅크 회장인 왕정즈(王貞治:한국명 왕정치, 일본명 오 사다하루)씨가 이를 두고 "양야오쉰의 이런 제멋대로의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라고 발언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양야오쉰은 작년에 1,200만 엔의 연봉을 받았습니다. 올해는 소프트뱅크 측에서 2년간 1억 엔의 계약 조건을 제시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이번에 양의 에이전트가 된 스캇 보라스는 양야오쉰이 천웨이인의 경우처럼 2년 계약이 아닌 이번 시즌 후 미국에 진출할 수 있게 자유계약 선수로 인정해 달라는 조건의 요구를 했습니다. 

양야오쉰 사진/@타이완 야구위키백과

그러나 소프트뱅크로서는 100% 용납할 수 없는 조건으로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바로 일본 진출 시 작성한 계약서 때문입니다. 

중문 계약서에는 올 시즌 후 자유계약 선수가 되는 조항이 적혀 있는데, 일본어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또한, 소프트뱅크 구단은 중문판 계약서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中文的部分有今年球季結束成自由球員,日文的則沒有,日本也不承認這個中文版本.") 

그러나 보라스는 문제가 된 중문 계약서를 근거로 자유계약 선수가 되게 해달라는 협상을 하는 것입니다.(왜 일어 계약서와 중문 계약서의 내용이 다른지 궁금하네요. 그냥 일어 계약만 인정한다는 뜻인데, 사전에 선수 측과 협의가 안 되었는지가 의문입니다. 아무튼, 이번 문제로 보라스는 협상의 계기를 삼았습니다.

계약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쌍방간의 견해차가 커서 현재 양야오쉰은 팀의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않고 후쿠오카에서 자율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보라스 컴퍼니의 타이완 브런치 사장인 쟝지엔쉰(張建勳)씨는 2일 "현재 미국 본사에서 현재 소프트뱅크 측과 적극 협상 중이지만 아직 진전된 모습은 없기에 외부에서 이런 말들이 흘러나오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양야오쉰은 2005년 10월 1일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금 4,000만 엔과 연봉 800만 엔으로 입단 계약을 했습니다. 작년에는 1군 리그에 모두 9게임(7게임 선발 등판)에 나와 2승 3패 1.4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작년 말에는 이대호 선수가 있는 오릭스를 상대로 완봉승도 거두면서 나름 안정적인 활약을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선발라인에서 활약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현재 계약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로 스프링캠프도 참가하지 않아 이번 시즌 활약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정치 씨는 "양야오쉰의 이번 요구조건은 구단으로서는 100% 그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다."는 말과 함께 제멋대로인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을 보이면서 구단과 양야오쉰 선수와의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의 육성부 부장 이시이(石渡) 씨는 "양야오쉰의 에이전트와 정말 연락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강경한 태도는 흐트러지지 않는다."면서 양야오쉰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선수도 지금 상황이 곤혹스럽겠지만, 반드시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여 팀의 일원으로서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주문을 하였습니다. 구단으로서도 양야오쉰과의 계약을 위해 좋은 조건을 보였다면서 작년에 1,200만 엔에 불과했던 그였지만 미래가 보이는 그를 위해 2년간 1억 엔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양야오쉰은 이번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타이완 대표팀에 소집되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2월 12일에 타이완으로 와서 단체 훈련에 참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불거진 계약 문제때문에 그의 상태를 우려한 타이완 야구협회는 2월 4일까지 빨리 타이완으로 돌아와서 대표팀 훈련에 합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현재 4일까지는 올 수 없다는 것이 양야오쉰의 입장입니다. 

현재 타이완의 야구 팬은 일제히 왕정치 씨의 인터뷰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중문 계약서를 인정하지 않는 소프트뱅크의 회장 왕정치 씨에 대한 전례없는 불만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국 야구인 출신으로 일본의 전설적인 존재가 된 왕정치 씨에 대한 비난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타이완 언론도 연일 관련 보도를 내면서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판단하기엔 아직 양야오쉰은 미국 진출을 희망할 정도의 실력을 다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타이완 출신 선배인 천웨이인이 일본 리그를 거쳐 성공적인 미국 진출로 스스로도 가능하지 않나에 대한 기대감과, 또 에이전트를 스캇 보라스로 바꾼 것에서 계약 상의 문제가 불거지게 된 원인같습니다.

앞으로 전개가 어떻게 될지는 조금 더 기다려봐야겠습니다. 뭔가 다른 소식이 들어온다면 바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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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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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고교생인 쩡런허(曾仁和:1994년 10월 3일생) 선수가 한국 팀을 상대로 선발 투수로 깜짝 등장하여 6이닝 3피안타 4탈삼진 무사사구 무실점의 놀라운 투구를 보이면서 승리투수가 되어 타이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메이저리그 일곱 개 구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쩡런허 선수는 185cm/93kg으로 당당한 체구에 약간의 쓰리쿼터형의 폼으로 속구는 2012년 9월 캐나다를 상대로 기록한 153km/h가 최고 구속이고, 변화구로는 싱커와 너클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보유한 배짱이 두둑한 고교생 투수입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던지는 쩡런허 투수


그 전에 한국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목동)에서도 놀라운 활약을 보이면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는데, 성인 대회인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에서도 고교생 신분으로 대표팀에 뽑혔고, 또 한국 팀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를 획득하려는 스카우트의 경쟁이 일면서 몸값이 치솟았습니다. 현재 제시되고 있는 그의 몸값은 계약금 200만 달러(타이완 달러 5,800만 위엔) 수준이라고 합니다. 


타이완의 규정에 따라 올해 6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프로팀과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관심 있는 여러 구단에서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하여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즐거운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작년 중반 고교야구 리그 기간에 쩡런허의 몸값은 이미 일곱 자리를 넘어섰고, 어느 구단은 150만 달러라는 구체적인 금액까지 제시했었습니다만 가까운 지인을 통하여 흘러나온 소식은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메이저 구단의 제시액이 200만 달러를 넘었다고 합니다. 


타이완의 해외파 선수는 차오진후이(曹錦輝)가 220만 달러(약 6,500만 위엔)의 계약금을 얻으면서 최고액이 되었고 두 번째로 왕지엔민(王建民)이 201만 달러(5955만 위엔)로 미국으로 진출했고, 얼마 전 타이완의 고교생 유격수 린즈웨이(林子偉)가 세 번째로 205만 달러의 계약금으로 보스톤 레드삭스와 계약을 했습니다. 이제 쩡런허 선수가 네 번째로 200만 달러 이상의 계약금 대상자로 꼽히면서 앞서 진출한 세 명의 최고 금액을 깨는가에 관심이 몰리고 있습니다. 


타이완 투수로 현재 메이저리거로 활약하고 있는 천웨이인(陳偉殷) 선수가 내놓은 기금으로 운영되는 제1회 천웨이인 장학금(陳偉殷獎學金)은 이번에 모두 54만 위엔(한화 2천만 원)의 총 장학금이 수여되는데, 천웨이인 장학금 특별상(4만 위엔)에 쩡런허 선수가 결정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초등학생 11명, 중학생 3명, 고등학생 7명, 대학생 3명 등과 함께 천웨이인 장학생으로 뽑혀서 수상하게 됩니다.


라이벌인 한국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타이완 국민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쩡런허 투수. 우수한 신체조건을 갖췄고 최고 153km/h의 빠른 공(성장세를 볼 때 구속 증가도 예상됨)과 침착한 성격, 두둑한 배짱까지 겸비한 쩡런허 투수가 아마도 현재의 천웨이인을 이어 다음 타이완의 에이스 계보를 잇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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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 열린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 對 한국전 선발투수로 나와 6이닝동안 단 3피안타를 맞으며 4탈삼진, 무사사구에 무실점으로 승리를 챙긴 고등학생(1994년10월3일생) 쩡런허(曾仁和/싼민고교:三民高中) 투수. 

우투좌타에 185cm/ 93kg의 당당한 체구에 약간의 쓰리쿼터형의 폼으로 최고 시속153km/h의 구속을 던질 수 있고, 변화구로는 싱커와 너클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보유하였습니다.  

지난 9월 한국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에서도 한국전에 등판하여 승리를 따내면서 좋은 성적을 올렸던 타이완의 투수 유망주로 가오슝 출신 선수입니다. 

2012년 9월 5일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전에 등판하여 4.2이닝동안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한국에서도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쩡런허는 이후에도 제3회 WBC 지역예선 타이완대표에도 고등학생 신분으로 선발되면서 조명을 받았고, 이번 제 26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타이완대표팀으로 선발되었습니다. 

WBC에 이어 유일하게 고등학생으로 프로 경험이 없는 선수가 선발되었는데,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 팀을 상대로 잘 던지면서 각 구단의 MLB 스카우트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쩡런허의 등판 경기마다 타이완에 파견된 미국의 구단 스카우트들이 장사진을 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좋은 신체조건과 두둑한 베짱을 가졌는데 그 점이 투수로서 매우 적합한 성격이기도 해서 미래도 무척 밝습니다.

                              쩡런허의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 對 한국전 하일라이트 장면

타이완 국내 대회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고교생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더니 이번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도 호투하면서 MLB 스카우트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쩡런허의 등판 경기마다 타이완에 파견된 미국의 구단 스카우트들이 많이 와서 면밀하게 분석을 합니다.


좋은 신체조건과 두둑한 베짱 등이 투수로서는 아주 좋은 성격이라서 미래도 무척 밝습니다. 머지않아 미국에서 뛰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는 유망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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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의 청소년대표인 18세 소년 린즈웨이(林子偉)가 11일 미국으로 건너가서 신체검사를 받았고 무사히 통과하여 정식으로 보스톤 레드삭스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미국 베이스볼 아메리카지에 의해 소개되었습니다. 계약금은 205만 달러로 타이완 출신으로는 초대형 계약입니다.

작년 11월에 쓴 타이완 유망주 소개 글에서 나온 린즈웨이의 소식은 80만 달러 선에서 미국 진출할 것이라고 예측을 하였지만 1년 후에 몸값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원래는 양키즈 팀과 계약 후 진출하기로 되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지만 1년 후에 결국 보스톤 레드삭스로 진출하였습니다.


[타이완의 유망주 소개] 린즈웨이(林子偉) 몸값은 80만 달러 선.

예전 글 보기는 위의 링크를 눌러주세요.



린즈웨이는 좌타자로 컨트롤이 뛰어나고 컨택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잘 성장해준다면 분명히 3할 이상의 타격 실력을 보일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왜소한 신체조건으로 인한 장타력의 부재는 보완해야 할 약점입니다.

어느 국제 스카우트의 말은 "유격수로도 충분히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고 합니다. 또한, 베이스볼 아메리카지에 따르면 현재 보스톤의 마이너 팀에는 잠재력이 좋은 유격수가 별로 없기에 장차 린즈웨이가 잘 성장을 해 준다면 미래에 주전 유격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린즈웨이가 받은 205만 달러의 계약금은 1999년 차오진후이(曹錦輝)가 받았던 220만 달러에 이은 타이완 역사상 두 번째(3위는 왕지엔민의 201만 달러)로 큰 계약입니다. 2011년 보스톤과 미네소타, 오클랜드, 클리블랜드, 템파베이, 시애틀, 뉴욕 양키스, 아틀란타 브레이브스 등의 관심을 받으면서 경쟁 체제가 갖춰졌고 80만 달러로 평가받던 작년에 비해서 여러 구단의 경쟁 등으로 205만 달러로 몸값이 오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타이완의 유명 야구명문인 가오위엔공상(高苑工商)을 졸업하는 린즈웨이는 1994년 생으로 175cm/73kg의 약간 왜소한 체격의 좌투좌타의 선수로 투수와 유격수로 활약하면서 각종 국내대회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작년부터 해외 스카우트들의 표적이 된 선수입니다. 

IBAF가 선정한 2010년 가장 뛰어난 청소년야구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5월에 미국 MLB 공식 사이트가 발표한 올 시즌 잠재력이 큰 20명의 선수 가운데 18위를 차지한 선수입니다. 2010년 아시아청소년 야구대회에서 5게임에 나와 10안타 2홈런 0.476의 고타율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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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갈매기(Chinesebaseball)약 7분 전보스턴 레드삭스 팀의 타이완 야수 '린져슈엔(林哲瑄)'이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습니다. 1988년생인 린은 우투우타의 183cm/82kg의 외야수자원입니다. 2007년 미국에 진출한 후 5년 만에 'Cody Ross'가 빠진 자리로 메이저에 올라왔습니다.

(Photo by Elsa/Getty Images)























치동갈매기(Chinesebaseball)약 5분 전21일 린져슈엔의 이번 메이저 콜업은 두 번째인데,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7회에 대수비로 나왔고 타석에서의 기회는 없었습니다. 'Cody Ross'의 부상으로 보스톤은 일루수인 'Mauro Gomez'를 트리플 A로 내리고 린을 올렸습니다.








대치동갈매기(Chinesebaseball)약 2분 전2008년 MLB Futures All-Star Game에서 MVP를 탄 린저슈엔은 2011년 트리플 A에서 0.235의 타율과 2홈런, 16도루를 기록하였습니다. 수비율은 0.986을 기록했습니다.






대치동갈매기(Chinesebaseball)약 1분 전이로서 타이완 출신 메이저리거는 천진펑(陳金鋒), 차오진후이(曹錦輝), 왕지엔민(王建民),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니푸더(倪福德), 천웨이인(陳偉殷), 그리고 린저슈엔까지 모두 여덟 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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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하오(林羿豪)선수

1991년 1월 생(현 21세)으로 타이완의 첨단 기술의 중심인 신주시(新竹市)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각종 야구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청소년 대회 때는 투수 부문의 상을 휩쓸면서 뛰어난 유망주로서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선수입니다.

타이중 시위엔(西苑) 중학교 3학년 때 무려 149km/h를 던져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중학생으로 말이죠. 그래서 스카우트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폼은 정통파 오버스로우가 아닌 약간 쓰리쿼터 형으로 던집니다.

 그래서 별명이 왕지엔민 2세입니다. 아무튼 중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니 당연히 외국의 스카우터들에게도 주목을 받았고, 타이완의 유망주를 입도선매를 한다라는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도 결국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유망주로 선점을 하여서 2006년 청소년 야구대회에 참가하러 일본으로 간 후에 현지에서 요미우리 육성군 신분으로 거인군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계약금은 10만 달러이고, 각종 관련 비용 제공과 현지에서 대학까지 학업을 계속 할 수 있게 구단에서 뒤를 전부 돌봐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습니다. 이번 케이스가 타이완에서 중학생이 외국 야구 팀으로 스카웃 된 최초의 기록입니다.)
 

[##_http://chinesebaseballstory.tistory.com/script/powerEditor/pages/1C%7Ccfile26.uf@1859D80F4BBD487E4EC192.jpg%7Cwidth=%22640%22%20height=%22426%22%20alt=%22%22%20filename=%22cfile26.uf@1859D80F4BBD487E4EC192.jpg%22%20filemime=%22%22%7C%EB%A6%B0%EC%9D%B4%ED%95%98%EC%98%A4(%E6%9E%97%E7%BE%BF%E8%B1%AA)%20%EC%84%A0%EC%88%98%EC%9D%98%20%EC%97%AD%ED%88%AC/%EC%82%AC%EC%A7%84(miyazaki-city-tourism.com)_##]
이 선수를 데려가기 위하여 요미우리 스카우터가 네 명이나 달라붙을 정도로 유망주로서의 인정을 받았고, 구단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극진한 대우를 하면서 결국 요미우리가 린이하오를 획득을 하였지요. 지금은 21세가 되었는데, 키는 188cm에 몸무게는 85kg으로 아주 건장하게 성장을 하였고 구속도 최고 151km/h를 던지고 있습니다.

쓰리쿼터형 투수로 특이하게도 배번 106번을 달고 있다가 2010년 7월부터는 96번을 달고 있습니다. 린이하오 투수는 앞으로도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선수로서 구속도 지금보다 3~5km/h정도 더 빨라지리라 기대를 하는 선수입니다. 구종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변화구로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과 슈트를 던지는 우투우타의 선수입니다.



                  2011년 MLB올스타 타이완 친선전에 등판한 린이하오의 투구 모습
 
국가대표 경력은 2010년 제 17회 대륙간컵 야구대회에서 처음으로 성인대표로 선발되었고, 그 해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도 타이완 대표로 참가하였습니다.

11월 13일에 열린 한국 전에서 2이닝 동안 등판하여 5 피안타(클리블랜드 메이져리거 추신수 선수로부터 2 피홈런을 맞음)를 맞고 4실점하면서 패전 투수가 되었습니다만 앞으로가 더 유망한 투수라서 다음에 한국과 만나면 또 얼마나 성장하여 어떻게 던질지 아무도 모르겠네요.



올해 3월 10일에 일본 동북 대지진 위로자선 경기에서도 타이완 대표로 참가하여 도쿄 돔에 서게 되었습니다. 뭐 요미우리 홈구장이니 익숙하겠죠.

작년에 요미우리 2군에서 시작을 하였습니다. 연속 11게임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2군에서 7차례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3승 4패 16세이브. 3.0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호시탐탐 1군 진입을 노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더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꼭 1군 무대에 올라 던지는 모습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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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e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천웨이인(陳偉殷),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그렇습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린커지엔(林克謙)

1986년 생으로 174cm/77kg의 투수로서는 조금 왜소한 체격을 가진 우투우타의 정통파 투수입니다. 원래 유격수 출신이었다가 투수로 전향을 한 선수입니다.

본인 최고 구속(평속은 138~143km/h)은 148km/h로 미국 전지훈련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싱커와 포심, 슬라이더(125~132km/h대)와 체인지업, 그리고 스플리터를 던집니다. 이 선수는 타이완 국립체대 타오위엔 교구를 나와 2008년 싱농불스에 의해 타이완 프로야구 리그 전체 1순위 1지명으로 뽑힌 유망주 출신 선수입니다.

                                  린커지엔 선수의 투구 모습/ 사진 肯米(kenmy)


이 선수도 타이완 원주민 출신의 야구 선수로 타이아(
泰雅)족(아버지가 타이야족이고, 어머니가 아메이족) 원주민입니다. (타이완에는 원주민 출신의 운동 선수가 많습니다. 운동 능력이 탁월하고 정신이 강한 장점이 있지요.)

2008년에 계약금 350만 위엔(1억 3천1백만 원:본인 희망액은 450만 위엔이었습니다만 결국 350만 위엔으로 합의되었습니다.)으로 입단하여 2010년 18만 위엔(670만 원)의 월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프로에 들어오기 전에 스타급 아마추어 선수로 이름을 떨치면서 본인 몸값을 띄웠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꾸준히 참가하면서 좋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성인 대표팀은 2005년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꾸준히 뽑혀오고 있습니다만 메이저 대회로는 2009년 제2회 WBC에 뽑힌 것이 유일합니다. 아직 전도가 매우 유망한 투수니까 앞으로도 계속 국제 대회에서 만날 수 있는 투수라고 봅니다.

이 린커지엔 선수는 팀에서도 매우 중시하는 선수입니다. 그래서 같은 팀의 정홍다(
鄭達鴻), 린치웨이(林其緯), 린궈민(林國民), 천즈웨이(陳志偉) 등과 함께 일본 세이부 라이언스 팀의 가을 훈련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린커지엔 선수는 강력한 구위를 바탕으로 타자를 압도하는 유형의 투수는 아닙니다. 다양하고 정확한 변화구 구사를 바탕으로 타이밍을 뺏는 느낌의 투수입니다. 2009년 리그에서 승만큼 패도 많았습니다. 평균자책도 4점대 초반이었고 피안타도 꽤 많은 유형의 투수입니다. 그러나 이 선수는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구가 되거나 낙폭이 심한 변화구를 사용하여 위기를 넘기곤 했습니다.

연도
선발
구원
완투
완봉
사구

중계
세이브
홀드
이닝
평균자책
2009 興農 24 4 0 0 0 10 7 0 1 0 145.2 4.016
2011 興農 18 9 0 0 0 3 8 1 0 1 99.0 3.545
합계 -- 42 13 0 0 0 13 15 1 1 1 244.2 3.825
린커지엔의 리그에서의 성적(2010년 토미 존 수술로 제외)

2009년 주목을 받고 등장하여 부끄럽지 않은 10승을 올리면서 그 해 투수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였습니다만 2010년 토미 존 수술을 받아 한 해를 쉬었습니다. 그 후 재활을 거쳐 2011년 3월부터 중계 투수로 잠깐 올라오다 4월 10일부터 본격적으로 선발로 전환했습니다만 아직 수술의 후유증이 계속되는 느낌입니다. 뭐 속구 구속이 2009년보다 평균 3~5km/h가 줄었기에 구위도 같이 떨어졌고 그래서 주무기인 체인지업과 스플리터의 위력도 반감된 느낌입니다. 뭐 재활은 계속되니까 내년에 더 기대가 되는 투수입니다.

린커지엔의 2009년과 2011년 투구영상 참조

                     
(2009년 9월 5K와 수비모습을 보여 준 린커지엔의 영상)


                   (2011년 8월21일 리그에서 선발로 나온 린커지엔의 영상)
 
그래도, 2011년은 잘 던져주었습니다만 리그에서 타자들의 도움이 조금 모자라 승보다는 패가 훨씬 많아진 한 해이기도 하였습니다. 평균 자책은 3.83 수준으로 꽤 준수한데 비해 패가 좀 많았습니다. 피안타도 2009년에는 160개였는데, 올해는 현재까지 100개 정도밖에 안 되었고, 사사구도 2009년에는 52개였는데 올해는 35개이고 또, 자책점도 2009년(65점)에 비해 거의 25점 가량이 낮은데도 패는 그때보다 1패가 많은 8패입니다.


물론 싱농 불스가 올 시즌 외국인 선수(타자)를 뽑지 않았던 탓도 있습니다. FA가 되는 선수를 데려오기 위한 자금 마련과 본토 선수의 처우 개선을 위하여 기도 하고 또, 경영상의 어려움도 있기에 외국인 선수를 뽑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타자들의 도움이 모자랐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도 본인에게는 조금 아쉬운 해가 아닐 수 없네요.

시즌 후 동계훈련을 착실히 받아 예년의 속구 구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리지만,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 중의 한 명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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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갈매기

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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