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급 야구운동시기의 타이완 야구(1960년대~1980년대)
3급 야구란 어린이 야구, 청소년 야구, 청년 야구를 말합니다. 1970년대 타이완의 경제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수출에 힘을 써서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던 시기인데 그 시기와 맞물려서 3급 야구 또한 광풍이 불 정도로 활황이였습니다. 모든 사회계층이 야구 민족주의의 색채를 띄고 야구에 몰입하던, 그리고 그 야구에 열광하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홍예촨치(紅葉傳奇)
1968년 8월 타이동(台東)의 홍예 리틀 야구단 이야기입니다. 내방한 일본 리틀 야구단을 2전 전승으로 물리치고 타이완 민중에 민족적인 자존심을 가져다 준 스토리인데요 그걸 영화화해서 전 타이완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광풍을 가져다 준 이야기였습니다.
The Red Leaf Legend(PIFF사진)
1999년에 재 각색하여 '紅葉傳奇(The Red Leaf Legend)'<-상세정보클릭란 이름으로 제 4회 부산 국제 영화제(PIFF)에 출품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관심있게 보신 분들이 있을테지요? 아쉽게도 전 못봤습니다만 보신 분들이 감상이 어떤지 말씀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혹시 소장하고 계신 분이라도 있으시다면 꼭 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진롱출격(金龍出擊)
1969년 금룡 소년야구팀(Golden Dragon little-league baseball team)은 원동(遠東)지구의 대표권을 획득하여 미국 어린이 야구연맹에서 주최하는 세계 어린이야구 대회-앞서 시리즈 1회에서도 소개하였던 윌리엄스 포터에서 거행된 제 23회 세계 리틀야구 챔피온쉽-에 참가하여 우승까지 하게 되면서, 비록 작은 규모의 국제대회이긴 하였으나 타이완 최초로 국제 대회 참가 사상 우승의 영예를 안게 된 것으로서, 타이완 야구계뿐만 아니라 전 타이완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과 민족적인 기개를 떨치게 한 영광으로 받아 들여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야구에 대한 열풍은 물론이고 동반하여 경제적인 시너지 효과까지 가져다 주는 전환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당시 언론 기사를 보면 우승하고 귀국하는 금룡 소년 야구팀의 환영 행사에 무려 15만 명의 타이완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했다고 합니다. 리틀 야구팀 환영일파가 15만이라니 참 대단하지요?
민족주의의 광풍이 불어오다.
타이완에서의 야구는 그냥 야구가 아닙니다. 야구에 민족적 역량을 대입하여 같이 숨쉬고 같이 움직이며 같이 느끼고 있는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중공이 중국의 대표권을 얻게되고 그 여파로 인해 1971년에 타이완이 UN에서 퇴출이 되고부터 갑자기 각종 언론 미디어에서 민족주의를 결합한 내용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야구선수들이나 각 팀들이 모두 입을모아 '야구로 양키를 이기자'란 표현들이 흘러나오게 되었는데, 그런 맥락에서 이 당시의 타이완 야구계는 민족주의의 광풍 그 중심에 서서 분위기를 주도하였고 자연스럽게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일도 많아지고 좋은 성적을 얻으면 민족의 영웅으로 부상하던 시기였습니다.
촬영시기:1969년 9월8일 소유권한:연합보제공
금룡팀의 세계리틀야구 우승기
세계대회 우승패
©ARR 사진제공.
촬영시기:1969년 9월8일 소유권한:연합보제공
금룡팀의 세계리틀야구 우승기
세계대회 우승패
* 월리엄스 포터에 대한 이야기는 본 시리즈의 1편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리틀야구에서 우승한 직후에 타이완에서 엄청난 수의 어린이 야구단이 만들어지게 되고 국민적인 관심을 끌게되면서 자연스레 학생 야구가 관심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리틀야구, 청소년야구, 청년야구를 말하는게 3급 야구라고 했는데, 그 중심에 선 강팀이 소제목과도 같은 메이허 중학야구단과 타이베이 화싱야구단입니다.
이 두 학교의 주축을 중심으로 그 후 많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국내에서도 라이벌 관계 남 메이허, 북 화싱이라 불리던 양강체제를 이끌었습니다. 이 두학교는 자연스럽게 뒤에 원화 대학(文化大學)과 푸런 대학(輔仁大學)의 양강 체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1971년에 이번 시리즈의 2편에서 언급되었던 화롄 지역에 롱공 야구단이 생기면서 남 메이허, 북 화싱, 동 롱공의 3강 체제로 3급 야구 중흥기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메이허중학야구단/사진 타이완야후 제공 메이허중학야구단/사진 타이완야후 제공 화싱중학야구단/사진 聯合보 제공
학생야구의 열풍이 불어오던 시기인 제 3부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제 4부에서는 타이완 성인 야구의 중흥기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가지 기획들로 조금씩 제 생각보다는 업데이트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게을러서 그런 것인데, 혹시나 다음 내용을 기다리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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