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난 리더(立德)대학 야구부 선수인 리지아롱(李嘉榮)이 필라델피아와 계약을 맺을 것 같다고 에이전트가 발표했습니다. 이 선수는 올 시즌 협회배 야구대회에서 홈런왕을 차지한 선수로서 미국의 5~6개 팀에서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올시즌 초 3월 즈음에 미국으로 출국하여 계약을 마무리 짓는다고 합니다. 리더 대학야구부로서는 첫 번째로 미국으로 진출하는 선수가 되어서 학교 측에서도 자랑이 대단합니다.

"어릴 때의 꿈이었던 미국 진출이 이루어져서 정말 영광이다. 열심히 하겠다. 미국에 도착한 후 평상심을 가지고 왕지엔민과 같은 야구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는 포부를 취재나온 기자에게 밝혔습니다.

리지아롱 선수는 1988년 서울 올림픽둥이(^^;;. 타이완과는 상관없지만 1988년생을 표현했습니다.)로 태어났습니다. 180cm, 78kg으로 야구선수로 치면 결코 큰 체격은 아닙니다. 우투우타에 외야수(주로 중견수)를 맡고 있습니다. 2008년과 2009년에 통이 라이온즈 2군 팀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입니다.

당시 총 72타석에 나와서 24안타로 타율 0.333을 올렸고, 13타점을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수비에 재능이 있고 순간적인 반응이 빠르며 어깨가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베팅은 컨택 능력과 중급 이상의 파워를 겸비했다는 에이전트의 말입니다.(에이전트의 말이니 뭐 걸러 들으세요.)

계약금은 10~15만 달러 선일 것 같다고 합니다. 계약금 규모로 봐서 구단으로서는 저렴한 비용을 들여 터지면 장땡이요, 안터져도 그만인 선수급이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학비 포함해서 연봉 10만 달러정도 될 것 같네요.

(우측 리지아롱 사진:음~매우 야물딱지게 생긴 선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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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푸린 선수/사진 Vic

왕지엔민의 뒤를 이을 대형 선수가 양키즈에 진출한다. 현재 18세(1991년 1월생)의 타이완 체육원의 우투우타 3루수 궈푸린(郭阜林)이 그 주인공입니다.

내년에 양키즈와 계약을 체결하여 왕지엔민의 후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이완 역사상 두 번째로 MLB 양키즈의 멤버가 되는 것입니다.

키 183cm, 78kg으로 타이완의 야구명문인 난잉상공(南英商工)시절 스타성을 감출 수 없었던 궈푸린을 양키즈 스카우터가 2년 동안 주욱 관찰을 해왔다고 합니다. 

타격이 정확하고 유연한 수비와 좋은 어깨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에 동년배들 중에 가장 뛰어난 잠재력을 인정받아 30만 달러 정도의 계약금(학비와 잡비 등을 지원받는 조건 포함)으로 미국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올 시즌 위산(玉山盃)배 전국 청소년 야구선수권 대회에서 타격왕(0.485)과 타점왕(16점)을 차지하였던 선수이고 올해 열린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한국 목동구장에서 열린)에서 주전 3루수와 4번타자로 활약한 선수입니다.(동영상보기)

양키즈의 선수 수급 전략은 오직 최고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대부분 중남미의 선수들이 미국으로 많이 진출을 하였지만 점차 그 시장이 확대되면서 최근 4~5년 부터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구단들이 많아졌습니다. 한 두명에 그치던 지난 아시아 선수들의 미국 진출은 확실히 4~5년 전부터 그 수가 십 여명을 넘어섰고 한국이나 타이완, 일본 등의 아시아 시장 유망주들이 대거 미국으로 진출하는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궈푸린 선수/사진 嘟嘟

타이완에서는 유망주들이 대거 미국으로 진출하면서 연간 20~40명의 고등학교 선수들이 꿈을 찾아 미국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이번 케이스도 다들 그렇듯 위법이 아닌 편법을 써서 미국으로 진출하는 케이스입니다. 유학생 신분 자격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야구를 병행하는 방법이지요.

추정 계약금은 30만 달러로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일단 학비와 각종 잡비 등을 제공하는 조건인데 연간 십 몇 만 달러 정도 계산되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계약금 20만 달러에 연봉으로 십 만불 정도라고 보면 되겠네요.

아무튼 미국으로의 진출은 타이완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꿈이기에 어떤 방법으로든 나간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게다가 궈푸린 선수는 타이완의 동급 선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 진출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요.

이제 이 선수는 루키리그에서 유망주로서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 양키즈에는 두 명의 중국 국적 선수가 있었습니다. 리유카이(劉凱)와 쟝쩐왕(張振旺)선수인데요 이 선수들은 장차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하여 양키즈가 전략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키우던 선수들이었지요.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실력이 기대만큼 미치지 못하여 중국으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그래서 양키즈로서는 왕지엔민도 넌텐더로 내보냈기에 이제 이 궈푸린 선수가 유일한 아시아권 선수(X)로 있게 되겠습니다. (댓글로 지적해주신 클레멘테님 감사합니다. 하도 미미한 활약을 보인탓에 마치 없는 선수인 듯 했습니다. 이가와!!! 그러길래 좀 잘하지 그랬냐...앞으로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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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타이완 언론에 비친 박찬호 선수의 내용을 포함하여 궈홍즈 선수의 기사를 번역 해 보았습니다. 역시 샤오바오샹(蕭保祥)기자는 한국통 답게 많은 내용으로 자세히 소개하였습니다.

http://sports.yam.com/view/mkphotopage.php/20091016686725



MLB 내셔널리그 챔피언 시리즈에서 타이완의 좌완 궈홍즈가 오늘 등판을 하였습니다. 1이닝동안 무실점에 2탈삼진을 잡아내면서 막아내어 뛰어난 활약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경기는 아깝게도 다저스가 필리즈에 6:8로 지면서 시리즈 첫 판을 내주었습니다.

美國職棒季後賽進入聯盟冠軍賽階段,台灣左投郭泓志今天在國聯冠軍賽登板中繼,1局投球無失分表現精采,還投出2次三振,可惜洛杉磯道奇隊還是以6比8輸給費城費城人隊。

내셔널리그 첫 경기에서 궈홍즈는 1점을 뒤지고 있던 7회 초에 등판하여 먼저 미구엘 카이로를 삼진으로 잡고, 지미 롤린즈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서 쎼인 빅토리노를 내야 땅볼로 잡아내었고, 다시 맞이한 강타자 체이스 어틀리의 방망이는 허공을 가르면서 위기를 넘겼습니다.  

國聯冠軍賽首戰,郭泓志在7局上登板,當時道奇隊落後1分。郭泓志先K掉代打卡羅 (Miguel Cairo )後,被羅林茲 (Jimmy Rollins)敲出安打。隨後郭泓志穩定心神,先讓維多里諾 (Shane Victorino)擊出內野滾地球出局,再以速球讓強棒阿特列 (Chase Utley)揮空,安穩度過這半局。

궈홍즈는 중간계투로 나와 1이닝동안 17개의 공을 던졌는데, 그 중 11개의 스트라익이 들어왔습니다. 1피안타, 2탈삼진을 잡아내면서 무실점으로 막아 본인의 디비전과 챔피언시리즈 도합 두 번째 등판을 마쳤습니다.

郭泓志中繼1局用17球,其中有11個好球,被擊出1支安打,投出 2次三振。這是郭泓志在季後賽第二度登板,都是無失分收場。

한국의 OBS방송화면 캡쳐/박찬호 등판 후 투구모습


다저스의 타선은 5회까지 1점을 뒤지고 있었는데, 7회 말 안드레 이디어가 먼저 2루타를 치고 맞은 좋은 기회에서 필리즈 팀은 급히 한국인 노장 투수인 박찬호 선수로 교체했고 그가 연속으로 세 명의 중심 타자를 틀어 막으면서 리드를 잘 지켜내었습니다. 

道奇打完5局還以1分落後,7局下伊瑟爾(Andre Ethier)率先二壘打,開啟大好追分機會,費城人緊急換上韓國老將朴贊浩,他連續解決3名強打,硬是讓費城人保持領先。

필리즈는 그 후 8회 공격에서 라울 이바네즈의 뜨리런 홈런으로 리드를 4점 차로 크게 앞서나갔습니다. 그 후 8회 말에서 다져스의 반격으로 다시 두 점을 따라가서 긴장되는 흐름으로 따라갔고, 또 최후에 마무리 투수 브래드 릿지를 공략해 안타로 주자가 출루를 했지만 이내 병살타로 기세가 막혀 결국 지고 말았습니다. 이로서 필리즈는 7전 4선승제의 시리즈 첫 판을 가져갔습니다.

費城人8局上靠著伊巴尼斯(Raul Ibanez)揮出3分全壘打,將領先差距拉大到4分。8局下半道奇也追趕2分,讓場面一度緊張。最後半局費城人終結者李吉(Brad Lidge)靠著隊友策動關鍵雙殺,費城人搶下7戰4勝制的首勝。

두 팀은 내일 열리는 2차전에서 각각 다저스는 빈센트 파디야와 필리즈는 신의 우완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선발로 예고하였습니다.

兩隊明天第二戰還是在洛杉磯進行,道奇推出帕迪拉(Vicente Padilla)登板,費城人則以昔日「上帝右手」馬丁尼茲(Pedro Martinez)掛帥對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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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져스와 필리즈의 챔피언시리즈는 타이완, 일본, 한국 강투수들의 접전.

道奇對戰費城人 台日韓強投交鋒

http://sports.yam.com/cna/sports/200910/20091015652472.html

(중앙사 기자 샤오바오샹 15일 보도) 미국 프로야구 계절 시리즈(챔피언시리즈)가 내일 다저스 구장에서 열린다. 내셔널리그 결승전인 다저스와 필리즈에는 각각 아시아 3개국의 관심이 몰려있다. 타이완의 야구 팬들은 궈홍즈에 대한 관심이, 구로다 선수와 박찬호 선수에 대한 관심은 각각 일본과 한국의 야구팬들이 주목을 할 것이다. 또한 아시아의 미디어들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中央社記者蕭保祥台北15日綜合報導)美國職棒季後賽明天起進入聯盟冠軍系列賽,國家聯盟洛杉磯道奇與費城費城人組合率先登場。台灣球迷最關心郭泓志表現,黑田博樹與朴贊浩的發揮,也是亞洲媒體關心重點。

다저스의 타이완 좌완 궈홍즈는 올 시즌 35게임에 구원으로 나와서 3.00의 방어율을 보였고, 30이닝에서 모두 32차례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피안타율 1.98로 조지 쉐릴과 조나단 브룩스턴과 함께 든든한 불펜을 이루었다.

道奇隊的台灣左投郭泓志今年登板35場全部是後援,防禦率3.00,主投30局投出32次三振,被打擊率只有1成98,與薛瑞爾(George Sherrill)、布拉克斯頓(Jonathan Broxton)組成道奇堅強的牛棚。


또 같은 효과를 가져온 일본인 투수 구로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시리즈의 명단에 오르면서 아마도 제 3선발을 맡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구로다는 전에 등쪽에 부상을 입었었는데 조 토레 감독은 먼저 디비전시리즈에서는 휴식을 주어 쉬게했다. 타력이 강한 필리즈를 상대로 구로다의 투구의 성패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同樣效力道奇的日本投手黑田博樹,國聯冠軍賽則是如願進入名單,預計擔任第 3戰先發。黑田博樹先前因為背部不舒服,總教練托瑞(Joe Torre) 首輪季後賽讓他休息。國聯冠軍賽,道奇若要闖過打擊凶悍的費城人,黑田的投球表現就相當重要。

필리즈 팀에는 현재 36세의 한국 노장투수인 박찬호가 있다. 이미 메이져리그 100승을 돌파하였고, 지난 WBC에는 출전하지 않았던 그는 이번에 대퇴부쪽에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디비젼시리즈에서는 빠졌었다. 

費城人隊的現年36歲韓國老將朴贊浩,即使已經生涯百勝,就是沒打過世界大賽。朴贊浩因為大腿拉傷,缺席首輪季後賽。

박찬호는 작년 다저스 팀에서 매우 훌륭한 표현을 보였던 그는 올해 필리즈와 자유계약을 맺어 옮겨 왔다. 그러나 다시 이렇게 빨리 이번 시리즈에서 다저스와 만날 줄을 몰랐을 것이다. 필리즈 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의 불펜은 결코 안정적이지 못했기에, 많은 경험을 가진 박찬호의 컴백으로 구단으로서는 그가 불펜을 안정시켜주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朴贊浩去年在道奇表現不錯後,他今年轉戰到費城人,沒想到卻要與昔日東家交手。費城人首輪在牛棚並不算穩定,老經驗的朴贊浩歸隊,球隊期待他能有穩定作用。

내셔널리그 챔피언시리즈는 내일 개막되며, 다저스는 클레이튼 커쇼를 선발로, 필리즈는 콜 하멜즈로 맞불을 놓는다.

國聯冠軍系列賽明天開戰,首戰道奇推出柯蕭(Clayton Kershaw)先發,費城人則是以漢默斯(ColeHamels)應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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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부상으로 2군에서 조정 중인 린언위(林恩宇)가 몇 일전(지난 7월달 소식입니다.)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번 년도에 처음으로 2군 경기에 등판하여 최고 시속 148km의 빠른 볼을 던졌다고 전해왔습니다.

린언위는 '정황이 괜찮은 편이다. 비록 오랫동안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근력이나 제구력 등의 감각은 좋은 편이다. 다만 구속은 좀 떨어진 것 같은데 실력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조정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동안 구속이 좀 안나왔지만 오늘 구속을 보니 희망이 다시 생긴다. 그래서 오늘 좀 흥분되었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린언위는 오늘 라쿠텐과 요미우리, 세이부 등의 2군 연합 팀으로 구성하여 지바 롯데 2군과의 경기에서 중 컨디션 점검 차 5회에 올라와 1이닝을 던지며 2피안타(투런홈런 포함)를 맞고 2실점을 하였다.

두 개의 피안타 중에 처음 공은 직구이고 홈런 맞은 공은 체인지업이었는데, 린언위는 부상 회복 후에 불펜에서 조련한 공의 위력이 아직은 부족하다. 하지만 투구 후의 흥분감은 경기내내 지속되었다. 그동안 많은 시간동안 게임을 뛰지못했는데 그 갈증이 어느정도 해소된 느낌이다.' 라면서 기뻐했습니다.

린언위는 원래 7월 29일 경기에 나가기로 되었지만 비가내려 우천취소로 출전을 못하였다. 2군 관계자에 따르면 다음 주 11일, 12일쯤 정식으로 2군에서 등판하게 된다라고 밝혔습니다.

어깨부상으로 많은 시간동안 구단에서 마련한 훈련 스케쥴에 따라 훈련을 해온 그는 같은 부상을 당한 팀 동료와 함께 매주 1~2회 특수안마(1회비용 11000엔)를 계속 받아왔는데 린언위는 이 안마를 "효과가 괜찮다. 어깨가 가벼워지고, 힘을 받을 수 있다. 비록 적은 돈은 아니지만 부활을 위해서 반드시 같이 병행한 훈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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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메트로돔에서 열린 AL 타이브레이크 결정전 7회 올랜도 카브레라에게 투런홈런을 맞은4:3으로 뒤진 상황에서 제이슨 쿠벨(Jason Kubel)을 막기위한 원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좌완 타이완 투수 니푸더의 투구모습입니다.



짧은 영상입니다만 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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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e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천웨이인(陳偉殷),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천웨이인(陳偉殷/ Chen Wei-Yin)

                                          (국가대표 팀에서 투구하는 모습)

정확한 발음의 이름은 천웨이인 입니다. 첸웨인, 천웨인 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게 부르는 것이 좋겠죠? 1985년 7월생으로 현재 24세입니다. 182cm/80kg으로 운동선수로는 크지도 작지도 않는 적당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좌투와 좌/우타석에서 스위치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아무래도 좌타가 더 편하겠네요. 최고구속은 153km/h를 던졌는데, 평균 속도는 145mk/h를 던졌습니다. 자로 잰듯한 직구를 주무기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스플리터과 커브, 그리고 커터를 던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전부 다 던지지는 않고 손에 익은 몇 개만 던지고 있습니다.

타이완 남부 가오슝현에서 태어난 천웨이인은 국립체대를 거쳐 2003년 일본 쥬니치 드레곤즈와 자유계약을 맺어 도일하였습니다. 계약금은 85만 달러에 당시 1200만 엔의 연봉으로(2009년 현재 연봉 3500만 엔)을 받고 진출하였습니다. [학력은 가오슝의 빠과소학교(八卦國小)를 거쳐 런우중학교(仁武國中), 치아오토우중학교(橋頭國中)를 거쳐 가오위엔공상(高苑工商), 그리고 타이베이현 아래의 타오위엔현(桃園縣)에 있는 국립체대(國立體院)야구부를 나왔습니다.]

이 선수는 고등학교(가오위엔공상/高苑工商) 시절부터 학교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면서 미국으로 진출하려는 꿈을 먼저 가졌지만 2003년 야구월드컵 대회 후에 일본구단의 적극적인 영입 정책으로 일본으로 턴을 하여 최초로 학생 신분으로 일본 프로야구 연맹에 진출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국가대표 경력

2001년 제 10회 IBA 세계 청소년(AAA)야구 선수권대회 대표
2002년 제 20회 IBA 세계 청소년(AA)야구 선수권대회 대표
2002년 제 15회 대륙간컵 야구대회 대표
2003년 제 05회 아시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대표
2003년 제 35회 야구 월드컵대회 성인팀 대표
2004년 제 28회 아테네 올림픽 야구대표(군면제혜택)
2008년 제 29회 베이징 올림픽 야구대표

아무튼 일본으로 건너가서 주로 2군에서 육성되면서 기초를 다지고, 주로 중계로 많이 등판하곤 했습니다. 후에 쥬니치에서는 천웨이인을 이마나카 신지(今中慎二)와 같은 투수로 육성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웨이인의 별명도 '이마나카 2세', 혹은 '이마나카 2호기'랍니다. 어쨌든 2군에서의 육성 과정을 거쳐서 그 해 8월에 아테네 올림픽 대표로 소집이 되면서 잠시 1군에 등록이 되었지만 게임에 나가지는 않았지요.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모습


그 후에 2005년 리그가 시작되고 1군에 합류하면서 4월 3일 1군에서 첫 등판을 하게됩니다. 요코하마 팀을 상대로 중계 투수로 나와서 2 이닝동안 5 피안타 4 사사구와 3 삼진을 하며 4 자책점을 기록하였습니다. 형편없는 성적이었죠. 그래서 다시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지요. 후에 다시 6월 27일에 돌아와서도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여 패전 처리용으로 주로 뛰게 됩니다. 하지만 8월 7일에는 연장 11회에 나와서 처음으로 세이브를 기록하는 기쁨도 맛보게 되지요.

하지만 그 후 2006년에 시련이 닥쳐옵니다. 왼쪽 팔꿈치가 아파서 진단을 받았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해 말에 11월14일 나고야의 병원에서 세 시간에 걸친 팔꿈치 수술과 인대 접합술을 받고 요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쥬니치 구단에서는 일단 그 때까지의 선수 계약을 말소시키고 다시 육성군으로 갱신하여 3년 내에는 천웨이인 선수를 해고할 수 없게끔 조항을 삽입하는 계약을 맺습니다. 장래성을 보고 구단에서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 한 것이지요.

그럼으로 천 선수는 안심하고 푸욱 요양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구단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재활 과정을 거쳐서 다시 예전의 구속을 회복(?), 아니 조금 더 빨라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타이완에서 최고 구속이 150km였는데(평속 142km/h정도), 인대 접합술을 받고 난 후에 회복을 잘 해서 오히려 본인 최고 구속은 153km(2009년 8월에 한신 타이거즈를 상대로 기록함), 평속은 145km/h로 빨라지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구속과 구위가 예전에 비해 증가한 상태로 맞이한 2008년 시즌 4월 2일에 요미우리를 상대로 한 시리즈에서 선발 야마모토 마사(山本昌/Yamamoto Masa)를 구원 등판하여 5.2이닝동안 19 타자를 맞이하여 1 탈삼진에 2 사사구에 무실점으로 잘 막아내면서 프로 역사상 자신의 첫 승을 기록하게 됩니다.(경기 후에 세이브를 따낸 이와세가 그 첫 승 공을 선물했다고 하네요.)

그 후에 계속 1군에서 중계투수진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다가 6월 중순에 주니치의 선발진들이 2군에 떨어지거나 일본 대표팀 합류를 위해 빠져나가서 선발진으로 합류를 하게되었고, 7월 16일에 드디어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본인의 첫 선발승을 기록하고, 다시 9월에는 본인의 첫 완봉승을 거두게 되면서 쥬니치의 1군 선발진으로서 탄탄대로(연봉계약도 조정되어서 600만엔에서 3500만엔으로 2008년 당시 연봉상승율은 리그 최상급의 상승을 함)를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9월8일 대 한신타이거즈를 상대로 2안타 완봉승 달성 영상)

이 선수는 타석에서도 스위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래저래 화제에 올랐습니다. 2009년에 들어서 그 기세가 더욱 위엄을 떨치면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로 잰듯, 쭉쭉 뻗는 듯한 직구가 위력을 떨치면서 덩달아 슬라이더와 체인지업도 그 위력이 배가되면서 현재 8승 3패로 1.45의 방어율로 센트럴리그에서 방어율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총 19 게임 등판에 완투와 완봉이 모두 9차례나 될 정도로 이닝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웨이인의 일본에서의 성적표)

현재 들리는 소식(일본의 스포츠호치 보도)에 의하면 현재 미국 MLB의 최소 15개 구단이 천웨이인 선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타이완의 출처는 링크:출처) 이미 화이트삭스의 경우는 극동 지구의 스카우터(Steve Wilson)를 파견하여 면밀히 관찰하고 있는 중이고,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미국으로 가지 않겠나하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제가 예상하기로는 아마도 이 선수의 꿈이 메이져리거이니 어떻게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때 가지 않겠냐는 생각입니다.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있고, 쥬니치에서는 포스팅이든 뭐든 아예 안보내려 하겠지만 뭐 앞 일은 모르는 법이라서요...^^

쥬니치에서의 모습

쥬니치의 전설적인 투수로 통산 200승을 거둔 스기시타 시게루(杉下茂/sugisita sigeru) 전 단임코치는 몇 년전 스프링캠프에서 천웨이인을 두고 자신의 투구 폼에 대한 적극적인 학습 의지를 먼저 밝히는 모습을 볼 때 대단한 투수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스기시타 전 코치는 본인이 선수로 뛰던 시절인 1954년에 방어율왕을 하면서 세운 기록이 1.39인데(이 기록이 쥬니치의 통산 최고 기록입니다.)아마 이 기록도 천웨이인 선수가 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현재 타이완 출신의 선수로는 최고의 실력과 구위를 자랑하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입니다.

천웨이인 선수는 이번 태풍 모라꼿으로 엄청난 재해를 입은 곳에 타이완 돈으로 250만 위엔(한국 돈 약 9천만원)의 성금을 기부하면서 여러모로 훈훈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망이 매우 뛰어난 선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부상의 전력이 그를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타이완 대표로 참가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한국의 팬들까지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제 생각은 아무래도 참가하기 어렵지 않나입니다. 아마도 평생의 꿈인 메이져리거가 되기 위하여 노력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update: 2011년 말 미국 볼티모어와 입단계약을 하여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2012년 12승을 올리면서 인상적인 활약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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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e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천웨이인(陳偉殷),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대만의 야구선수들 (8) 천용지(陳鏞基) 편

             (제1회 WBC 중국전 만루홈런으로 표지를 장식한 천용지(陳鏞基)/WBC 홈페이지 캡쳐

1983년 7월 13일에 타이완 타이동(台東)현에서 태어난 천용지(陳鏞基)는 현재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산하 마이너리그(트리플 A)에서 뛰고 있으며, 후진롱(胡金龍)과 함께 부동의 타이완 국가대표 주전 내야수로 활약하는 선수입니다. 우투우타에 180cm/85kg으로 내야수로는 빼어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쟝타이산(張泰山)과 같은 원주민 아미족(阿美族) 출신입니다.

타이완 국립체육대학을 나와서 2004년에 시애틀과 계약금 25만 달러(계약금이 아주 헐값입니다. 당시의 타이완 야구선수들은 제도적인 허점에 의하여 미국이나 일본으로 많이 나갔습니다. 한 번에 40여 명씩 미국이나 일본으로 나간 적도 있습니다.)에 자유계약을 맺어 도미한 케이스입니다.

타이동(台東)현의 쟝빈(長濱)국민학교와 타이위엔(泰源)중학, 그리고 가오슝현의 가오위엔공상(高苑工商)을 거쳐서 국립체육대학(타이완맥주팀:台灣啤酒) 야구부에 진학을 하였습니다. 항상 그렇듯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각종 대회에 타이완 대표로 참가하였는데요, 이 선수의 국가대표 경력 사항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국가대표 경력사항 일람

2001년  제4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2002년  제21회 21st HHW 2002 Sponsored by Municipality of Haarlem
           제15회 대륙간컵 대회
           1회 세계대학생야구선수권대회
2003년  제23회 The Grand Forks International Baseball Tournament(캐나다)
           제10회 네덜란드포트배 대회
           제35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제2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2004년  제28회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야구대표(병역면제혜택)
2005년  제36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2006년  제0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
           제16회 대륙간컵야구대회 대표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

                                (2004년 시애틀과 계약 직후의 사진/출처는 사진에 표기)

어릴적 쟝빈 국민학교 재학 당시 야구부에서 일본의 어느 학교와 교류전을 펼쳤는데, 당시의 대회에서 매우 인상적이고 특출한 활약을 하게 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중, 고등학교[타이위엔(泰源)중학, 가오위엔공상(高苑工商)]야구부에서 청소년 대표팀으로 발탁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야구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만 대표팀에서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도망을 가서 한동안 야구를 방치하면서 인생의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네 목사님과 부모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간의 내용(문제를 일으키고 도망을 가서 방황하던[개인적인 사정이라서 자세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대표 팀 친구와의 갈등과 대표 팀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을 일절 묻지않고 넘어가겠다라는 회유책으로 다시 야구를 시작합니다.

그 후에 여러 대회에서 다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면서 탄탄대로를 달리게 됩니다. 싱농불스배 전국 청소년 야구대회와 왕정치배 전국 야구선수권대회 등의 국내 대회에서 우수한 활약을 하여 국립 타이완체대 야구부(國立體院棒球隊)로 진학을 하게 되지요. 그 후에 거의 모든 국제 대회(위의 경력사항을 참조하세요.)에서 후진롱(胡金龍)과 함께 타이완을 대표하는 (진용:金鏞)라인(호룡-진기)으로 대표되면서 멀티 내야수(2루와 3루, 유격수까지를 다 볼 수 있는)로서 활약하게 되었고,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를 필요로 하는 시애틀의 관심을 받아서 2004년 1월 마이너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2006년 퓨처스게임 대표로 출전한 모습/후진롱(좌)과 함께 출전한 모습)

그 후에 2004년 싱글 A에서는 도루 25개로 도루왕을, 2005년 36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와 2006년 대륙간컵 대회에서 대회 최고 2루수로 뽑히면서 능력을 뽐내었고, 제 1회 WBC에서는 중국 팀을 상대로 대회 첫 만루 홈런을 뽑아내는 등 쏠쏠한 활약을 보이면서 트리플 A까지 순조롭게 올라갔습니다.
게다가 2006년 퓨처스게임(2타수 무안타)에 2루수로 출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활약 등으로 2007년도 하반기 로스터 확장에 아마도 가장 승격이 될 확률이 높았습니다. 


                      (제1회 WBC에서 중국팀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치는 모습/유튜브)

그러나 겨우 다섯 게임만 출장하고 예전에 다쳤던 어깨 부위를 또 다치면서 결국 수술을 받고, 그 후 재활 치료로 거의 한 해를 보내고 그 해 10월 아리조나 가을리그에 참가하면서 재활을 마치고, 가을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2007년 11월 21일에 보호선수 40명 로스터에 들게 되면서 2008년을 기약하게 됩니다. [그것이 타이완 내야수로는 두 번째(처음은 LA 다저스의 후진롱)로 보호 선수 40인 로스터(메이져리거로 된 것은 아닙니다. 40인 보호선수 명단에 들게 된 것일 뿐.)에 들게 된 것이지요.]

2008년 트리플 A에서 두 번째 해를 보내는데 어깨 수술 후유증이 생기면서 다시 로스터 탈락의 아픔을 맛보았고, 그 후유증을 치료하고 난 후에 6월 말에는 다시 무릎 부상을 입으면서 결국 승격은 안되고 팀 보호 명단에서도 빠지게 되면서 웨이버 공시의 아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한 후에 다시 마이너의 도전을 시작하여 결국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팀과 다시 마이너 계약을 맺어 새로이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http://www.wretch.cc/album/cg0713
 
      http://www.wretch.cc/album/cg0713
  (2009년 더블A팀 Midland RockHounds에서의 모습입니다.)

그 후에 메이저리그로의 도전을 위하여 제 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타이완 대표 팀을 자진 고사하면서까지 의지를 보였습니다만 결국 오클랜드 팀에서도 전력 재조정의 일환으로 여러 선수들을 방출하는 와중에 다시 보호 선수 40인 명단에서 빠지게 되었지만, 다른 팀으로 이적을 하지 않고 더블 A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2009년에는 아리조나 어슬레틱스(AZL Athletics)/아리조나 리그(Arizona League)에서 뛰었고, 6월에 다시 트리플A 로 승격이 되었지만 몇 게임 후에 다시 부상자명단에 들면서 부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거의 모든 타이완 국가대표에서 부동의 내야수로 활약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딱 계약금 25만 불짜리의 선수라고 봤습니다. 기록으로 보나, 그간의 경기 모습으로 보나 이 선수는 미국에서 내야 백업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든 공격력과 뛰어나지 않는 수비력으로 크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낮은 선수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1~2년 안에 다시 타이완 리그로 유턴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입니다. 그렇게 되면 타이완의 리그가 내야 수비들이 대부분 안좋기 때문에 천용지를 서로 영입하기 위해서 네 팀의 경쟁이 치열하리라 생각됩니다. 고만고만한 도미(渡美)선수들과는 다른 스타급의 선수이기에 국내리그의 부활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판단하겠지요.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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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웨이인(陳偉殷)은 올 시즌 7승을 거두고 있습니다.  돔 구장이 아닌 야외구장일 시는 모두 5게임에 나와 40 이닝동안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투구 기록으로 방어율을 1.30으로 낮췄습니다. 모두 8이닝동안 타자 31명 상대로 112개의 공을 던져 피홈런 0, 탈삼진 4개, 사사구 3개로 무실점 경기를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올 시즌 통산 16게임에 나와 7승2패 방어율 1.30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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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C.P.B.L의 대표적인 홈런왕 쟝타이샨(張泰山)

타석에 들어선 쟝타이산(張泰山)/사진제공 ⓒ Chrischang

쟝타이산(張泰山)은 타이완의 타이동현(台東縣) 출신으로 1976년생(용띠/현재 33세)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입니다.

174cm/95kg으로 약간 뚱뚱한 편이라고 해야되나? 아무튼 쟝태산은 3루와 1루, 그리고 지명타자로 활약하고 있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3루수였습니다. 지금은 1루와 지명타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태산이라는 이름으로 별명이 삼림왕자(森林王子)가 되었고, 타이완 아미족(阿美族) 원주민출신 선수입니다.

출신은 타이동현(台東縣)이고 타이위엔 초등학교(台東縣 泰源國小)에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중학교 때 타이완 남부의 야구명문인 메이허 중,고교(美和中學)로 진학을 하였고, 계열 고등학교 2학년 때 길거리에서 패싸움을 하여 야구부에서 퇴부조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강타자로서의 재능을 알아 본 청소년 대표 감독이 대표로 선발하여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후에 타이완을 대표하는 강타자로 자라나서 현재까지 C.P.B.L 통산 최다 홈런왕으로 계속 기록을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성인이 된 쟝타이산은 항상 대표 팀의 지주로서 중요한 활약을 많이 하였습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2001년 야구월드컵, 그리고 2003년 아시아챔피언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 그리고 2005년 코나미컵과 2006년 WBC 대표와 2007년 대륙간 컵대회와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 등 거의 모든 대회에서 타이완의 국가대표 중심타자로 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이 끝난 후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하여 베이징으로 출국을 하기 전에 바로 도핑 테스트에 적발이 되어 본선 무대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1년동안 자격정지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본인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갖기 위한 방편으로 복용한 임신 관련 약물이었다고 변명을 하였지만, 국제기구에서 금한 금지약물 성분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요. 

[당시 관련 기사보기]

쟝타이산과 아내 우징이(吳靜宜)


당시 염원의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는 타이완대표팀으로서는 쟝타이산이 3루에서 빠진 것이 아주 큰 타격이 되었습니다. 타격에서는 당연히 이루말할 수도 없고, 수비에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던 그가 약물복용으로 빠지게 되면서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엇박자의 타선과 엉망인 수비 조직력으로 결국 올림픽에서 숙적인 중국에게마져 져버리게 되면서 쟝타이산에게 엄청난 여론의 비난과 책임론에 휩싸이게 됩니다.

본인 말로는 그 당시에 죽고 싶었다고 하면서 은퇴도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만 모두 아내의 헌신적인 권유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에서도 밝혔습니다.

쟝타이산의 리그종적

가장 젊은 나이로 프로야구 선수가 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쟝타이산(병역을 면제받고 고졸 나이에 프로에 입단한 최초의 선수)는 1995년 당시 만 18세의 나이로 스바오이글스(時報鷹) 팀의 특별보충선수로 뽑혔습니다만 바로 팀이 그 해 해산이 되고나서 다시 무직자가 되었서, 바로 병역 문제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쟝타이산은 당시 84kg이던 체중을 군대 면제 기준이 되는 109kg까지 인위적으로 찌게 만들어서 군대에서 면제가 된 후, 바로 다시 85kg으로 살을 뺐습니다. 이 문제로 당시 많은 논란과 함께 비난을 받았습니다만 어쨌든 그 후에 비난에 휩싸이고 있을 때 당시 웨이취엔 드레곤즈 감독이던 쉬성밍(徐生明)씨의 강력한 요청으로 다시 그 팀의 연습생으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에 19살의 쟝타이산은 프로야구 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등록된 선수가 됩니다.  프로 7년 째인 1996년에 가장 나이어린 프로야구 선수가 많은 활약(통이 라이온즈 팀의 슈퍼 신인인 우쥔량(吳俊良)과 신인왕을 두고 경쟁을 벌이게 되고)을 한 모습을 본 웨이취엔 팀의 궈회장(郭董事長)은 리그 중간에 당시 월급 6만 위엔에서 파격적으로 두 배인 12만 위엔(현재의 월급은 33.1만 위엔/현재 환율로 한화 약 1,270만원)으로 올려주었습니다.

1998년에 수 차례의 월간 MVP상 획득과 연도 MVP상, 그리고 골든 글러브 등을 수상하면서 리그에서 쟝타이산은 공수를 겸비한 강타자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999년에 웨이취엔 드레곤즈 팀이 해체되고 나서 2000년부터 싱농불스 팀으로 옮겨 활약을 하였고, 2003년에는 CPBL 사상 최초로 개인 100홈런과 100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고, 같은 팀의 황중이(黃忠義), 정쟈오싱(鄭兆行)등과 함께 싱농불스의 삼번도(三番刀) 타선(위의 세 선수가 모두 타이완 원주민 출신이라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습니다.)으로 불리게 됩니다. 

당시 어린 나이(겨우 26살)에 머리 숱이 빠지게 되면서 여러 우스갯소리로 리그 야구 심판인 쉬쟌위엔(徐展元)은 쟝타이산이 홈런을 치면 그의 머리를 보고, 또 날라가는 공을 보면서 '이젠 돌아오지 않는 (공)머리가 되었다'라고 그의 머리 숱이 없어짐을 비유하면서 농담을 하였고, 슝디 팀의 린밍시엔(林明憲)도 농담으로 머리숱이 없는 사람들을 농담으로 타이완 빛나리 야구부대의 부대장은 자신이고 대장은 바로 쟝타이산이라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2006년에는 본래 늘 맡아보던 3루수를 그만두고 1루와 외야로 전환을 꾀합니다. 그리고 그 해 타이완 프로 역사상 100홈런과 100도루 외에 다시 1000안타를 최초로 기록한 선수가 됩니다.(2006년 5월 4일에는 162개 째 홈런을 기록하여 당시 최고이던 린중치우(林仲秋)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고, 바로 이틀 후 163호를 때려내면서 타이완 최고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CPBL 14년인 2003년에 28개의 홈런과 22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타이완 역사상 최초로 20-20을 달성한 사람이 쟝타이산입니다.
  
                      (쟝타이산의 200호 홈런 당시 영상/유튜브 제공)

쟝타이산이 세운 기록의 면면을 살펴보면 19세에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가장 젋은 기록을 세웠고, 한 게임에서 두개의 2루타와 세 개의 홈런을 때려낸 기록이 있고, 현재까지 최다 홈런(현재까지 214개)을 때린 선수이고, 이제는 1233게임으로 최다게임 출장기록 4위에, 5094타석으로 전체 2위, 그리고 4593타순으로 전체 2위, 918타점으로 전체 1위이고, 760득점으로 공동 1위,  1423안타로 전체 2위(1위는 은퇴한 황중이 선수의 1582안타)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기록 등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게임에 나가면 모든 것이 기록이라고 할 정도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 후 늦은 나이에 국립타이완 체육대학에 진학(현재 재학 중)을 하여 B급 지도자 라이센스를 취득하여, 훗날의 지도자 생활을 위한 준비를 하였고, 외적으로는 타이완 원주민 스포츠 발전협회의 부이사장과 타이완 프로야구 선수협회의 이사로 임명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쟝타이산 선수의 기록


타이완의 유명한 야구 명문가 집안인 타이동 양지아(台東陽家)의 구성원 중 한 명이 바로 쟝타이산입니다. 가계도의 야구 선수를 보면 대표적으로만 추려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잠시 살펴보면 천즈위엔(陳致遠:슝디 엘리펀츠의 외야수이자 국가대표 선수)과 천즈펑(陳致鵬:슝디 엘리펀츠의 외야수)의 외삼촌이고, 가오펑니엔(高豐年:전 중신웨일즈와 싱농 불스 팀의 선수)의 외종 사촌형이면서, 천용순(陳勇順:예전 TML 당시 니엔다이띠엔공 팀[年代雷公隊]의 포수)의 내종 사촌동생이 됩니다.

아무튼 쟝타이산은 2009년에도 윌튼 베라스(威納斯), 씨에지아시옌(謝佳賢)과 함께 '매우 위험한 타선'이라고 불리운데다가, 거기에 제 2회 WBC 대회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 한 린이취엔(林益全)이 중심타선에 가세하여 '정말 매우 위험한 타선'으로 불리우는 싱농불스 팀의 중심타선의 한 축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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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기획시리즈 타이완의 야구선수들 이번 호는 대만 출신 메이저리그 제 2호 선수인 차오진후이(曹錦輝) 선수에 대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 출신의 메이져리거로는 제 2호입니다. 1년 정도의 차이로 두 번째가 되었지만 투수 출신으로는 첫 번째 선수입니다. 메이져리그 콜로라도 록키즈와 LA 다져스, 그리고 캔사스시티 로얄즈에서 뛰었습니다.

                               콜로라도 록키즈 시절의 차오진후이 / 이미지 ⓒbaseballtaiwan.net

차오진후이(曹錦輝)선수는 1981년생으로 185cm/95kg이라는 아주 훌륭한 신체조건을 갖춘 대형투수 중의 한 명입니다. 정통 오버스로우 투수이고 구종은 4심과 2심패스트볼, 커브,슬라이더, 스플리터와 싱커, 체인지업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공식 기록으로는 최고 159km/h를 던졌다는 기록(아테네올림픽 당시에 화면상 159km/h, 방송에서는 161km/h라고 말함)은 있습니다만 평속은 145km/h정도였고요, 패스트볼로 150km/h 정도는 가볍게 찍어주는 구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선수도 화롄지방 출신의 선수입니다. 여러가지 군대 문제나 미국 진출 등의 이유로 고교 졸업 후에 타이완 리그에 가지않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케이스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덴버대학에 적(籍)을 두고 콜로라도 록키즈 팀의 마이너리거로 생활하기 시작하였죠. 역시 타이완 대표팀 출신의 뤄구어후이(羅國輝)와는 친인척 관계입니다. 차오진후이가 외삼촌이지요.


이 선수가 처음 대표 팀에 선발 된 것은 1996년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부터 였습니다. 하지만 주목을 끌게 된 것은 가오위엔 고등학교(高雄縣 高苑工商 青棒隊)시절 에이스로 각광을 받았을 때, 전국 고교야구 리그대회에서 당시 궈홍즈가 다니던 난잉공상(南英工商)과의 경기에서 궈홍즈와 구속 대결이 펼쳐졌는데, 궈홍즈가 149km/h를 찍었고, 차오진후이는 152km/h를 찍어서 타이완의 고교야구 사상 최고구속 기록을 세우며 이겼던 경기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 1999년에 처음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어 네덜란드에 다녀오고서 많은 입질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강속구로 많은 스카우터들이 주목하기 시작하였는데요. 이후에 각종 청소년대표 등에 뽑혀서 많은 활약을 펼친 끝에 결국 같은 해 메이저리그 팀인 콜로라도 록키즈와 타이완 야구 역사상 가장 큰 금액(22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게 됩니다.

                      콜로라도 록키즈 시절의 차오진후이 / 이미지 ⓒbaseballtaiwan.net

마이너리거로 4년이 되었을 때, 어깨에 부상을 입어 결국 수술을 받았지만 잘 견뎌내고 결국 2003년 7월 26일에 콜로라도 록키즈의 메이져 로스터에 들어 쿠어스필드 홈 경기 때에 선발로 첫 등판하게 됩니다. 밀워키 브루어스팀을 상대로 6과 3/1이닝을 던져 본인의 메이져리거로서 감격의 첫 승(타이완 인으로서도 첫 승이고 타석에서도 첫 안타도 만들어 내었습니다.)을 따냅니다. 결국 그 해에 3승3패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04년에 다시 부상의 여파로 인해 출장기회가 점점 줄어들더니 다시 마이너로 떨어졌고, 2005년에는 로테이션의 위치로 격하되어 새 출발을 하게되었습니다.

 
2003년 마이너 퓨처스게임에서 차오진후이 투구모습. ⓒhttp://www.wretch.cc

       차오진후이 국가 대표팀 이력                      타이완 선수의 메이져리그 등록 기록

1996년 제07회 IBA 세계 리틀야구 선수권대회
1997년 제17회 IBA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1999년 제18회 IBA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1999년 제08회 네덜란드 포트배(World Port 
                    Tournament) 성인대표팀 
1999년 제20회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
2004년 제 28회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2007년 제24회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1.천진펑(陳金鋒): LA다저스  2002년 09월14일

2.차오진후이(曹錦輝): 콜로라도  2003년 07월25일

3.왕지엔민(王建民): NY양키즈  2005년 04월30일

4.궈홍즈(郭泓志): LA다저스  2005년 09월 02일

5.후진롱(胡金龍): LA다저스  2007년 09월 01일 


미국에서의 성적은 그저 그런 투수중의 하나였지만 타이완 대표팀으로서의 차오진후이는 빼어난 활약을 펼쳐왔습니다. 2003년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의 은메달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예선전 대표로 출전권 획득에 활약을 했었고,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큰 활약을 보였습니다. 

2006년에 점점 구속이 줄어들고 구위가 떨어지는 평가로 결국 콜로라도와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고 노쇠해져 결국 논텐더로 자유*(논텐더:non-tender; 연봉조정 신청자격을 얻는 선수 중 구단이 연봉조정 신청을 거부하고 재계약을 포기하는 선수. 즉, 자유계약선수가 될 조건을 채우지 않았지만 구단이 재계약을 포기해 FA 자격을 얻는 것으로 사실상 구단에서 방출당함을 의미.) 계약 신분이 되면서 무적이 되었고, 에이전트의 노력으로 다시 2007년 LA다저스와 1년 간의 각각 메이저와 마이너의 계약을 하게 됩니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메이저 로스터에 들게되면 최소 42만5천 달러의 계약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만 마이너로 떨어지게 되면 15만 불의 마이너 계약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제일 안좋은 경우 방출이 되더라도 최소 10만 불을 받을 수 있는 계약 조건으로 LA 다져스와 계약을 완료했습니다.

                        차오진후이의 미국에서의 스탯입니다. ⓒ캔사스시티 로열즈 홈페이지

하지만 결국 최종 로스터에는 들지 못하고 트리플 A에서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다시 4월 11일 다시 메이져로 올라왔습니다. 불펜진으로서 합류하게 되었는데요, 3일만에 다시 마이너로 돌아갔고, 4월 18일에 다시 메이져 불펜진으로 합류하였고, 꽤 괜찮은 활약을 보였지만 5월 24일 부상자 명단에 들어 다시 마이너로 떨어지고, 6월30일에 다시 메이저로 올라왔지만 잦은 부상자 명단에 들면서 결국 마이너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고 리그가 끝난 10월 31일에 40인 로스터에서 빠지게 되면서 웨이버 공시가 되었고, 마이너로 다시 떨어지기 싫은 차오진후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팀을 떠나게 되면서 다시 무적(無籍)선수가 됩니다.

그 후에 다시 캔사스시티 로얄즈와 마이너계약을 맺어 팀을 정하였습니다. 역시 마이너 계약인데 얼마 못가서 6월 3일에 부상의 여파로 인해 더이상 활동하지 못하고 방출되었습니다. 이 때 3명의 아시아선수가 같이 방출되어서 화제가 되었더랬죠.(노모 히데오와 차오진후이, 야스히코 야부타 선수) 그 후로 계속 무적 선수로 지내오다가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에서 타이완 대표팀에 합류하였고, 계속 미국 쪽으로 팀을 알아보았으나 더이상 불러주는 팀이 없자 타이완 리그로 돌아옵니다. 


2008년 말에 2009년도 특별지명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결국 슝디 엘리펀츠 팀에 지명되었고, 팀과 계약금 및 연봉 문제로 에이전트와 구단 간에 힘겨루기 등의 불협 화음을 보이면서 결국 두 번째 협상까지 결렬되었습니다. 에이전트의 무리한 요구에 따른 협상 결렬인데요, 물론 지속적으로 협상의 의지를 보이고는 있습니다. 


차오진후이의 강속구 모습(화면상 159km/h이지만 방송 해설자가 현장 속도 161km/h라고 해설)

에이전트 리웨이촨(李瑋川)의 무리한 욕심이 부른 화(禍)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중국 진출설(3년간 100만 불의 금액설 : 애초에 규모 면에서도 가당치도 않은 헛소문!)까지 흘려가면서 더 많은 돈을 얻어내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이 분명하다는 타이완 여론의 중론입니다. 


많은 팬들은 통이 라이온즈와의 3월 28일 타이난에서의 CPBL20년 개막전에서 판웨이룬과의 맞대결을 보고 싶어한다는 여론이 많은데요, 아무튼 시즌 시작 전까지는 계약이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무적 선수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감독인 왕광후이가 '차오진후이가 없는 상황도 준비하고 있다'라는 발언을 함으러서 더욱 그러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타이완 출신으로 제 2호 메이저리거이자 투수로는 첫 번째의 영예를 가지고 있는 차오진후이 투수. 건장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속구를 CPBL에서 다시 보기를 원하는 많은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추가 소식 : 제 홈페이지에서 이름으로 검색하세요.

블랙엘리펀츠 사건에 연루되어 영구제명되었습니다. http://chinesebaseball.tistory.com/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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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요미우리 시절의 쟝지엔밍/사진 JohnHuang2007

타이완 출신의 일본리그(NPB) 투수 중의 하나였던 쟝지엔밍(姜建銘;여권상 적힌 영문 명은 Chien-Ming Chiang 이지만 실제 이름의 발음은 쟝지엔밍) 선수네 번째로 소개할 선수입니다. 앞서 소개한 선수 네 명 모두가 MLB로의 진출을 꾀한 케이스나 또는 성공한 사례를 소개 하였다면 오늘은 일본 프로야구(NPB)로의 진출 케이스가 된 前 요미우리 투수 출신인 쟝지엔밍(現2009년 싱농불스 신인지명자) 선수를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어릴적 '원숭이' 또는 '철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쟝지엔밍 선수. 175cm/73kg으로 운동 선수치고는 그다지 별로인 키와 몸무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청소년 시절에 원래 포수였다가 투수로 전향한 케이스입니다. 

1985년 5월생으로 현재 겨우 25살 입니다. 아쉽게도 너무 일찍 일본 리그에서 퇴출을 당하고 타이완으로 돌아온 케이스입니다. 좀 일찍 돌아 왔다고 해야되겠죠?

일본에 간지 3년 만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전력 외 통지(한마디로 방출)를 받았고, 팀에 남기위한 팀 내 자체 테스트를 다시 거쳤으나 결국 최종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고 타이완으로 돌아와 2009년도 신인 자격으로 싱농 불스팀의 지명을 받아 계약을 완료하여 리턴한 케이스입니다.

중,고교[(三重國中 - 強恕中學. 대학은 台灣體育大學(桃園)] 선수 시절 지칠줄 모르는 체력으로 연투에 연투를 거듭하여 '철인'이라고 별명도 얻었으나 제 생각으로는 그 때의 무리수로 인해 선수 생명이 짧아진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그렇게 빨리 시들해 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핑계없는 무덤 없다고 본인이나 대만의 언론에서는 일본 코치진들이 폼을 개조하여 그 여파가 선수 생명을 갉아먹었다라는 변명급의 핑계를 대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건 정말 핑계일 뿐이고 실제로 공의 위력이 예전만 못하게 떨어진 것이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기에 어깨가 소모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걸보면 한국이나 대만이나, 일본이나 청소년 기의 선수들 혹사 문제는 정말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튼 아시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주루하다가 좌측 다리에 부상을 입어서 잠시 쉬게 된 것 외에는 계속 무리하게 연투에 연투를 거듭하였었죠. 어쨌든 그가 일본에 진출하게 된 것도 타이완 국내의 여러 대회를 휩쓸면서 활약을 보인 덕분이었고(아시겠지만 일본의 스카우터들이 대만에 참 많이도 나와 있습니다. (각 팀마다 한 두명씩은 현지 계약을 맺거나 직접 파견을 나와 있거나 하죠.)

그래서 요미우리의 관심을 사게 되면서 결국 2005년에 계약금 8000 만엔, 연봉 1000만엔의 조건으로 드디어 일본 프로야구 리그로의 진출을 하게됩니다. 거인군의 신분으로 말이죠.

예전에 아시아의 거포라고 불리우던, 뭐 나중에 다시 이 코너를 통해서 소개하는 기회가 있겠지만 80년대 타이완 출신의 강타자 뤼밍츠(呂明賜;현 타이완 프로야구 라뉴 베어즈팀의 코치) 선수의 배번인 '97번'을 물려받게 됩니다(후에 17번으로 바꾸었지요). 뭐 당시 대만 언론에서 엄청난 조명을 받으며 기사화가 많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어디에서나 신구의 연관성이란 소스는 언론들이 참 좋아하는 것이죠.

 

 
           <2007년 요미우리의 홈개막전 선발 당시의 모습: 對 쥬니치 드레곤즈>

대표팀 경력사항

2000年 제 1회 아시아중학야구선수권대회(한국개최)
2001年 제10회 IBA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2003年 제 5회 아시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2004年 제 2회 세계 대학생야구 선수권대회
2005年 제 23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첫 성인대표)
2005年 제 36회 세계 야구월드컵대회
2006年 제 1회 WBC 대회 
2006年 제 15회 도하아시안게임
2008年 베이징올림픽 야구예선 8강3선출전 대표(아래 기록 참조)

이름 방어율 게임 이닝 승리 패전 피안타 피홈런 탈삼진 사사구 실점 자책
姜建銘 2.45 3 11 2 1 9 0 10 2 3 3

2008년 시즌에는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여 결국 최종적으로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탈락하고 맙니다.

 
              <2004년 세계 대학생야구 선수권대회 對 일본전에서의 쟝지엔밍>

일본에서의 기록

연도 소속 배번 게임 이닝 홀드 세이브 완투 완봉 사사구 삼진 자책 승률 방어율
2005 Y.G 97 출전 기록이 없다.
2006 Y.G 10 59 2/3 3 2 0 0 1 1 8 31 12 .600 1.81
2007 Y.G 17 17 41 2/3 2 4 0 0 0 0 13 30 24 .333 5.18
2008 Y.G 출전 기록이 없다.

쟝지엔밍 선수가 일찍 결혼을 하여 당시 대만의 많은 여성팬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는 기사가 있어서 번역 해 봅니다.

쟝지엔밍과 약혼녀 린위친 모습

旅日球星姜建銘也訂婚了,讓很多喜歡他的球迷心碎,在姜建銘返回日本參加巨人春訓的前夕,他和未婚妻也接受東森新聞的獨家專訪
일본진출선수인 쟝지엔밍 선수가 약혼을 했다는 소식에 많은 여성팬들의 가슴이 무너지는 듯,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쟝지엔밍 선수와 그의 약혼녀인 린위친씨를 동썬신문에서 만나봤습니다.

記者:當初喜歡她哪一點? 
(처음 어디가 좋았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姜建銘:喜歡她脾氣不好 
(그녀의 성격이 안좋아서...)라는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記者:怎麼說?
기자가 되묻듯 (뭐라고요?)
姜建銘:沒有啦開玩笑的!就是喜歡她個性比較獨立啊! 
(하하 아닙니다. 농담입니다. 성격이 비교적 독립적(남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성격이 아니고)이라서 좋아했습니다.)
未婚妻林雨蓁:他(就是)體貼啊!然後就是做事很有膽識,很有衝勁,然後在投球時的英姿。
약혼자 린위친(林雨蓁): 그는 자상하다. 담력과 식견이 있는 모습에 끌렸고 투구 폼 또한 멋있어서......

今年才23歲的姜建銘闖蕩日本職棒2年,第一年曾經風光勇奪三連勝,去年巨人隊的開幕戰姜建銘先發也拿勝投,但是姜建銘去年大多在二軍拼戰,現在身旁多了美嬌娘陪伴,姜建銘展望新球季應該會有更好的成績。
올해 23세인 쟝지엔밍은 집을 떠나 외지인 일본에서의 프로야구선수로 2년째를 맞이한다. 첫 해 바람처럼 나타나서 3연승의 건투를 하며 활약하였고, 작년에는 거인군의 개막전 선발로 나서서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그 후 거의 대부분을 2군에 내려가 있었다.

현재 아리따운 반려자를 만난 쟝지엔밍 선수는 이번 새로운 시즌에 반드시 더 좋은 성적을 올리리라 믿는다. 

姜建銘在今年1月2日低調訂婚後,預定將在年底結婚,未婚妻林雨蓁也將在過年後,赴日本照顧姜建銘的生活起居。
쟝지엔밍 선수는 올 1월 2일에 약혼을 한 후 연말에 결혼식을 올린다. 약혼자인 린위친은 설을 쇠고 난 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같이 생활하며 내조를 할 계획이다.
                                                                                                                東森新聞的獨家專訪


이제 CPBL로 리턴하여 올 시즌부터 싱농 불스팀의 선수로 타이완 팬들에게 선을 보이게 됩니다. 한국도 해외파들의 귀국으로 많은 팬들의 주목을 이끌어냈고, 덩달아 프로야구의 인기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타이완도 엄청 많은 선수가 미국이나 일본에 진출 해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이 적응 부족이라든지, 역량의 한계를 느껴 다시 본국으로 리턴하게 되면 해외 귀환파들의 성적 여부가 자국의 팬들에게 관심을 끌게 마련입니다. 올 시즌에는 특히 많은 해외 귀환선수들이 있어서 작년 불미스러운 일들의 연속으로 6개 팀에서 4개 팀으로 줄어든 타이완의 프로야구계에 좋은 호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의 쟝지엔밍 선수의 CPBL에서 어떤 활약을 하게될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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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장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사진: MLB.COM/LA다저스


기획 시리즈 세번 째 선수로 궈홍즈(郭泓志) 선수를 소개합니다. 1981년생으로 185cm/107kg으로 당당한 체격의 소유자입니다. 대만 출신으로 미국이나 일본에 진출한 선수들을 보면 체격 조건이 훤칠하고 당당한 케이스가 대부분입니다. 보통 미래성과 잠재력을 보고 입도선매 식의 어망을 던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케이스 중의 하나에서 당당하게 메이져리거로 성장한 케이스입니다.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궈홍즈 선수의 평균 구속은 145~153km입니다. 최고 구속은 157km라고 합니다.(항상 논란거리가 되는 것이 얼마를 찍었다라는 얘기인데요, MLB 기록 자료에 나온 것으로 인용하였습니다. 최고구속은 스피드건의 위치나 다른 영향 등으로 오차율이 꽤 있는 편이라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타이완 출신 최고의 좌완 투수로 불립니다.

궈홍즈 선수는 1981년 7월 23일에 타이완 남부의 타이난시(台南市)에서 태어났습니다. 야구로 유명한 지엔싱중학교(建興國中)과 난잉상공(南英商工)을 나왔구요, 1999년에 LA 다저스와 자유계약(계약금 125만 달러)을 맺어 미국으로 왔습니다. 계약 당시에 참 말이 많았었고, 탈도 많았었습니다. 사실 통이 라이온즈의 지명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그 전에 통이 라이온즈에서 지원금도 받았었고), 에이전트와의 의견 충돌과 논란으로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견이 갈려서 이중계약을 하는바람에 가정 내에 큰 폭풍이 몰아 닥쳤고, 또한 그로인해 야구계가 떠들석하게 될 정도로 많은 논란 끝에 결국 다저스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이죠.

영문명은 Hong-Chih Kuo이나 그대로 홍치,쿠오로 읽으시면 안되고, '궈홍즈'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정확한 발음입니다. 아무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에서 데려갈 정도였다는 소리는 전도유망한 유망주로서의 자질을 증명했다라는 얘기입니다. 청소년 대표시절을 거쳐 성인 대표팀의 국가대표로 뽑혀서 활약한 첫 국제 대회가 네덜란드에서 주최하는 야구대회인 World Port Tournament(예전 명칭 Rotterdam Baseball World Port Tournament)인데요, 1999년 당시 대만은 참가 4팀 중 꼴지(3승 4패)를 하였습니다만 당시 예선에서 미국을 이길 때 활약한 덕분으로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받게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대회에 같이 참가했던 동료 투수는 역시 같은 메이져리거가 된 '왕지엔민(王建民)'과 '차오진후이(曹錦輝)' 등이 있습니다.

궈홍즈 선수의 대표팀 경력
1992년 제10회 IBA-boys세계리틀연식야구선수권대회 대표
1998년 제03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1999년 제08회 월드포트토너먼트대회 대표(성인팀)
2002년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 대표
2006년 제01회 WBC 대표
2006년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

 

사진 maddog's

 

사진 maddog's


메이저리그로 승격이 되어 나선 첫 경기는 2005년 9월 2일입니다. 대만에서는 모두 당시까지 네 명(궈홍즈까지 포함)의 메이져리거들이 있었습니다. 좌완투수로는 첫 번째인 셈이죠. 대만의 MLB출신 거물투수 3인방(왕지엔민,차오진후이,궈홍즈) 중 하나입니다. 본래 난잉상공을 졸업하면서 바로 LA 다저스의 지명을 받고 미국으로 갔을 당시에는 아마도 가장 먼저 MLB로 승격 될 투수가 아닌가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마이너 시절 루키리그부터 별별 리그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선발수업을 착실히 쌓아 결국 2005년 상반기 Vero Beach Dodgers에서 11게임 26이닝 42K, 2.08의 방어율로 2A로 승격되고, 이어서 2A팀인 'Jacksonville Suns'팀에서 17게임에 나와 28.1이닝 44K, 1.37의 방어율로 그해 9월 정식통보를 받고 MLB로 승격이 됩니다.

9월 9일 첫 본인의 메이져리그 등판을 선발투수로 나왔습니다. 뉴욕메츠 팀과의 선발출전에서 6이닝 7K,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5:0의 승리를 따냈습니다. 그 경기에서 감독은 "deserves to have another chance. At least one or two more, and maybe 10 years worth(앞으로 한 두차례 더 또 다른 기회를 얻을 것이다.그는 우리가 10년을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 투수이다.)" 라고 밝히면서 빅리거로서의 첫 발을 축하 해 주었었죠. 2006년에는 팀내 상인 연도 신인상(Jim and Dearie Mulvey Award)을 수상하여 미국 이외의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수상하였습니다.


 
               <뉴욕 메츠를 상대로 MLB 첫 승을 올리는 궈홍즈의 영상입니다.>

그 후로 계속 트리플A와 MBL를 오가면서 활약을 했습니다. 2007년에는 타이완 출신 선수로는 타석에 들어 투수로도, 타자로서도 처음으로 홈런을 치기도 했습니다만 주로 컨트롤에 대한 문제가 자주 거론되면서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였지요. 2007년 6월에는 arthroscopy debridement (관절경 조직제거수술)을 받아 재활 등으로 많은 게임에 나오지 못하였고, 수술 한 달후 다시 트리플 A 소속으로 게임에 나와 컨디션 조절 후 5월 16일에 다시 메이져로 올라왔습니다. 중간계투의 역할을 맡아서 활약했으나 성적부진 등으로다시 트리플 A로 내려갔습니다. 이후에도 부상과 성적 부진 등으로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2007년을 보냈고, 2008년에 들어서 다시 선발투수와 롱릴리프의 역할을 맡아서 어느정도의 역할을 해주었기에 고정자리를 부여받았습니다. 2008년은 다저스가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게되었는데 시카고 컵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는 등판의 기회가 없었지만, 그 다음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등판하게 되어서, 타이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출전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2009년 들어 같은 타이완 출신의 메이져리거인 왕지엔민 선수, 그리고 후진롱 선수등과 제 2회 WBC의 출전을 강력하게 희망하였으나, 부상과 컨디션 조절 등의 이유로 구단에서 반대하게 되어 결국 출전을 못하고 사퇴하게 됩니다. 박찬호 선수를 잘 따르고 어울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어서 더 반가웠던  선수입니다. 당시 아시안 출신의 투수 3인방이 박찬호 선수를 필두로 일본의 쿠로다선수, 그리고 궈홍즈였지요. 이번 2009시즌에 LA 다저스가 마무리 사이토 다카시(38)의 재계약을 하지 않음으로서 궈홍즈 선수의 클로저 기용론도 흘러나오는 상황입니다. 어제자 타이완 야구신문에는 궈홍즈 개인의 올시즌 목표가 다저스에서 클로져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과연 본인의 희망대로 이루어질런지, 아니면 다른 위치에서 팀이 필요로 하는 곳에서 활약하게 될런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리그 출장기록

연도

소속

등급

G Inn W L H S 완투 완봉 BB K E 승률 방어율

WHIP 

2000 LA다저스 A ADV 1 3 0 0 0 0 0 0 0 7 0 0.000 0.00 0.00
2001 LA다저스 ROOKIE 7 19⅓ 0 0 0 0 0 0 6 21 5 0.000 2.33 0.88
2002 LA다저스 ROOKIE 3 6 0 0 0 0 0 0 1 9 3 0.000 4.50 0.83
2002 LA다저스 A ADV 4 8 0 1 0 0 0 0 5 8 6 0.000 6.75 1.63
2003 LA다저스 A 출장기록이 없다.
2004 LA다저스 A 3 6 1 0 0 0 0 0 5 10 3 1.000 4.50 2.00
2005 LA다저스 A ADV 11 26 1 1 4 0 0 0 12 42 6 0.500 2.08 1.12
2005 LA다저스 AA 17 28⅓ 1 1 2 3 0 0 12 44 6 0.500 1.91 1.16
2005 LA다저스 MLB 9 5⅓ 0 1 3 0 0 0 5 10 4 0.000 6.75 1.88
2006 LA다저스 AAA 23 53 4 3 2 1 0 0 22 63 18 0.571 3.06 1.40
2006 LA다저스 MLB 28 59⅔ 1 5 2 0 0 0 33 71 28 0.167 4.22 1.46
2007 LA다저스 AAA 7 20 0 1 0 0 0 0 8 28 8 0.000 3.60 1.30
2007 LA다저스 MLB 8 30⅓ 1 4 0 0 0 0 14 27 25 0.200 7.42 1.62
2008 LA다저스 MLB 42 80 5 3 12 1 0 0 24 96 19 0.625 2.14 0.98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쉽시리즈의 출장기록

연도 소속 등급 G Inn W L H S 완투 완봉 BB K E 승률 방어율 
2006 LA다저스 MLB 1 4⅓ 0 1 0 0 0 0 1 4 2 0.000 4.15
2008 LA다저스 MLB 3 3 0 0 0 0 0 0 0 3 1 0.000 3.00


                    <3.2 이닝동안 무려 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호투하는 궈홍즈>

궈홍즈 선수의 구질은 패스트볼과 커브,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입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때 한국전 선발로 나와서 6이닝 동안 호투를 하여서 우리에게도 더욱 잘 알려진 투수입니다.
 
팀명칭 1 2 3 4 5 6 7 8 9 R H E
中华台北 中華台北 0 0 0 2 1 0 0 1 0 4 10 2
大韩民国 大韓民國 0 0 0 1 0 1 0 0 0 2 11 0
승리투수 : 궈홍즈. 세이브 : 쟝지엔밍 / 패전투수 : 손민한
승리타점 : 천용지.  홈런 : 천용지(4회초,8회초 각각 1점), 씨에지아시옌(5회초 1점)

자료는 타이완 위키, 타이완 야후, 타이완 구글, 스포츠얌닷컴. LA 다저스 홈페이지 등에서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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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장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두 번째 기획 시리즈의 선수는 타이완의 대표적인 강타자 '천진펑(陳金鋒)'입니다. 별로 관심이 없던 분들이라도 이 천진펑 선수의 이름은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겁니다.

천진펑(陳金鋒) 타이완의 남부 타이난현(台南縣)에서 태어난 그는 별명이 펑즈(鋒仔:날카로움을 뜻함)였다가 나이가 들면서 펑거(鋒哥:펑형)로 불리우고, 또는 타이완거포(台灣巨砲)라고도 불립니다. 천진펑의 어머니 루어쑤츠(羅素慈:)는 타이완 남부의 시라야(Siraiya)족 태생의 원주민이고 아버지 천칭위엔(陳慶源)은 시라야족과 한족의 혼혈입니다. 천진펑은 시라야족 4/3의 혈통을 가지고 타이난현(台南縣)의 산화(善化)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1977년 10월 28일생이고 183cm/90kg의 건장한 체격입니다. 젊었을 때는 외야수였으나 현재는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고 있습니다. 산화초등학교 야구부(善化國小少棒隊)와 타이난시의 푸싱중학교(復興國中), 타이베이현의 중화고등학교(中華中學)를 거쳐 합작금고 야구단(合作金庫棒球隊), 루광 야구단(陸光棒球隊)을 거치면서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여러차례 청소년 대표와 성인야구 대표를 두루두루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 33회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Baseball World Cup)에서 5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리면서 홈런왕이 되었고, 그 때의 활약으로 메이져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끌면서 총 68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LA 다저스와 계약 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후 마이너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후 처음 맞는 A ADV리그에서 무려 31개의 홈런(도루도 30개로 30-30을 기록)을 날리면서 기대를 모았고, 2000년에는 가을리그를 거쳐 꾸준한 활약을 보였기에 그 해 다저스가 뽑은 잠재력이 큰 유망주 1위에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2001년이 천진펑으로서는 타이완의 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던 
한 해 였습니다. 연말에 타이완에서 열린 제 34회 세계 야구선수권(당시의 영문 이름 World Basaball Championship: 현재는 Baseball World Cup으로 이름을 바꾸었죠) 대회 3-4위전 일본전에서 천진펑은 두 개의 홈런을 날리면서 3:0으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타이완의 팬들을 열광시켰고, '타이완거포(台灣巨砲)'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전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당시 선발이던 쟝즈지아(張誌家)선수는 무실점으로 일본전을 틀어막고 승리투수가 되면서 그 때의 활약에 힘입어 일본리그(NPB)로 진출을 하였습니다......

2004년에는 아테네 올림픽 야구 대 일본전에서 전 요미우리의 에이스이자 올 시즌 메이져리거가 된 '우에하라'의 공을 받아쳐 3점 홈런포를 날려 일본을 격파할 뻔(당시 게임은 10회 연장전에서 일본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이닝의 돌쇠님과 헌터죠지님이 지적해주신 사항입니다.)하는데 수훈을 세우게 되었고 그런 연유로 '일본킬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그 전과 후에도 일본과 상대할 때마다 늘 좋은 성적을 내었던 것이 원인입니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타이완 대 일본전 하이라이트>

천진펑 선수의 국가대표 이력(정식 국제대회급만 나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989年  제07회  세계소년연식야구선수권대회
1990年  제44회  윌리엄스포터배 세계리틀야구선수권대회
1995年  제1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1996年  제02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1997年  제1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Asian Baseball Championship)(성인 첫 출장)
1998年  제33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Baseball World Cup)
1998  제13회  방콕아시안게임
1999年  제20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Asian Baseball Championship)
2001年  제34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Baseball World Cup)
2003年  제2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Asian Baseball Championship)
2004年  제28회  아테네올림픽
2006年  제15회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2007年  제3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Baseball World Cup)
2007年  제2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Asian Baseball Championship)
2008年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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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펑 선수의 통산 미국 스탯

소속 등급 G 타수 타점 득점 H 2H 3H HR BB K S 장타율 타율 
1999 LA 다저스 A ADV 131 510 123 98 161 22 10 31 75 123 30 0.580 0.316
2000 LA 다저스 AA 133 516 67 66 143 27 3 6 61 131 23 0.376 0.277
2000 Peoria Javelinas 가을리그 20 71 8 9 20 2 4 1 4 18 4 0.464 0.282
2001 LA 다저스 A ADV 62 235 41 38 63 15 3 5 36 56 2 0.421 0.268
2001 LA 다저스 AA 66 224 50 47 70 16 2 17 47 65 5 0.629 0.313
2001 Phoenix Desert Dog 가을리그 19 65 14 10 22 6 0 4 5 20 3 0.364 0.314
2002 LA 다저스 AAA 137 511 84 90 145 26 4 26 59 160 1 0.503 0.284
2002 LA 다저스 MLB 3 5 0 1 0 0 0 0 1 3 0 0.000 0.000
2003 LA 다저스 AAA 133 474 86 84 133 30 5 26 62 106 6 0.530 0.281
2003 LA 다저스 MLB 1 1 0 0 0 0 0 0 0 0 0 0.000 0.000
2004 LA 다저스 AAA 81 308 65 59 89 19 6 20 38 78 6 0.593 0.289
2004 LA 다저스 MLB 8 8 0 1 0 0 0 0 2 3 0 0.000 0.000
2005 LA 다저스 AAA 87 317 63 59 88 20 2 15 39 82 3 0.495 0.278
2005 LA 다저스 MLB 7 8 2 1 2 0 0 0 0 4 0 0.250 0.250
合計 LA 다저스 A ADV 193 745 164 136 224 37 13 36 111 179 32 0.530 0.301
合計 LA 다저스 AA 199 740 117 113 213 43 5 23 108 196 28 0.453 0.312
合計 LA 다저스 AAA 438 1610 298 292 455 95 17 87 198 426 16 0.525 0.283
合計 LA 다저스 MLB 19 22 2 3 2 0 0 0 3 10 0 0.091 0.091

미국으로 건너간 후 루키 리그와 2A를 거쳐 트리플A 에서 가장 많은 선수 생활을 하였고, 결국 2002년 9월 14일에 드디어 메이저리그로 승격이 됩니다. 타이완 출신으로는 처음(2호는 차오진후이, 3호는 왕지엔민)으로 메이져리거가 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됩니다. LA 다저스와 계약 후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장장 4년 째 되던 해에 승격이 되는데요, 아래 표의 기록에서도 나와 있는데 메이져리그에서의 성적은 통산 19 게임에 나와서 22 타수 2 안타(9 푼1 리) 3 득점 3 볼넷 10 삼진으로 영 아니올시다 였습니다. 그 후로 두 세너번 더 메이져로 승격이 되었지만 미미한 활약으로 잠시 있다가 다시 마이너로 내려가곤 하는 미국에서의 생활에 한계를 느낀 천진펑은 2005년 12월에 그간의 미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먼저 일본의 라쿠텐 이글스팀으로 테스트를 받으로 가게 되지만 라쿠텐 감독의 눈에 들지 않아서 결국 타이완에서의 지명 1차 1순위가 된 라뉴 베어즈팀과 계약을 체결하여 영구 귀국을 하게 됩니다. 당시의 계약 조건은 3년간 총 3,000만 위엔(TWD: 현재 한화로 약 12억 3천만원)로 사상 최고의 계약금 액수였고, 대만 출신 선수로서는 첫 번째로 리그에서 다년 계약을 하게되는 선수가 됩니다. (새로운 계약 갱신에 관한 뉴스<-클릭)


                      <천진펑의 역대 넘버10 홈런 영상(웨이라이스포츠)>

지난 3년간 CPBL에서의 스탯

연도 소속팀 번호 G 타수 타점 득점 H 2H 3H HR BB SO S 장타율 타율 
2006 LaNew 52 91 344 81 76 109 21 0 21 49 72 20 0.561 0.317
2007 LaNew 88 301 66 70 115 13 3 26 66 50 11 0.704 0.382
2008 LaNew 66 240 70 52 88 17 2 16 33 53 4 0.654 0.353

라뉴팀이 CPBL챔피언의 자격으로 참가한 제2회 아시안시리즈(당시 코나미컵)에서 출중한 타격을 뽐내면서 한국과 일본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고, 그래서 다시 일본 프로야구팀 오릭스 버팔로스의 스카웃 요청을 받지만 완곡하게 거절하고 CPBL을 위해서 뛰고 싶다고 하여 더 큰 환영을 받기도 했었죠. 아무튼지 이 천진펑 선수는 대만의 야구인 중에서도 최고의 사랑을 받는 선수입니다. 인기면에서나 인지도 면에서는 현재의 왕지엔민 선수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 있으나 왕지엔민 선수는 약간의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 천진펑 선수는 누구나가 스스럼없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런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진펑선수의 버블헤드인형(사진 Philippe_Lin)


한국으로 따지자면 양준혁 선수와도 같은 급(기록이나 다른 조건들이 아닌 단순히 팬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폭을 따졌을 때를 말합니다.)의 선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1977년 생이니 한국 나이로 이제 33살이 되었나요? 올 시즌 라뉴베어즈와 다시 3년간의 다년 계약3003만 위엔(TWD; 한화로 12억3천만원)이고, 월 급여는 83만4천 위엔(TWD; 한화로 약 3,500만원 정도)인 계약을 맺어 향후 3년간 더 리그에서 중심타자로 활약 하겠네요. 한마디로 대만 프로 야구계의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통이 7-Eleven 라이온즈의 중심 타자인 천롄홍이 친형입니다.


 <2007>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만-일본전 다르빗슈를 상대로 투런포를 날리는 천진펑
 

자료:金石堂인터넷서점

                                      <'타이완거포 천진펑' 타이완의 文經출판사에서 발행한 책>

자료는 타이완 위키, 타이완 야후, 타이완 구글, LA다저스 홈페이지 등에서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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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장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첫 번째로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대만 출신의 야구 선수이자 현 메이져리거인 왕지엔민(王建民) 현 뉴욕 양키즈 1군 선발 투수부터 소개하려 합니다.

왕지엔민 투구모습/사진제공 anrules


왕지엔민(王建民). '왕쳉밍', 왕젠밍', '왕첸밍' 등 중구난방으로 아무렇게나 읽혀졌던 선수입니다. 대만어의 여권에 알파벳처럼 쓴 표기법을 그대로 읽은 것인데요, 그 표기법은 영어가 아니기에 그대로 읽으면 발음이 달라지고 그렇게 되면 전혀 다른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지엔민(이하 한자병기없이 이름만 나열)'이라고 읽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발음입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수많은 선수들이 소개될 때도 똑같이 표기하겠습니다.

이 선수는 1980년 3월 31일생이고 신체조건은 193cm, 102kg입니다. 우투우타에 최고 구속은 155km(2004년 마이너리거 일때;항간에 99마일까지 나왔다고 전해졌는데 팬심의 발로인듯...)까지 찍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대만의 타이난시(臺南市)에서 태어난 왕지엔민은 타이베이 체대를 거쳐 2000년 6월 5일 뉴욕 양키즈팀과 자유 계약 신분으로 계약을 하여 진출합니다. 당시 계약금은 201만 달러(계약금 190만 달러+특별장학금 10만 달러+본가 지원금 1만달러)로 계약을 하여 미국으로 진출하였고, 현재 연봉 500만 달러로 작년 말에 연봉조정협상에서 올 시즌 연봉을 1년 계약 했습니다.

결혼식 당시의 사진

왕지엔민의 첫사랑이라고 알려진 우지아링(吳嘉姈)과 4년의 연애 후에 2003년 12월 7일에 결혼하였습니다.

올해(2009년) 6월에 아빠가 됩니다. 여권에는 'Chien-Ming Wang'이라고 적혀 있어서 한국의 신문 기자들이 '왕치엔밍'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발음은 '왕지엔민'입니다.







이 선수의 대만 대표경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1991년 제 9회 IBA 소년 연식야구 월드컵 대표

1997년 제17회 아시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대표
1999년 제 8회 네덜란드항배 야구대회 대만 대표
2000년 대양배 4개국 5강전 대만 대표
2002년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대만 대표
2003년 제23회 아시아 야구월드컵 대만 대표
2004년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대만 대표
2005년이후 메이저에 올라 구단불허로 대표참가못함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대만 대 일본: 왕지엔민의 투구>

약 6년 간의 마이너 생활을 거쳐 2005년 처음으로 메이져리그로 올라간 왕지엔민은 많은 기록을 세우고 대만의 야구 영웅이자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그가 19승을 올리며 활약한 해에 세운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시안 투수로는 최다승인 19승(박찬호가 18승이죠.)을 올렸고, 땅볼 유도의 수가 407개로 메이져리그 1위에 올랐고, 병살 유도는 메이져리그 2위인 33개. 피홈런갯수는 12개로 150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가운데 가장 낮은 비율입니다. 76%의 승률로 당시 메이져리그 3위를 기록하였고, MOM은 15회에 선정되었으며, MVP투표에서 33명 중 6명의 투수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혔는데, 실제 투표에서는 겨우 2점 만 얻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TYIB(This Year in Baseball Award)에서 당당 최고의 선발투수로 꼽히면서 수상을 했었지요.

 
<뉴욕 양키즈에서의 영상들:유튜브>

아무튼 왕지엔민선수는 대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선수로서 그 유명을 떨쳤는데요, 어린 시절에 야구보다는 농구를 좋아했고 그래서 학교(총슈에 초등학교.崇學國小)농구부에 들었는데 당시 야구부와 농구부를 겸임하던 선생님에 의하여 야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자질을 알아본 선생님은 바로 투수 훈련을 시켜서 투수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엔싱중학교(建興國中)에서 쟝시지에(張錫杰)코치를 만나 대성 을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여러가지 기초를 닦고 기술을 연마한 시기였는데 당시 같은 연배로 활동하던 선배들은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뤄진롱(羅錦龍) 등이 있는데 후에 모두 미국으로 진출하여 같은 길을 가게되죠.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통의 '롱공 야구단(榮工棒球)'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미 신체적으로 키는 190cm으로 커졌고, 몸무게도 90kg으로 장성하여 건장한 체격으로 자라났죠. 청소년야구 시절 150km 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건장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해외 스카우터 등의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1997년
롱공 야구팀 소속으로 전국 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당시 상대 팀과의 경기 중에 심판의 존에 불만을 품고 양 팀의 응원단들이 폭력적으로 난동이 있었지만 왕지엔민은 태연하게 마운드에서 흔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함으로서 캐나다에서 열렸던 IBA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만 대표로 나가게 됩니다. 그 때에 여러가지 수속 등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호적지를 타이난(台南)에서 타이베이(台北)로 옮기던 와중에 왕지엔민은 지금의 부모가 낳은 친자가 아니고 자신이 양자로 입적된 사실이 밝혀진 일이 있습니다. 원래는 세째 삼촌의 아들이었는데 지금의 아버지가 아들이 없어서 대가 끊길 것을 걱정하여 왕지엔민을 양자로 입적하게 된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죠.

왕지엔민을 포함한 다양한 버블헤드인형


이 일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방황을 하여 잠시 야구를 그만 두었던 적이 있는데, 결국 이 일은 나중에 대만의 집요한 언론들에 의하여 밝혀지면서 왕지엔민과 대만의 언론들과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 졌습니다. 아무튼 코치의 설득으로 방황을 끝내고 다시 야구를 시작한 왕지엔민은 타이베이 체육대학(台北體院)에 진학을 하여 80년대 초반 일본 난카이 호크스에서 야구생활을 하였던 코치 가오잉지에(高英傑)의 지도를 받습니다.

그의 1년 선배이자 당시 포크볼의 왕자로 불렸던 차이중난(蔡仲南:싱농 불즈에서 활약)으로부터 포크볼과 코치로부터 싱커를 배웠고, 싱커를 잘 갈고 닦아 잘 연마하여 저신의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왕지엔민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계기가 된 것은 2000년의 대양배 4개국 5강(대만 두 팀) 초청대회(大揚盃四國五強成棒邀請賽)에서였습니다.


호주와 일본, 한국, 그리고 대만의 두 팀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왕지엔민은 151km의 강속구와 적절한 변화구를 잘 섞어 던지면서 많은 활약을 하여 국제 스카우터들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 대회를 계기로 대만의 프로팀 싱농불즈 뿐만 아니라 일본의 쥬니치와 미국의 시애틀 매리너스, 보스톤 레드삭스, 아틀란타 브레이브스, LA 다저스, 뉴욕 양키즈, CA 에인절스, 콜로라도 록키즈, 아리조나 디벡스 구단 등에서 경쟁적이고 매우 적극적으로 계약을 추진하게 됩니다. 일단 신체적인 조건이 아주 좋았고, 강견에 컨트롤도 안정적이면서 어깨를 잘 보존하였던 것이 좋은 점수를 받아 많은 구단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메이져리그 구단들이 경쟁적으로 스카우트전에 뛰어들게 되면서 계약금도 올라갔지요.

아무튼 원래 아틀란타 브레이브스에서 양키즈보다 많은 돈(230만 달러)을 불렀지만 왕지엔민의 어릴적 우상(Roger Clemens)있는 뉴욕 양키즈 팀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에이전트와 당시 협회국 사람들도 양키즈와의 계약을 최우선으로 하고 나머지 팀들을 생각하는 원칙을 세웠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런 덕분에 2000년 5월 6일에 뉴욕 양키즈 구단과 201만 달러의 정식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왕지엔민 선수가 박찬호 선수보다 많은 계약금을 받게 된 것은 그만큼 관찰하던 스카우터 들이 많았기도 하였고 많은 구단이 경쟁이 되어서 그렇습니다.(당시의 대만 시장에서 많은 수의 메이져리그 스카우터들이 유망주를 발견하기위해 활동을 하였던 영향도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군대를 미필한 왕지엔민은 일반적 방법으로는 외국을 진출할 수 없었지만 우수한 학생신분으로 국위선양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결국 미국 유학생 신분이 되어 진출하게 되지요.

그 후 마이너에서 각고의 노력을 하였기도 했지만 부상 등의 여파로 결국 6년 만에 메이져리그에 올라가게 됩니다. 2005년 4월 30일에 양키즈 홈경기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팀을 상대로 첫 등판을 합니다. 대만 야구인 사상 뉴욕 양키즈 소속으로는 처음 등판하게 되는 것이지요.

대만 선수 출신으로는 제 3호 메이져리거가 된 것입니다.[(제 1호는 천진펑(陳金鋒), 2호는 차오진후이(曹錦輝)선수입니다.] 그러나 그 해에 양키즈가 플레이 오프 시리즈에 나가면서 결국 디비전 시리즈에 나가게 되었고, 대만 출신으로는 첫 번째로 디비전 시리즈 등판의 영광을 차지 하였습니다. 

아무튼 인상 깊은 활약을 보였던 왕지엔민은 2006년 싱킹 패스트볼(Sinking Fastball)과 싱커, 포크볼 등을 주무기로 양키즈 선발진의 한축을 담당하여 땅볼 유도의 제왕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 해의 성적은 19승 6패로 미네소타 트윈즈의 요한 산타나와 함께 최다승 투수로 등극을 하였습니다.(박찬호의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인 18승을 깬 것으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그 후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상대로 첫 승으로 거두기도 했었습니다.

왕지엔민의 MLB 통산기록 / NY홈페이지

 
2007년에도 19승 7패로 에이스급으로 컸지만 2008년에 부상 등으로 개막전 선발에서 빠졌고, 회복 후에는 2연패에 빠지기도 하는 등의 부진을 겪었으나 그 해 5월 타임지의 2007년 전세계 100인의 영향 인물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2007년 연봉조정 협상에서 400만 달러로 조정을 받았고 작년에는 다시 500만 달러의 연봉 조정 협상을 가졌습니다. 올해야말로 고액 장기계약을 위해 어느 해보다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길고 긴 부상의 터널에서 회복되어 다시 얼마만큼 활약을 보여줄 지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자료는 타이완 위키, 타이완 야후, 타이완 구글, 왕지엔민 팬페이지(www.chien-ming.com), 그리고 뉴욕 양키즈 홈페이지 등에서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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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출신으로 MLB, NPB등의 해외리그와 자국의 CPBL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조사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 코너는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참여도 가능합니다. 선택은 무작위입니다. 고정된 시간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냥 제가 맘 내키는 시간에 올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꾸준히 계속 된다는 거~~

첫 번째 타자로 왕지엔민(王建民) 선수가 무난하겠죠? 워낙 잘 알려진 선수이기도 하고 대만 야구를 대표하는 얼굴이기도 합니다. 마치 한국의 박찬호 선수처럼 말이죠...

부정기적이긴 하나 그래도 일주일에 한 명씩 정도는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도 저지만 궁금하신 선수가 있다면 언제든지 방명록이나 메일로 보내주세요. 많이 요청한 선수에 한해서 우선 순위로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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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커뮤니티인 '이닝'에서 설문조사된 기획 희망 야구인물입니다.

MC유진
왕젠밍과 더불어서 '이름 형제'뻘인 '장젠밍'
박찬호의 공을 아무렇지도 않게 홈런으로 연결시킨 '첸친펑'
콜로라도에서 몸담았던 '차오 친 후이'
일단 요 셋입니다.
2009-01-13
01:01:05
 


퓨처플로
다저 숏 유망주 '친렁후'가 궁금하네요 어떤선수일지.. 메이저리그 야구카드를 수집하는데요즘 저 선수 카드가 참 많이 보이더라구요 ㅎㅎ 2009-01-13
01:10:32
 


너무추워

저는 펑정민 선수
이 선수 해외진출 의사가 없나요?
타율보면 완전 야구게임 수준이던데...
아 그리고 왕지엔민 선수 병역상황이 궁금합니다.

2009-01-13
01:36:23
 


헌터죠지
좋은 기획 감사드립니다.

저는 좀 어려운 부탁이기는 한데 오래된 스타 부터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원조 아시아의대포 루밍쓰

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은메달의 주역 궈리지엔푸 투수

부터 소개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2009-01-13
07:09:28
 


섬지킴이
저는 저번에도 댓글을 달았었는제 장젠밍선수를 올려주셨으면 하네요. ^^ 감사합니다. ㅋ 2009-01-13
09:45:39
 


杉內俊哉
전 한신의 '린웨이추'에 대해 궁금합니다. 2009-01-13
10:36:32
 


대치동갈 메기

일단 여기에 오른 이름은 다 쓰도록 하겠습니다.
1]왕지엔민
2]천진펑
3]차오진후이
4]후진롱
5]펑정민
6]뤼밍츠呂明賜
7]궈리지엔푸
8]쟝지엔밍
9]린웨이주

음...다들 제각각의 중국어도 아닌 이름으로 적어주셔서 당황했습니다만 알겠습니다. 

2009-01-13
11:27:1

왕지엔민, 천진펑, 차오진후이, 후진롱, 펑정민,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 장지엔밍, 린웨이주, 쟝타이산, 천용지, 장승용, 장쯔지아 까지 마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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