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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야구 이야기/대만 야구선수들

[기획시리즈]대만의 야구선수들 (10) 장쯔지아(張誌家)

안녕하십니까? 중국과 대만야구 전문 블로그인 Chinese Baseball Story에서는 '대만의 야구선수들' 이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대만 출신으로 MLB, NPB 등의 해외 리그와 자국 CPBL 에서 뛰고 있는 주목할만한 선수를 기획하여서 한 사람씩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간의 의견을 종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선수도 물론이지만 대만 야구에 관해 궁금하신 선수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의견을 내주시는 독자 참여에 오른 왕지엔민(王建民), 천진펑(陳金峰), 궈홍즈(郭泓志), 후진롱(胡金龍), 펑정민(彭政閔), 쟝지엔밍(姜建銘), 차오진후이(曹錦輝), 린웨이주(林威助), 쟝타이산(張泰山), 천용지(陳鏞基), 천웨이인(陳偉殷), 장쯔지아(張誌家), 린커지엔(林克謙), 뤼밍츠(呂明賜), 궈리지엔푸(郭李建夫) 순 입니다.

현재 우리가 잘 모르던 예전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있고, 잘 알려진 메이져리거들도 있습니다.그동안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등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불려지던 대만의 야구선수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어떤 선수인지, 또는 어떤 배경과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 궁금한 점들을 이번 기획을 통하여 자세하게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합니다.

원어 표기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지침을 참고하여 여기서의 표기는 전부 중국어의 원음을 그대로 읽는 것을 한글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그 표기만 따라 읽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 되는 것입니다.(왜 한국어 한자로 읽으면 안되냐고 물으신다고 해도 ^^ 그건 제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신문 등에서 쓰이는 외국어 표기법과는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쟝쯔지아(張誌家)

쟝쯔지아(영문 Chang Chih-Chia) 선수의 본명은 쟝푸신(張福欽)입니다. 이 선수의 별명은 쟝99(지우지우)입니다. 1980년생으로 179cm, 80kg의 평범한 체형을 가진 우투양타의 투수입니다. 원래는 포수를 봤지만 후에 투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습니다. 최고 구속은 154km/h를 던진 적이 있습니다. 평속은 대략 140km~145km/h정도로 나타납니다. 구종은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그리고 포크볼과 커브, 서클 체인지업을 던질 수 있습니다.

지난 해 슝디 엘리펀츠의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8만 위에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고, 이후 라뉴 팀에서 방출 당했습니다.

올해 2월에 타이베이현의 빤치아오(板橋) 지검에서 불법 승부조작, 도박 사기죄로 기소되어 최종 2년을 판결 받았습니다. 이로서 쟝쯔지아의 프로야구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고 봐야겠네요.

올해 3월 20일부터 5월31일까지 잠시 장화시융잉(彰化熊鷹:실업 야구단)야구단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쟝쯔지아 선수는 타이베이현의 이바오지아상고(穀保家商)를 나와 2001년 말에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와 자유계약을 맺어 2002년에 일본으로 진출한 타이완 투수입니다.

2002년에 T.M.L의 타이베이 타이양 팀에 의해서 중복 1지명 되었습니다.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를 대비한 지명이었지요. 아무튼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에서는 2002년 4월 22일부터 2006년 9월 30일까지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와서 라뉴 베어즈에서 2008년 5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활약을 하였습니다만 작년에 승부조작 사건에 개입되면서 라뉴 팀으로부터 제명되었습니다. 

국가대표로는 2001년 제 9회 World Port Tournament(네덜란드)에서부터 타이완의 성인야구 대표팀으로 뛰기 시작하여 바로 그해 베이스볼 월드컵도 대표팀으로 뛰었습니다. 그 후에 2002년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 팀과 계약을 맺었는데 세이부 감독은 당시 그를 두고 두 번째 궈타이위엔(郭泰源)이라고 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주목했었지요. 

개인 이력으로 특이한 사항이 있는데 음반을 발매했다는 점입니다. 음악적 소질도 있는 편이라서 일본 세이부와 계약 한 해에 'It's my war'라는 개인음반을 발매하였습니다.(사실 기획사의 기획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리고 각종 방송과 예능과 오락, 그리고 스포츠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 매우(!)자주 출연하는 운동선수 출신의 예능 프로그램 단골이었습니다.

                                          (2004년 다이에 호크스와의 경기에서의 투구 모습)

아무튼 세이부 소속으로 계약을 하고 난 후에 미.일 프로야구 교류전에 일본 팀 제 4선발을 맡아서 타이완 국적의 선수로는 최초로 미.일 교류전에 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4년 12월에 여자친구인 인밍셩(尹明生)과 결혼하였고, 그 결혼식에는 마쓰자카같은 세이부 동료 스타 선수들도 많이 참석을 하여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2003년에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 타이완 대표로, 2004년에는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타이완 대표로 참가하였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도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부터 대표로 참가하여 본선인 올림픽에도 대표로 활약을 하였습니다. 성적은 주로 마무리로 네 게임에 나와 6이닝을 던지고 8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면서 1세이브를 얻었지요. 한국전에서도 중계진으로 나와서 2.1이닝동안 던지면서 실점위기를 벗어난 기록도 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 대 한국전에서 난조를 보인 선발 리쩐창(李振昌)을 구원나와 6.2이닝동안 무실점으로 잘 막아낸 기록도 있습니다.(이 선수의 특징은 마무리 투수라면 제일 좋을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매우 강한 심장으로 위기를 타개하는 능력이 뛰어난 투수였습니다.)


                     (08년 라뉴 베어스 시절 일본 요미우리 2군과의 교류전에서 투구하는 모습)

일본에서의 쟝쯔지아의 활약은 아래 기록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2002년 6월 2일 니혼햄을 상대로 첫 등판하였고, 또 같은 해 연속 28이닝 탈삼진의 기록을 세우면서 기존 기록인 26이닝을 돌파했습니다. 2004년에는 월간투수 MVP도 따냈었고, 올스타 전에도 출전하면서 승리투수가 되어 MVP를 따낸 유일한 타이완 선수가 되었습니다. 2004년에 또 특이한 점은 지바 롯데 전에서 투수로 나와서 베니 아그바예니와 메튜 프랑코, 이승엽에게 연속 홈런을 맞아서 세 명의 용병 선수에게 연속 피홈런 기록(일본 유일의 기록)을 세웠다는 점입니다. 

쟝쯔지아 선수의 NPB 성적



그 후 2008년에 타이완 프로야구에 진출합니다. 그 전에 이미 타이완으로 돌아왔지만 실업 팀에서 뛰고 있었고 2008년 5월 2일에야 라뉴 팀과 입단계약을 맺으면서 라뉴 사상 일본리그 귀환출신의 타이완 선수 1호가 되었습니다. 월 급여는 20만 위엔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에 본인의 C.P.B.L 첫 등판을 구원으로 나와서 대 슝디 엘리펀츠전에서 무실점 호투를 하였고, 리그에 적응하였습니다.  

쟝쯔지아 선수의 CPBL 성적


2009년에는 일본에서 돌아와 타이완 리그에서 뛴 선수로서는 두 번째[첫 번째는 궈위엔즈(郭源治:당시 허신 웨일즈(和信鯨) 소속]로 10승을 달성한 투수가 되었습니다. 항상 한국과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타이완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각종 연예 프로그램에서 자주 찾는 스타 운동선수인 그가 타이완에서 최고의 스타성을 가진 사람으로 우뚝 설 수도 있었지만, 정말 아쉬운 것은 승부조작이라는 순간적인 욕심으로 휘말리게 되면서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2009년 12월에 라뉴 팀은 그를 영구제명하였고, 팀에 손해를 끼친 점을 들어 민사소송도 제기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의 야구 인생은 완전히 끝났고, 지금은 잠시 머물던 실업 팀에서도 나와서 외부와의 소식을 끊은 채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