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e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C.P.B.L의 대표적인 홈런왕 쟝타이샨(張泰山)

타석에 들어선 쟝타이산(張泰山)/사진제공 ⓒ Chrischang

쟝타이산(張泰山)은 타이완의 타이동현(台東縣) 출신으로 1976년생(용띠/현재 33세)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입니다.

174cm/95kg으로 약간 뚱뚱한 편이라고 해야되나? 아무튼 쟝태산은 3루와 1루, 그리고 지명타자로 활약하고 있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3루수였습니다. 지금은 1루와 지명타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태산이라는 이름으로 별명이 삼림왕자(森林王子)가 되었고, 타이완 아미족(阿美族) 원주민출신 선수입니다.

출신은 타이동현(台東縣)이고 타이위엔 초등학교(台東縣 泰源國小)에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중학교 때 타이완 남부의 야구명문인 메이허 중,고교(美和中學)로 진학을 하였고, 계열 고등학교 2학년 때 길거리에서 패싸움을 하여 야구부에서 퇴부조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강타자로서의 재능을 알아 본 청소년 대표 감독이 대표로 선발하여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후에 타이완을 대표하는 강타자로 자라나서 현재까지 C.P.B.L 통산 최다 홈런왕으로 계속 기록을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성인이 된 쟝타이산은 항상 대표 팀의 지주로서 중요한 활약을 많이 하였습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2001년 야구월드컵, 그리고 2003년 아시아챔피언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 그리고 2005년 코나미컵과 2006년 WBC 대표와 2007년 대륙간 컵대회와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 등 거의 모든 대회에서 타이완의 국가대표 중심타자로 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이 끝난 후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하여 베이징으로 출국을 하기 전에 바로 도핑 테스트에 적발이 되어 본선 무대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1년동안 자격정지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본인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갖기 위한 방편으로 복용한 임신 관련 약물이었다고 변명을 하였지만, 국제기구에서 금한 금지약물 성분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요. 

[당시 관련 기사보기]

쟝타이산과 아내 우징이(吳靜宜)


당시 염원의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는 타이완대표팀으로서는 쟝타이산이 3루에서 빠진 것이 아주 큰 타격이 되었습니다. 타격에서는 당연히 이루말할 수도 없고, 수비에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던 그가 약물복용으로 빠지게 되면서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엇박자의 타선과 엉망인 수비 조직력으로 결국 올림픽에서 숙적인 중국에게마져 져버리게 되면서 쟝타이산에게 엄청난 여론의 비난과 책임론에 휩싸이게 됩니다.

본인 말로는 그 당시에 죽고 싶었다고 하면서 은퇴도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만 모두 아내의 헌신적인 권유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에서도 밝혔습니다.

쟝타이산의 리그종적

가장 젊은 나이로 프로야구 선수가 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쟝타이산(병역을 면제받고 고졸 나이에 프로에 입단한 최초의 선수)는 1995년 당시 만 18세의 나이로 스바오이글스(時報鷹) 팀의 특별보충선수로 뽑혔습니다만 바로 팀이 그 해 해산이 되고나서 다시 무직자가 되었서, 바로 병역 문제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쟝타이산은 당시 84kg이던 체중을 군대 면제 기준이 되는 109kg까지 인위적으로 찌게 만들어서 군대에서 면제가 된 후, 바로 다시 85kg으로 살을 뺐습니다. 이 문제로 당시 많은 논란과 함께 비난을 받았습니다만 어쨌든 그 후에 비난에 휩싸이고 있을 때 당시 웨이취엔 드레곤즈 감독이던 쉬성밍(徐生明)씨의 강력한 요청으로 다시 그 팀의 연습생으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에 19살의 쟝타이산은 프로야구 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등록된 선수가 됩니다.  프로 7년 째인 1996년에 가장 나이어린 프로야구 선수가 많은 활약(통이 라이온즈 팀의 슈퍼 신인인 우쥔량(吳俊良)과 신인왕을 두고 경쟁을 벌이게 되고)을 한 모습을 본 웨이취엔 팀의 궈회장(郭董事長)은 리그 중간에 당시 월급 6만 위엔에서 파격적으로 두 배인 12만 위엔(현재의 월급은 33.1만 위엔/현재 환율로 한화 약 1,270만원)으로 올려주었습니다.

1998년에 수 차례의 월간 MVP상 획득과 연도 MVP상, 그리고 골든 글러브 등을 수상하면서 리그에서 쟝타이산은 공수를 겸비한 강타자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999년에 웨이취엔 드레곤즈 팀이 해체되고 나서 2000년부터 싱농불스 팀으로 옮겨 활약을 하였고, 2003년에는 CPBL 사상 최초로 개인 100홈런과 100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고, 같은 팀의 황중이(黃忠義), 정쟈오싱(鄭兆行)등과 함께 싱농불스의 삼번도(三番刀) 타선(위의 세 선수가 모두 타이완 원주민 출신이라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습니다.)으로 불리게 됩니다. 

당시 어린 나이(겨우 26살)에 머리 숱이 빠지게 되면서 여러 우스갯소리로 리그 야구 심판인 쉬쟌위엔(徐展元)은 쟝타이산이 홈런을 치면 그의 머리를 보고, 또 날라가는 공을 보면서 '이젠 돌아오지 않는 (공)머리가 되었다'라고 그의 머리 숱이 없어짐을 비유하면서 농담을 하였고, 슝디 팀의 린밍시엔(林明憲)도 농담으로 머리숱이 없는 사람들을 농담으로 타이완 빛나리 야구부대의 부대장은 자신이고 대장은 바로 쟝타이산이라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2006년에는 본래 늘 맡아보던 3루수를 그만두고 1루와 외야로 전환을 꾀합니다. 그리고 그 해 타이완 프로 역사상 100홈런과 100도루 외에 다시 1000안타를 최초로 기록한 선수가 됩니다.(2006년 5월 4일에는 162개 째 홈런을 기록하여 당시 최고이던 린중치우(林仲秋)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고, 바로 이틀 후 163호를 때려내면서 타이완 최고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CPBL 14년인 2003년에 28개의 홈런과 22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타이완 역사상 최초로 20-20을 달성한 사람이 쟝타이산입니다.
  
                      (쟝타이산의 200호 홈런 당시 영상/유튜브 제공)

쟝타이산이 세운 기록의 면면을 살펴보면 19세에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가장 젋은 기록을 세웠고, 한 게임에서 두개의 2루타와 세 개의 홈런을 때려낸 기록이 있고, 현재까지 최다 홈런(현재까지 214개)을 때린 선수이고, 이제는 1233게임으로 최다게임 출장기록 4위에, 5094타석으로 전체 2위, 그리고 4593타순으로 전체 2위, 918타점으로 전체 1위이고, 760득점으로 공동 1위,  1423안타로 전체 2위(1위는 은퇴한 황중이 선수의 1582안타)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기록 등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게임에 나가면 모든 것이 기록이라고 할 정도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 후 늦은 나이에 국립타이완 체육대학에 진학(현재 재학 중)을 하여 B급 지도자 라이센스를 취득하여, 훗날의 지도자 생활을 위한 준비를 하였고, 외적으로는 타이완 원주민 스포츠 발전협회의 부이사장과 타이완 프로야구 선수협회의 이사로 임명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쟝타이산 선수의 기록


타이완의 유명한 야구 명문가 집안인 타이동 양지아(台東陽家)의 구성원 중 한 명이 바로 쟝타이산입니다. 가계도의 야구 선수를 보면 대표적으로만 추려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잠시 살펴보면 천즈위엔(陳致遠:슝디 엘리펀츠의 외야수이자 국가대표 선수)과 천즈펑(陳致鵬:슝디 엘리펀츠의 외야수)의 외삼촌이고, 가오펑니엔(高豐年:전 중신웨일즈와 싱농 불스 팀의 선수)의 외종 사촌형이면서, 천용순(陳勇順:예전 TML 당시 니엔다이띠엔공 팀[年代雷公隊]의 포수)의 내종 사촌동생이 됩니다.

아무튼 쟝타이산은 2009년에도 윌튼 베라스(威納斯), 씨에지아시옌(謝佳賢)과 함께 '매우 위험한 타선'이라고 불리운데다가, 거기에 제 2회 WBC 대회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 한 린이취엔(林益全)이 중심타선에 가세하여 '정말 매우 위험한 타선'으로 불리우는 싱농불스 팀의 중심타선의 한 축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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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

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장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두 번째 기획 시리즈의 선수는 타이완의 대표적인 강타자 '천진펑(陳金鋒)'입니다. 별로 관심이 없던 분들이라도 이 천진펑 선수의 이름은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겁니다.

천진펑(陳金鋒) 타이완의 남부 타이난현(台南縣)에서 태어난 그는 별명이 펑즈(鋒仔:날카로움을 뜻함)였다가 나이가 들면서 펑거(鋒哥:펑형)로 불리우고, 또는 타이완거포(台灣巨砲)라고도 불립니다. 천진펑의 어머니 루어쑤츠(羅素慈:)는 타이완 남부의 시라야(Siraiya)족 태생의 원주민이고 아버지 천칭위엔(陳慶源)은 시라야족과 한족의 혼혈입니다. 천진펑은 시라야족 4/3의 혈통을 가지고 타이난현(台南縣)의 산화(善化)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1977년 10월 28일생이고 183cm/90kg의 건장한 체격입니다. 젊었을 때는 외야수였으나 현재는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고 있습니다. 산화초등학교 야구부(善化國小少棒隊)와 타이난시의 푸싱중학교(復興國中), 타이베이현의 중화고등학교(中華中學)를 거쳐 합작금고 야구단(合作金庫棒球隊), 루광 야구단(陸光棒球隊)을 거치면서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여러차례 청소년 대표와 성인야구 대표를 두루두루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 33회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Baseball World Cup)에서 5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리면서 홈런왕이 되었고, 그 때의 활약으로 메이져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끌면서 총 68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LA 다저스와 계약 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후 마이너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후 처음 맞는 A ADV리그에서 무려 31개의 홈런(도루도 30개로 30-30을 기록)을 날리면서 기대를 모았고, 2000년에는 가을리그를 거쳐 꾸준한 활약을 보였기에 그 해 다저스가 뽑은 잠재력이 큰 유망주 1위에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2001년이 천진펑으로서는 타이완의 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던 
한 해 였습니다. 연말에 타이완에서 열린 제 34회 세계 야구선수권(당시의 영문 이름 World Basaball Championship: 현재는 Baseball World Cup으로 이름을 바꾸었죠) 대회 3-4위전 일본전에서 천진펑은 두 개의 홈런을 날리면서 3:0으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타이완의 팬들을 열광시켰고, '타이완거포(台灣巨砲)'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전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당시 선발이던 쟝즈지아(張誌家)선수는 무실점으로 일본전을 틀어막고 승리투수가 되면서 그 때의 활약에 힘입어 일본리그(NPB)로 진출을 하였습니다......

2004년에는 아테네 올림픽 야구 대 일본전에서 전 요미우리의 에이스이자 올 시즌 메이져리거가 된 '우에하라'의 공을 받아쳐 3점 홈런포를 날려 일본을 격파할 뻔(당시 게임은 10회 연장전에서 일본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이닝의 돌쇠님과 헌터죠지님이 지적해주신 사항입니다.)하는데 수훈을 세우게 되었고 그런 연유로 '일본킬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그 전과 후에도 일본과 상대할 때마다 늘 좋은 성적을 내었던 것이 원인입니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타이완 대 일본전 하이라이트>

천진펑 선수의 국가대표 이력(정식 국제대회급만 나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989年  제07회  세계소년연식야구선수권대회
1990年  제44회  윌리엄스포터배 세계리틀야구선수권대회
1995年  제1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1996年  제02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1997年  제1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Asian Baseball Championship)(성인 첫 출장)
1998年  제33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Baseball World Cup)
1998  제13회  방콕아시안게임
1999年  제20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Asian Baseball Championship)
2001年  제34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Baseball World Cup)
2003年  제2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Asian Baseball Championship)
2004年  제28회  아테네올림픽
2006年  제15회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2007年  제3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Baseball World Cup)
2007年  제2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Asian Baseball Championship)
2008年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천진펑 선수의 통산 미국 스탯

소속 등급 G 타수 타점 득점 H 2H 3H HR BB K S 장타율 타율 
1999 LA 다저스 A ADV 131 510 123 98 161 22 10 31 75 123 30 0.580 0.316
2000 LA 다저스 AA 133 516 67 66 143 27 3 6 61 131 23 0.376 0.277
2000 Peoria Javelinas 가을리그 20 71 8 9 20 2 4 1 4 18 4 0.464 0.282
2001 LA 다저스 A ADV 62 235 41 38 63 15 3 5 36 56 2 0.421 0.268
2001 LA 다저스 AA 66 224 50 47 70 16 2 17 47 65 5 0.629 0.313
2001 Phoenix Desert Dog 가을리그 19 65 14 10 22 6 0 4 5 20 3 0.364 0.314
2002 LA 다저스 AAA 137 511 84 90 145 26 4 26 59 160 1 0.503 0.284
2002 LA 다저스 MLB 3 5 0 1 0 0 0 0 1 3 0 0.000 0.000
2003 LA 다저스 AAA 133 474 86 84 133 30 5 26 62 106 6 0.530 0.281
2003 LA 다저스 MLB 1 1 0 0 0 0 0 0 0 0 0 0.000 0.000
2004 LA 다저스 AAA 81 308 65 59 89 19 6 20 38 78 6 0.593 0.289
2004 LA 다저스 MLB 8 8 0 1 0 0 0 0 2 3 0 0.000 0.000
2005 LA 다저스 AAA 87 317 63 59 88 20 2 15 39 82 3 0.495 0.278
2005 LA 다저스 MLB 7 8 2 1 2 0 0 0 0 4 0 0.250 0.250
合計 LA 다저스 A ADV 193 745 164 136 224 37 13 36 111 179 32 0.530 0.301
合計 LA 다저스 AA 199 740 117 113 213 43 5 23 108 196 28 0.453 0.312
合計 LA 다저스 AAA 438 1610 298 292 455 95 17 87 198 426 16 0.525 0.283
合計 LA 다저스 MLB 19 22 2 3 2 0 0 0 3 10 0 0.091 0.091

미국으로 건너간 후 루키 리그와 2A를 거쳐 트리플A 에서 가장 많은 선수 생활을 하였고, 결국 2002년 9월 14일에 드디어 메이저리그로 승격이 됩니다. 타이완 출신으로는 처음(2호는 차오진후이, 3호는 왕지엔민)으로 메이져리거가 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됩니다. LA 다저스와 계약 후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장장 4년 째 되던 해에 승격이 되는데요, 아래 표의 기록에서도 나와 있는데 메이져리그에서의 성적은 통산 19 게임에 나와서 22 타수 2 안타(9 푼1 리) 3 득점 3 볼넷 10 삼진으로 영 아니올시다 였습니다. 그 후로 두 세너번 더 메이져로 승격이 되었지만 미미한 활약으로 잠시 있다가 다시 마이너로 내려가곤 하는 미국에서의 생활에 한계를 느낀 천진펑은 2005년 12월에 그간의 미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먼저 일본의 라쿠텐 이글스팀으로 테스트를 받으로 가게 되지만 라쿠텐 감독의 눈에 들지 않아서 결국 타이완에서의 지명 1차 1순위가 된 라뉴 베어즈팀과 계약을 체결하여 영구 귀국을 하게 됩니다. 당시의 계약 조건은 3년간 총 3,000만 위엔(TWD: 현재 한화로 약 12억 3천만원)로 사상 최고의 계약금 액수였고, 대만 출신 선수로서는 첫 번째로 리그에서 다년 계약을 하게되는 선수가 됩니다. (새로운 계약 갱신에 관한 뉴스<-클릭)


                      <천진펑의 역대 넘버10 홈런 영상(웨이라이스포츠)>

지난 3년간 CPBL에서의 스탯

연도 소속팀 번호 G 타수 타점 득점 H 2H 3H HR BB SO S 장타율 타율 
2006 LaNew 52 91 344 81 76 109 21 0 21 49 72 20 0.561 0.317
2007 LaNew 88 301 66 70 115 13 3 26 66 50 11 0.704 0.382
2008 LaNew 66 240 70 52 88 17 2 16 33 53 4 0.654 0.353

라뉴팀이 CPBL챔피언의 자격으로 참가한 제2회 아시안시리즈(당시 코나미컵)에서 출중한 타격을 뽐내면서 한국과 일본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고, 그래서 다시 일본 프로야구팀 오릭스 버팔로스의 스카웃 요청을 받지만 완곡하게 거절하고 CPBL을 위해서 뛰고 싶다고 하여 더 큰 환영을 받기도 했었죠. 아무튼지 이 천진펑 선수는 대만의 야구인 중에서도 최고의 사랑을 받는 선수입니다. 인기면에서나 인지도 면에서는 현재의 왕지엔민 선수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 있으나 왕지엔민 선수는 약간의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 천진펑 선수는 누구나가 스스럼없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런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진펑선수의 버블헤드인형(사진 Philippe_Lin)


한국으로 따지자면 양준혁 선수와도 같은 급(기록이나 다른 조건들이 아닌 단순히 팬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폭을 따졌을 때를 말합니다.)의 선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1977년 생이니 한국 나이로 이제 33살이 되었나요? 올 시즌 라뉴베어즈와 다시 3년간의 다년 계약3003만 위엔(TWD; 한화로 12억3천만원)이고, 월 급여는 83만4천 위엔(TWD; 한화로 약 3,500만원 정도)인 계약을 맺어 향후 3년간 더 리그에서 중심타자로 활약 하겠네요. 한마디로 대만 프로 야구계의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통이 7-Eleven 라이온즈의 중심 타자인 천롄홍이 친형입니다.


 <2007>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만-일본전 다르빗슈를 상대로 투런포를 날리는 천진펑
 

자료:金石堂인터넷서점

                                      <'타이완거포 천진펑' 타이완의 文經출판사에서 발행한 책>

자료는 타이완 위키, 타이완 야후, 타이완 구글, LA다저스 홈페이지 등에서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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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타이완 야구에 대한 전문블로그입니다. 점차 발전하는 중화권 야구에 대한 정보를 모아 지피지기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