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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야구 이야기/대만 야구선수들

[기획시리즈]대만의 야구선수들 (7) 쟝타이산(張泰山)

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e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C.P.B.L의 대표적인 홈런왕 쟝타이샨(張泰山)

타석에 들어선 쟝타이산(張泰山)/사진제공 ⓒ Chrischang

쟝타이산(張泰山)은 타이완의 타이동현(台東縣) 출신으로 1976년생(용띠/현재 33세)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입니다.

174cm/95kg으로 약간 뚱뚱한 편이라고 해야되나? 아무튼 쟝태산은 3루와 1루, 그리고 지명타자로 활약하고 있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3루수였습니다. 지금은 1루와 지명타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태산이라는 이름으로 별명이 삼림왕자(森林王子)가 되었고, 타이완 아미족(阿美族) 원주민출신 선수입니다.

출신은 타이동현(台東縣)이고 타이위엔 초등학교(台東縣 泰源國小)에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중학교 때 타이완 남부의 야구명문인 메이허 중,고교(美和中學)로 진학을 하였고, 계열 고등학교 2학년 때 길거리에서 패싸움을 하여 야구부에서 퇴부조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강타자로서의 재능을 알아 본 청소년 대표 감독이 대표로 선발하여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후에 타이완을 대표하는 강타자로 자라나서 현재까지 C.P.B.L 통산 최다 홈런왕으로 계속 기록을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성인이 된 쟝타이산은 항상 대표 팀의 지주로서 중요한 활약을 많이 하였습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2001년 야구월드컵, 그리고 2003년 아시아챔피언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 그리고 2005년 코나미컵과 2006년 WBC 대표와 2007년 대륙간 컵대회와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 등 거의 모든 대회에서 타이완의 국가대표 중심타자로 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이 끝난 후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하여 베이징으로 출국을 하기 전에 바로 도핑 테스트에 적발이 되어 본선 무대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1년동안 자격정지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본인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갖기 위한 방편으로 복용한 임신 관련 약물이었다고 변명을 하였지만, 국제기구에서 금한 금지약물 성분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요. 

[당시 관련 기사보기]

쟝타이산과 아내 우징이(吳靜宜)


당시 염원의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는 타이완대표팀으로서는 쟝타이산이 3루에서 빠진 것이 아주 큰 타격이 되었습니다. 타격에서는 당연히 이루말할 수도 없고, 수비에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던 그가 약물복용으로 빠지게 되면서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엇박자의 타선과 엉망인 수비 조직력으로 결국 올림픽에서 숙적인 중국에게마져 져버리게 되면서 쟝타이산에게 엄청난 여론의 비난과 책임론에 휩싸이게 됩니다.

본인 말로는 그 당시에 죽고 싶었다고 하면서 은퇴도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만 모두 아내의 헌신적인 권유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에서도 밝혔습니다.

쟝타이산의 리그종적

가장 젊은 나이로 프로야구 선수가 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쟝타이산(병역을 면제받고 고졸 나이에 프로에 입단한 최초의 선수)는 1995년 당시 만 18세의 나이로 스바오이글스(時報鷹) 팀의 특별보충선수로 뽑혔습니다만 바로 팀이 그 해 해산이 되고나서 다시 무직자가 되었서, 바로 병역 문제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쟝타이산은 당시 84kg이던 체중을 군대 면제 기준이 되는 109kg까지 인위적으로 찌게 만들어서 군대에서 면제가 된 후, 바로 다시 85kg으로 살을 뺐습니다. 이 문제로 당시 많은 논란과 함께 비난을 받았습니다만 어쨌든 그 후에 비난에 휩싸이고 있을 때 당시 웨이취엔 드레곤즈 감독이던 쉬성밍(徐生明)씨의 강력한 요청으로 다시 그 팀의 연습생으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에 19살의 쟝타이산은 프로야구 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등록된 선수가 됩니다.  프로 7년 째인 1996년에 가장 나이어린 프로야구 선수가 많은 활약(통이 라이온즈 팀의 슈퍼 신인인 우쥔량(吳俊良)과 신인왕을 두고 경쟁을 벌이게 되고)을 한 모습을 본 웨이취엔 팀의 궈회장(郭董事長)은 리그 중간에 당시 월급 6만 위엔에서 파격적으로 두 배인 12만 위엔(현재의 월급은 33.1만 위엔/현재 환율로 한화 약 1,270만원)으로 올려주었습니다.

1998년에 수 차례의 월간 MVP상 획득과 연도 MVP상, 그리고 골든 글러브 등을 수상하면서 리그에서 쟝타이산은 공수를 겸비한 강타자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999년에 웨이취엔 드레곤즈 팀이 해체되고 나서 2000년부터 싱농불스 팀으로 옮겨 활약을 하였고, 2003년에는 CPBL 사상 최초로 개인 100홈런과 100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고, 같은 팀의 황중이(黃忠義), 정쟈오싱(鄭兆行)등과 함께 싱농불스의 삼번도(三番刀) 타선(위의 세 선수가 모두 타이완 원주민 출신이라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습니다.)으로 불리게 됩니다. 

당시 어린 나이(겨우 26살)에 머리 숱이 빠지게 되면서 여러 우스갯소리로 리그 야구 심판인 쉬쟌위엔(徐展元)은 쟝타이산이 홈런을 치면 그의 머리를 보고, 또 날라가는 공을 보면서 '이젠 돌아오지 않는 (공)머리가 되었다'라고 그의 머리 숱이 없어짐을 비유하면서 농담을 하였고, 슝디 팀의 린밍시엔(林明憲)도 농담으로 머리숱이 없는 사람들을 농담으로 타이완 빛나리 야구부대의 부대장은 자신이고 대장은 바로 쟝타이산이라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2006년에는 본래 늘 맡아보던 3루수를 그만두고 1루와 외야로 전환을 꾀합니다. 그리고 그 해 타이완 프로 역사상 100홈런과 100도루 외에 다시 1000안타를 최초로 기록한 선수가 됩니다.(2006년 5월 4일에는 162개 째 홈런을 기록하여 당시 최고이던 린중치우(林仲秋)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고, 바로 이틀 후 163호를 때려내면서 타이완 최고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CPBL 14년인 2003년에 28개의 홈런과 22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타이완 역사상 최초로 20-20을 달성한 사람이 쟝타이산입니다.
  
                      (쟝타이산의 200호 홈런 당시 영상/유튜브 제공)

쟝타이산이 세운 기록의 면면을 살펴보면 19세에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가장 젋은 기록을 세웠고, 한 게임에서 두개의 2루타와 세 개의 홈런을 때려낸 기록이 있고, 현재까지 최다 홈런(현재까지 214개)을 때린 선수이고, 이제는 1233게임으로 최다게임 출장기록 4위에, 5094타석으로 전체 2위, 그리고 4593타순으로 전체 2위, 918타점으로 전체 1위이고, 760득점으로 공동 1위,  1423안타로 전체 2위(1위는 은퇴한 황중이 선수의 1582안타)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기록 등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게임에 나가면 모든 것이 기록이라고 할 정도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 후 늦은 나이에 국립타이완 체육대학에 진학(현재 재학 중)을 하여 B급 지도자 라이센스를 취득하여, 훗날의 지도자 생활을 위한 준비를 하였고, 외적으로는 타이완 원주민 스포츠 발전협회의 부이사장과 타이완 프로야구 선수협회의 이사로 임명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쟝타이산 선수의 기록


타이완의 유명한 야구 명문가 집안인 타이동 양지아(台東陽家)의 구성원 중 한 명이 바로 쟝타이산입니다. 가계도의 야구 선수를 보면 대표적으로만 추려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잠시 살펴보면 천즈위엔(陳致遠:슝디 엘리펀츠의 외야수이자 국가대표 선수)과 천즈펑(陳致鵬:슝디 엘리펀츠의 외야수)의 외삼촌이고, 가오펑니엔(高豐年:전 중신웨일즈와 싱농 불스 팀의 선수)의 외종 사촌형이면서, 천용순(陳勇順:예전 TML 당시 니엔다이띠엔공 팀[年代雷公隊]의 포수)의 내종 사촌동생이 됩니다.

아무튼 쟝타이산은 2009년에도 윌튼 베라스(威納斯), 씨에지아시옌(謝佳賢)과 함께 '매우 위험한 타선'이라고 불리운데다가, 거기에 제 2회 WBC 대회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 한 린이취엔(林益全)이 중심타선에 가세하여 '정말 매우 위험한 타선'으로 불리우는 싱농불스 팀의 중심타선의 한 축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