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대만의 친한파 야구인인 쉬셩밍(徐生明: 한국발음으로 서생명)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舊 싱농불스를 이어받은 이따 시니우(義大犀牛) 팀을 맡아 좋은 성적을 거두며 전반기리그 우승까지 시키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던 쉬셩밍(徐生明: 한국발음으로 서생명)감독은 2013년 8월 24일 슝디 엘리펀츠와의 리그 경기 후 집으로 돌아간 후 아내와 산책을 하던 중 신체이상으로 구급차를 불러 근처 양명의원으로 갔으나 치료하지 못하고 10시 23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쉬셩밍(徐生明) 감독의 활짝 웃는 모습/사진 대만 聯合報
향년 55세(1958년 9월11일~2013년 8월 24일)로 세상을 마감한 고 쉬셩밍 감독은 대만에서도 대표적인 친한파이자 지한파 야구인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또한 대만 야구감독 중 제1호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야구감독이었습니다.
쉬셩밍 감독은 타이완 원화대학(文化大學) 야구부를 졸업하고 육군야구부에서 복무한 후 한국으로 건너와서 실업야구 한국화장품팀에서 1984년부터 1988년까지 5년간 선수생활을 하면서,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4년에는 실업리그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화장품 팀을 거쳐간 유명 선수는 정인교, 이효봉, 심재원, 양상문, 강기웅, 선동렬, 김재박, 김봉연, 황규봉, 이해창, 김용남 선수 등이 있습니다.
쉬셩밍 감독은 한국 유학 후 대만에 돌아가 원화대학 감독을 하다가 1990년 웨이취엔 드레곤즈(味全龍) 투수코치를 시작으로 프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스바오 이글스(時報鷹) 투수코치를 거쳐 1995년 스바오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고, 그 후에 니옌다이 레이공(年代雷公) 팀과 띠이진강(第一金剛)을 거쳐 2004년~2005년에 중신웨일스(中信鯨) 투수코치와 감독을 역임하다 사임 후 잠시 쉬면서 대만 야구협회 선수선발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2013시즌 매니 라미레즈와 해외파선수들의 귀환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전반기리그를 우승시킨 쉬셩밍 감독이 매니의 머리형으로 분장한 후 웃고있는 모습
그 후에 2008년 다시 싱농 불스(興農牛)팀을 맡으면서 2011년까지 활약하였습니다. 그 후에 싱농 불스가 매각되면서 초대 감독으로 임명되어 2013년 전반기 시즌을 우승시키면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었습니다만 급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등졌습니다.
국가대표 코치느 1971년부터 청소년 대회부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와 세계야구선수권, 베이스볼 월드컵,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등 수많은 국제대회에 투수코치 및 감독으로 국가에 봉사하였고 스포츠채널 야구 해설가로도 활동하며 폭넓은 환영을 받은 국민적 감독이었습니다.
예전에 한국출신 야구선수들이 꾸준히 대만 리그를 노크하면서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부분 쉬셩밍 감독이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분이 세상을 떠나셨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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